남 나라 /08-08 독일중남부

Kindergarten의 시발점, 바드 블랑켄부르그

노코미스 2008. 9. 3. 16:19

 2008. 08. 15(금)

 

 

 

추측컨데 하루일정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아침 7시부터 레지덴츠를 나선다. 아침은 7시부터 배식이라 레지덴츠에서 제공하는 아침도 먹지못한채 나오는데, 어디선가 풍겨오는 구수한 버터향~ 흠~흠~ 따라가본다. 시장거리 조그만 베이커리에서 아침부터 따뜻한 빵을 손수 하나씩 구워서 진열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맛있어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정성스러워 보인다. 자고로 음식은 정성으로 만든것을 먹어야 하느니..가던길을 되돌려 버터프란첼을 하나 산다.  밀가루 하나로 만든 빵이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버터향이 이렇게 구수할 수가 있는지~~프란첼Branzel 하나에 행복한 아침이 열린다

 

 

 

 

같은 지역내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RE(Regio Express)를 타야한다. RB(Regio Bahn)보다 깨끗하고 빠르다 . 노선상 먼저 프뢰벨Frobel이 최초의 Kindergarten을 시작했던 바드블랑켄부르크부터 들런후 오버바이스바흐를 가야한다. 바드블랑켄행 RE이다  

 

 

 

 

튀링엔 지역이 구동독지역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철길주변의 모습들이 개발이 덜 된 농가의 모습이 강하다. 가끔 넓은 농가에 하얀 거위들이 무리지어 노니는 모습을 보면 '거위치기소녀'의 모습이 그 위에 오버랩되기도 한다. 그런모습을 보면서  모든 허구가 실제를 모방하는 것임을 절감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숲이 철길에 더 근접해 있다. 아니 철길이 깊은 숲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이 옳다

 

 

 

 

드디어 블랑켄부르크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다녔던 도시들도 그렇게 번잡스러운 곳들이 아니었지만, 바드블랑켄부르크는 더 조용하다. 우리나라 읍수준의 크기라고나 할까. 아이젠아흐가 튀링엔지역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라면 바드블랑켄부르크는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튀링엔발트를 끼고 루돌슈타트Rudolstadt와 자레Saal중간쯤 지점에 위치하는 조그만 소도시이다. 아이젠아흐에서 여기까지 생각보다 멀다. 2시간이나 걸렸다

 

 

 

 

돌아갈 기차시간을 알아보기 위하여 반호프에 들어가니 반호프 문이 잠겨있다. 알고 보니 이런 소도시의 이용자가 적은 역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 큰일이다. 타임테이블이 없으면 의사소통도 원할하지 않은 나같은 여행자는 꼼짝못하는데,, 다행히 반호프 옆에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이 있어서 그 곳에서 이것저것 정보를 얻는데, 역시 레일정보는 마르크트광장에 있는 티켓팅 에이젼스시에 가야 한단다. 마침 내가 가고자 하는 프뢰벨 뮤지움 근처라 가는 길에 해결하면 될 것 같다. 도움을 받아 나오니 방금까지 아무 내색도 없던 하늘에서 그 사이 비를 내리뿜기 시작한다. 보슬비 수준이 아니다. 거금 7.5유로를 주고 우산을 하나 산다

 

 

 

 

원래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서 우산을 파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새 우산을 하나 가지고 있어서 슈퍼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거치지 않고 우산을 하나 샀다. 물론 가격은 맘에 들진 않지만 낯선곳에서 비를 맞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듯해서..

우산을 받치고 길을 나서니 조그만 다리가 하나 나오고 주변을 둘러보니 저 위쪽으로도 다리가 놓여져 있고 그 밑으로 흐르는 물이 꽤 맑고 깨끗하다. 아마도 튀링엔 발트에서 시작되는 물이겠지..그리고 개울가의 수목들은 어쩜  저렇게 무성하고 싱그러울까. 떨어지는 빗방울이 개울위에 점점이 무늬를 만드는 모습과 더불어 비오는 날 이국의 모습이  여행에  대한 색다른 설레임을 제공해준다

 

 

 

 몸을 돌려 계곡의 아래쪽을 보아도 우거진 수목은 여전하다. 보여지는 풍경을 보면 바드블랑켄부르크의 위치가 계곡이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깊은 계곡 어느 지점엔가 건설된 마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리를 건너 계속 직진하니 마을을 가로지르는 골목이 나온다. 건물들도 자금자금하고 낮음낮음한 것이 작은마을의 느낌이 난다. 비가와서 그런지 매우 조용하다

 

 

 

 

인적은 없어도 가게들은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가는 길에 개구리들만 모아서 파는 개성있는 가게를 본다

 

 

 

 

꽃집은 언제 어디서 봐도 좋다~그리고 2층 발코니의 제라늄도 언제 어디서 봐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저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마르크트 광장이 있다. 이 근처에 프뢰벨 뮤지움과 티켓팅 에이젼시가 있다고 했는데..여기저기 둘러본다

 

 

 

 

산쪽으로 방향을 돌려 골목위를 올려다보니 뭔가 눈에 익은 상징이 희미하게 보인다.

 

 

 

 

방향을 잡고 올라가본다. 맞다. 프뢰벨 뮤지움이다. 제 2가베로 만든탑, 모든 건축물의 기초, 정육면체의 주춧돌, 원기둥모양의 받침대 그리고 원형의 돔..

그리고, '오라,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지 않겠는가'라는 벽면의 플랜카드~

 

 

 

1836년 프뢰벨은 스위스로부터 돌아와 카일하우에서 보내다가 1837년 1월에 부인과 함께 이 곳 바드블랑켄부르크로 이사를 왔다. 여기로 이사한 후 부인 빌헤미네의 제안에 따라 1837년 3월부터 '자동교수시설'을 설립하였다. 그 해 8월말에 '유아와 청소년의 작업충동을 기르는 시설'로 개칭하고 1838년 4월에 루돌슈타트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 때까지 이 시설은 놀이감과 교구의 제작보급을 전문으로 하였다 . 교구의 제작활동을 하다보니 그가 의도하는 유아교육을 담당할 교사양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리하여 1939년 6월에 기존의 시설에  '유아교육 지도자 양성시설'을 병설하게 되고, 다시 이들의 실습을 위하여 6세 이하의 유아 약 40명을 모아서 '놀이와 작업 시설'을 함께 개설하였다. 그리고는 이 시설에 가장 걸맞는 이름을 찾다가 1840년 어느 봄날 튜링겐 산길을 넘어오다 봄볕에 내리쬐이고 있는 스타잉겔 경치에 매료되어 유치원의 모습은 이처럼 생명력이 짙은 정원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 학원에 'Kindergarten'이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서 세계최초의 공식적인 유아교육시설인 유치원이 탄생한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유치원 Kindergarten은 프뢰벨의 놀이와 작업시설의 고유명사가 일반명사로 전성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래쪽의 문은 사용하는 문이 아니고 건물의 왼쪽을 돌아 계단을 오르면 위쪽으로 도로가 나오고, 이 도로변에 뮤지움의 입구가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여기가 3층이고 아래쪽으로 2층, 1층이 모두 전시실이다. 3층에는 프뢰벨의 흉상과 초창기 은물과 종이접기, 작업등의 사용방법에 대한 스케치와 그것을 활용한 사례, 그리고 그의 생력사와 이 건물의 역사, 그리고 관련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프뢰벨 은물이 아닌 현대식 교구들도 배치되어 있다. 

 

 

 

 

 

 

단순히 전시용품이 아닌 놀러온 애기들이 놀이를 하기도 한다. 전시물에는 손도 못 대게 하는 우리나라의 뮤지움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역시 체험중심의 뮤지움이다.

 

 

 

 

색종이로 직조하기 모형이다. 매우 섬세하다. 그 시절 아기들은 7세가 되었을 때 이렇게 섬세한 작업을 해 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지금아이들보다는 소근육 조절능력이 훨씬 정교했을테니까 가능했을런지도..

 

 

 

 

2층으로 내려갔더니 현대 여러국가에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는 프뢰벨 도서와 은물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오히려 본국의 서적이나 은물보다는 우리나라 서적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고 있는 은물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일본서적이 몇 권 있었고..우리나라에서 다시 프뢰벨 열풍이 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느질로 하는  패턴 작업 모형과 8은물에 포함되어 있는 원형과 반원등 곡선으로 하는 작업모형이다.

 그리고 그 시절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책이 전시되어 있다. 프뢰벨 얼굴이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프뢰벨이 집필한 은물 사용메뉴얼정도 되리라..

 

 

 

 

 바탕에 깔린 그림은 프뢰벨 기념 유치원의 초기 모습으로 보이고, 앞쪽의 빨간 지붕모형이 현재 이 뮤지움의 초기 모습으로 보인다.  이 모형에서 보이는  지형은 거의 변하지 않고 지금과 유사하다. 단지 건물 뒤쪽의 언덕에 아무 건물이 없었던 것에 비하여 지금은 저 언덕에 많은 예쁜 집들이 들어서 있다는 점 뿐이다.

 

 

 

 공작소에서 슈필가베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 Kindergarten에서 여교사와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 당시 일반학교의 교실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매우 자유롭다고 볼 수 있고, 아이들이 은물과 종이들을 가지고 여러가지 작업을 하고 있다.

 

 

 

 

1층으로 내려갔더니 칼라풀한 현대식 교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마도 인근 유치원이나 방문 유아들의 체험교실인 듯하다.

 

 

 

 

프뢰벨의 끈끼우기 작업을 현대화한 교구..  옆의 교구는 색깔막대로 모양만들기 교구..

 

 

 

 

9은물을 이용한 놀이판..

 

돌아보면서 발견한 재밌는 사실은 프뢰벨 뮤지움의 체험관에는 프뢰벨 은물보다는 대부분이 현대식 교구들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프뢰벨 정신은 유아들이 놀이를 통해서 배우도록 하는데 있는것이지 정방 2.5cm 또는 5cm 로 규격화된 프뢰벨 은물이나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본질은 제쳐놓고 은물 사이즈가 몇Cm여야 하느냐 또는 일 은물을 가지고는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하느냐, 2은물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느냐 등의 부질없는 것에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가베가 개발된 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소개가 이루어지고 있고 더 많은 가베가 생산되고 있고, 더많은 메뉴얼이 제공되고 있고, 더 정확한 사용법을 요구하고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불필요한 교조주의적 원칙에 치우쳐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런 느낌은 지난번 이탈리아에서 몬테소리 유치원을 방문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정작, 본국들은 각 프로그램에 대해 그리고 교구에 대해 상당히자유로운데, 우리는 왜 그렇게 사이즈에 연연해 하고 제시된 메뉴얼에 구속되어 꼼짝달싹 못하는지~ 하루 빨리 우리교육이 본질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기를 희망해본다 

 

 

 

 

인근에서 놀러온 유아들이 수행한 색종이 접기 작업..단순히 종이를 접는 작업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도록 해준다

 

 

 

 

아이들과 함께있는 프뢰벨

 

 

 

프뢰벨 흉상과 기념사진 한 컷..

 

 

 

 

이 교회는 초창기 사진속에서도 보였던 뮤지움 아래쪽에 위치한 유서깊은 교회..

 

 

 

 

뮤지움을 다 보고나서 다시 프뢰벨 기념 유치원으로 자리를 옮겨본다. 초창기 건물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건물에도 역시 프뢰벨이 외쳤던, '오라,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지 않겠는가'하는 구호가 쓰여져 있다.

 

이 유치원은 프뢰벨이 유아교육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 독일의 부인과 젊은 여성들에게 유아교육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구하게 되자, 귀족의 부인과 일반시민의 부인들이 교육문제에 참여하여 프뢰벨의 유치원을 지원할 것을 목적으로 1840년에 결성된 '일반독일부인조합'에 의하여 설립된 유치원이다. 1840년 6월 구텐베르크 인쇄발명 400주년 기념식에서 그들은 그들의 공동사업으로 '일반독일유치원'창립지원을 약속하고 창립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위의 공작소가 1844년까지 운영되었다면, 그 이후로는 아마도 이 유치원에서 프뢰벨의 이상을 구현했을 것으로 본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사전에 공식적인 예약도 없었고,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없는 사람이 불쑥 들어가서 유치원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어서 외관만 보고 가야지 하고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에라~프뢰벨 한 사람 보고 내가 남의 나라 시골하고도 이런 구석까지 와서는 시설하나를 못 보고 가~'하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걸려있는 문을 직접 따고 들어갔다. 들어가자 중년의 여교사가 나타났다. 용건을 묻길래, '독일에 놀러온 여행객인데, 프뢰벨에 관심이 많아서 일부러 여기까지 왔다. 내부를 보여줄 수 있느냐'했더니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 이 시골구석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나보다. '그렇다'라고 했더니 조금기다리란다. 누구에겐가 허락을 받는 전화를 한다 들어오란다. '댕큐~댕큐 메리마치~~'

 

 

 

 

입구에 들어서니 우리나라 현대식 유치원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여교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더니 어느 조그만 사무실로 들어간다. 이 유치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미니 전시실 같은 곳이다. 

저 위 사진을 보면 엄마가 아이손을 잡고 밭길을 가로질러 유치원엘 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160여년전 풍경이다. 그리고 아래쪽은 교사가 아이들과 생활하는 모습과 오늘날 유치원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활동하는 모습들을 함께 보여준다.

 

 

 

 

그 한쪽에는 프뢰벨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해주고 있다.

 

 

 

이 여성은 엘레뇨?인가하는 여성으로 프뢰벨이 이 유치원을 창립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경제적 후원자라고 한다.

 

 

 

 

초기 프뢰벨의 저서속에 들어있는 삽화와 오늘날 영유아들의 작업모습을 대비하고 있다.

 

 

 

 

이 사진은 구 건물 왼편에 새로이 들어선 제 2 유치원 현관이다.

아이들이 복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벽면 부착용 놀잇감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좋다.

굳이 프뢰벨의 은물이 아니어도 좋다

 

 

 

 

 

 

 

어느 공간에선가, 오늘날의 레고블럭으로 열심히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실제로 교실에서 아이들이 놀이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그 시간이 낮잠자는 시간이라 개방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아쉬움을 스스로 달랠 수 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전약속도 없이 궂은 날씨에 불쑥 찾아간, 그들의 정서에서 보면, 상당히 무례할 수도 있는 낯선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설명해주는 모습이 고마웠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채우지 못한 남은 미련은 프뢰벨 생가에 가서 보충하기로 하고 작별을 고하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www.bad-blankenburg.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