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휴양도시 안탈랴~ 그리고...
비행후에 부랴부랴 호텔로 들어가서 얼른 준비를 하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안탈랴로 향한다. 안탈랴는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인 동시에 유서깊은 항구도시이기도하다. 기원전 1세기에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 2세가 이 항구를 개방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탈레이아라고 불렀다. 페르가몬 왕국이 로마에 항복하자 이 도시도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도시의 중심에는 아직까지 '하드리아누스의 문'이 남아있는데, 이 문은 130년에 로마의 5현제 중 한사람인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 도시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그 후 이 도시도 아나톨리아에 있던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비잔틴에서 셀주크로 지배자가 바뀌었고,..그 과정에서 인근의 다른 고대도시들은 모두 폐허가 되었지만, 안탈리아 항구만은 지중해 교역의 기지로서 계속 번영해 오고 있다.
그 곳으로 우리가 간다. 하루종일을 간다. 터어키~ 대단히 크다~~?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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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점심도 먹을겸 곤야를 들렀다. 곤야는 터키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중 하나인 메블라나 교단의 본산지이다. 그래서 이슬람 신비주의적 분위기가 가장 진한 도시이다. 곤야에 들렀으면 반드시 메블라나 박물관을 들렀어야 했겠지만, 우리는 그런 선택권이 없는 페키지 여행객일뿐.. ㅠ.ㅠ그래서 박물관은 통과~~,
그러나 마침 주변 모스크에서 정오 기도를 알리는 애잔이 울려나오는지라, 그 소리만으로도 이슬람의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충분히 느낀다.
애잔을 들으며 인근의 모스크로 들어갔더니..내부는 그저 큰 공간으로 터여져 있다. 단지 공간 곳곳에 굵직굵직한 기둥들이 천정을 받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천정을 바치고 있는 기둥들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어디서 다 줏어다 놓은 것처럼 보인다.
역시..가난한 나라가 맞구나~하고 생각중인데..
사실은 그 기둥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대 세워졌던 여러신전과 기독교회에서 공수해와서 이슬람 모스크를 짓는데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한 곳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모자라면 다른 곳에서도 가져오고..하다보니 하나의 모스크안에 코린트식,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컨포지트식등 다양한 양식의 돌기둥들이 혼재해있다(세계사 시간에 그렇게 외워도 모르겠던 주춧돌의 양식-한눈에 그 차이가 쏙 들어온다). 이런 모습은,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문명이 거쳐 지나간 곳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지배했던 종교와 문화에서 사용했던 자원들을 파괴만하지않고 그것을 자신들의 신을 모시는 신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그들의 관대함과 실용주의적 태도는 터어키를 다시보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였다.
아뭏든, 터어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대다나다.
메블라나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더비쉬(dervish, 세마)라고 부르는 수도승들의 춤인데, 이것은 일종의 신과의 교통에 이르는 수행 방법이다. 남자들이 긴 치마를 입고 한없이 원을 그리며 도는 모습도 상당히 신비롭다. 그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고 싶었지만, 역시 우리는 시간과 일정에 쫓기는 페키지 여행객.. 다음 출발지를 향하여 떠나야 한다.
점심을 먹고는 다시 안탈랴로 출발했지만, 안탈랴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몇개의 산과 마을을 지나 겨우겨우 안탈랴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했을즈음에는 벌써 해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하루종일이 걸렸다. 역시 중부아나톨리아에서 남부지중해도시까지 움직여야하니 그 길이 만만치는 않으리라.. 이런 땅을 다니면 내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좁은지를 새삼스러이 실감하기도 한다
안탈랴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는 '하드리아누스의 문'이라고 하는 고대로마 건축물앞에 풀어주는데 그것이 시내 한복판에 버젓이 서 있어서 그 조화롭지 않은 모습에 좀 의아스러웠지만, 나중에 보니 터어키라는 나라는 곳곳에 이런 유적지가 차고 넘쳐서 이런곳에 아무렇게나 있다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위의 사진에서 '하드리아누스의 문' 중앙으로 보이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좌우로 턴하면 구시가지가 미로처럼 뻗어있다.
구시가지 '카레치'는 미로와 같은 좁은 길이 끝도없이 구불구불이어져 있고, 그곳에는 작은호텔이나 펜션, 그리고 선물가게 및 주단가게들이 넘쳐난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의 모양새나 재료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오던것과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화려하고 강렬하고.. 마치 내가 그 옛날 아라비안나이트의 어느 골목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다.
다음날 아침, 안탈랴를 떠나기 전에 해안가 풍경을 즐기러 간다.
도로변에서 해안가로 내려가는 내리막길 절벽위에 관광지의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줄줄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오전 9시경?, 해서 아무도 카페에 앉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지중해의 바람을 느끼고 싶어 야외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 하나를 차지해 본다.
뒤로 보이는 성채는, 기원전 2세기에 세워졌다는 탑이다. 높이 5.5m로, 대포도 갖추어져 있는 이 멋진 성채는 원래 그리스인이 세웠고 이후에 로마인과 셀주크인이 뺏고 뺏기기를 거듭했던 유서있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탑 꼭대기에 어울리지않게 휘날리고 있는 저 빨간 깃대는 '지금은 터키가 점령했다'는 표시인가..^^
내려가면 이런 선착장이 있다. 사진보다 훨씬 예쁘지만,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관광지로서의 분위기가 그다지 낯설진 않다. 이 선착장은 왕년에는 키프러스 섬과 크레타 섬 그리고 이집트와의 교역의 중심이었던, 상당한 번영을 구가했던 그리스 식민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요트만 정박하고 있는 항구가 되어 돛대가 숲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지금은 또 다른 모습으로 고대의 번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 선착장을 비~ㅇ 둘러서 까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선물가게들이 늘어서 있다.그리고 사진에서 보이는 저 뒤쪽은 카레치 구시가지의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고, 앞을 보면 아래와 같은 청명한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거리의 분위기은 중동의 분위기보다는 지중해적 분위기가 강하다
요렇게 짧은 골목 투어를 끝내고는 우린 안탈랴를 떠난다.
안탈랴에서의 일정은 오랜 이동시간에 비추어볼때 너무나 택도없이 짧은 시간이어서 아쉬움이 많았다. 안탈랴 박물관도 볼 것이 많다는데..
역시 우리는 선택권을 포기한 페기지 관광객일뿐..ㅠ.ㅠ 가이드의 바쁜 움직임을 쫓아서 우리도 바쁘게 차에 올랐다.
오후는 '목화의 도시' 파묵깔레에 도착해야 한다. 해가지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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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깔레는 터키에서 손곱히는 온천휴양지다. 멀리서보면 마치 눈이 쌓인듯이 하얗게 쌓인 석회층은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이 경관을 보려고 세계곳곳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석회층 곳곳에는 온천수가 고인 연못이 있어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하거나 온천욕을 하느 것이 여행자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경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석회층의 자유로운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서 전망대와 산책로에서만 아름다운 석회층을 감상할 수 있을 뿐이다. 아뭏든, 이 온천지역에서는 고대 페르가몬왕국의 번영을 확인할 수 있는 히에라폴리스 유적도 함께 볼 수 있다.
안탈랴에서 파묵깔레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나보다. 찻길이 막힐까 서둘렀으나 생각보다 정체가 없었다며, 나중에는 천천이 가잔다. 그러면서 파묵깔레 입구에있는 어느 대형 할인매장 같은 면제품 마켓에 우리를 풀어놓더니 필요한 물건을 사란다. 아, 이것 때문에 그렇게 출발을 재촉했구나~
그러나 우리 일행은 그다지 싸보이지도 않고 우리나라보다 질이 좋아보이지도 않아서 모두들 손을 놓고 돌아나온다. 결국 너무 이른 출발로 인해서 이래 저래 느긋하게 놀아가면서 오후 4시경 파묵깔레 시내 호텔에 도착하였다. 짐을 풀고 호텔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야외온천에서 물장난 좀 치다가,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을 무렵에 우리는 석회층관광지역으로 올라갔다.
저 멀리서 보면 마치 새하얀 설산처럼 보이는 것이 그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한데, 가까이서 보니 그 새하얌이 더 눈부시다
여러겹으로 덮인 석회층이 계단식 논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도 장관이지만, 석양무렵, 석양을 품고 있는 모습도 아름답다. 조그만 계곡에 발을 담그면 온천수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석회층 위의 언덕에는 고대 페르가몬 왕국의 성스로운 도시인 소도시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있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에 시작된 도시유적으로 이 시대의 것으로는 가장 내륙에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는 페르가몬 왕조의 최고 번영을 이끈 에우메네스 2세에 의하여 건설되었다가, 로마, 비잔틴시대까지 왕조를 바꿔가며 오랜 동안에 번성하다가 결국 셀주크 왕조에 의해 멸망한 도시이다. 아뭏든 이 도시가 이렇게 오랜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온천때문이었을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남아있는 유적은 고대로마의 건축양식을 유지한다. 페르가몬 고대유적은 1세기경에 지진으로 붕괴되고
이후 네로시대부터 재건되어서 2-3세기에는 인구15만의 전형적인 로마지방도시가 되었다고..
그래서, 내가 서있는 곳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인 로마시대에 건설되었던 너비 13.5m의 '아르카디아 거리'라고 하는 중앙로이고, 사진 왼쪽의 돌기둥은 당시 고급물품 거래의 중심지였던 아고라의 흔적이라네요.
저 뒤편으로 올라가면 도미티안 문과 원형극장 등 산자들의 도시가 나오고..
고대로마는 새로운 식민도시를 개척하면 먼저 물류를 이동할 수 있는 도로부터 건설했는데,이 때 도로이름을 붙일 때 그 도로를 건설한 왕의 이름을 주로 붙였다. 아르카디아 거리는 아르카디아황제가 정비한 거리라는 뜻이다. 아르카디아 황제는 재임시절 특히, 도로를 정비하는데 많은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에페소에도 그의 이름을 붙인 거리가 있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죽은자들의 도시 '네크로폴리스'가 나온다. 네크로폴리스는 성벽 아래에 있는 죽음과 무덤의 도시이다. 눈에 보이는 석관만도 크고 작은 것이 수천 개는 됨직하다. 석관형, 가옥형, 봉분형의 석묘로 무덤의 다양한 형식과 규모가 큰 집단 묘지다. 신분이나 빈부차이에 따라 규모와 장식이 다를 수 있으나 여러 시대가 중첩되면서 혼란스러워진 조화가 더 흥미롭다.
<출처: 까페 이사벨>
히에라폴리스는 크게 '산자의 도시'아크로폴리스와 '죽은자의도시' 네크로폴리스로 구분되는데..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 온천수의 치료효과 때문에 병치료를 목적으로 히에라폴리스로 왔다가, 그 중, 치료가 되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이 지역의 공동묘지(네크로폴리스)에 안치될 수 밖에 없었다. 팻말에 히에로폴리스라고 되어있지만, 입구는 공동묘지(네크로폴리스)로 시작된다.
한 도시안에 산자의 도시와 죽은자의 도시가 인접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장묘문화에 대한 생각과 약 2000년전 우리와는 거의 반대편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속에 내가 있음을 보면서,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의 연기됨에 신비감을 느끼면서 이미 어둠이 절반은 덮여있는 로마의 옛도시를 내려온다
여기서부터 이 여행이 서서히 고대로의 여행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더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