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도시 에페스(Efes)로의 역사여행
처음에는 상당한 기대와 호기심과 신기함을 가지고 시작했던 곳..
구경하면서 내려가다 보니 어느샌가 너무 많은 돌더미들에 지쳐서 '그게 그거."같아 보이고, ,..
그래서 나중에는 사진도 찍기 싫었던 곳..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렇게 소중한 곳이 또 있었나 싶게..다시 가서 확인하고 싶은 곳..
그곳이 에페스이다.
그리고 에페스 유적은 터어키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인한 그들의 세계사적, 신화적 위치에 대하여 나의 무지한 시야를 새로이 눈뜨게 해주었을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대 로마 제국의 그 문명론적 압도감을 실제로 경험하게 해 주었다.
고대 로마제국의 번영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으로는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세상을 돌아다니다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해하게 된다. 세계곳곳에 로마제국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런 곳에는 여측없이 로마로 통하는 도로가 있고..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로마 또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자각하는 것이 또 다른 교훈이기도 하고..
Efes는 지중해 연안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고대도시 유적지이다.
그리스의 신화(아르테미스 신전)와 로마의 역사 그리고 교회의 역사(사도바울, 사도요한, 성모마리아..) 등이
서로 얽히고 설켜서 혼재해 있는..
그렇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무너진 돌덩이 뿐이라서 보는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곳..
그리고 그 상상만으로도 규모를 짐작할 수 있고, 짐작되는대로의 규모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는 매력있는 도시가 바로 에페스이다.
유적지 출입문 남문과 북문이 있다.
남문은 아야술룩 언덕쪽으로 붙어있고, 북문은 에게해에 가깝다.
남문으로 입장하면 언덕쪽에서 크레테스 거리를 통해서 도서관쪽으로 그곳에서 마블거리를 지나 대극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극장에서 항구로 이어지는 아르카디안 거리를 밟게 된다.
셀주크의 성모마리아 교회를 먼저 본 사람들은 북문으로 들어와서 반대루트로 움직인다.
남문으로 들어가면 유적 관광 출발지점에 이런 기호가 나온다. 이 기호를 보면 이곳이 기독교의 성지임을 알 수 있고..
본격적으로 이 도시의 기원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아테네의 왕자 안드로클로스가 그리스의 이주민을 이끌고 새로운 도시터를 물색하던 중에 신의 계시를 받는 꿈을 꾼다.
'물고기와 멧돼지와 불이 있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
그러나 아무리 물색을 해도 그런곳을 찾을 수가 없어 좌절하고 있던 차에..
어느날, 에게해에서 잡은 생선을 불에 굽다가 그 중 한 마리가 팬에서 미끄러지고..
떨어지는 생선을 잡으려다가 그만 발로 불을 '팍'하고 차게 되고..
이와 함께 튄 불똥이 숲에 번지자 멧돼지 한 마리가 불을 피해 숲에서 뛰쳐 나왔다.
그 순간 왕자는 생선과 멧돼지와 불이 함께 있는 광경을 보았고, 이곳이야말고 신이 계시해준 땅이라 믿고 도시를 건설했다.
그곳이 바로 여기, Efes이다.
물고기는 바다를 상징하고, 멧돼지는 비옥한 땅을 상징하고, 불은 번영을 상징한다.
바다(에게 해)에서 가깝고 땅이 비옥한 에페스는 소 아시아의 중심도시로 번성하게 된다.
에페스(Efes)는 “인내”란 뜻을 가진 단어로,
실제 에페스의 기원은 B.C 6000년경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기원 전 12세기 이전에 이오니아인에 의해 이미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BC 11에 여행을 좋아하던 아테네의 왕자인 안드로코스가 에페소에 도착해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인 이오니아인을 정복하고
피온산 자락에 고대도시 에페소를 건설하면서부터 문명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오니아인은 에게해 주변의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일컫는다
그러다가, BC 560년경에는 리디아왕 크루네소스가 에페스를 정복하여 통치하다가 리디아의 세력이 약화되자 독립,
그리고 다시, BC 334년에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 후 통치했고,
그의 부하 리시마쿠스의 지배하에 있다가, 마침내 로마가 이 도시를 지배하게 된다.
BC 33년에 로마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방문하게 되면서
이 도시를 소아시아의 수도로 정하고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소아시아의 수도가 된 이 도시에는 그 당시 25만명이 넘는 인구가 북적였고,
금은,진주와 같은 보석류를 비롯, 도자기, 세마포, 향료, 포도주, 밀가루, 소, 양, 말 등
주로 값비싼 고급 제품들이 거래되었으며 사치와 허영이 난무하기도 했단다.
지금 남아있는 유적들은 그 당시 이 도시의 번영의 흔적들이다
그러나,
카이스트로스강의 범람으로 토사가 유출되어 바닷가가 메꾸어지고, 늪지가 생겨 모기가 번식하고,
모기에 의해 창궐한 말라리아로 병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나게 되고..
결국은,
1000년이 넘는 오랜세월동안 동서양문명의 활발한 교역지였던 에게해 최대상업도시 에페소의 영화도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그러던 중 이슬람의 공격이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쇠락의 흔적을 보기 위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다시 고대 도시가 북적거리고 있다.
지금부터 기억의 흔적을 따라 고대도시 에페스로 들어가 보도록 합니다~
입구에서 북쪽으로 내려가기 위하여 방향을 잡으면 오른쪽으로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 아고라는 73m*160m크기의 넓이에 집회나 종교행사, 상거래 등에 이용된 광장이다.
아고라를 끼고 오른쪽 언덕쪽으로 '오데온'이라고하는 작은 원형극장 같은 곳이 나온다.
이곳은 반원형으로서 23개의 계단이 있어 1,40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소극장 같은 곳인데..
콘서트 또는 300명 정도의 시민대표들이 모이는 회합장소로 이용되었다고..
(모든 시민이 다 모일경우는 아래쪽의 대극장에서 모였다고..)
오데온 옆에 기둥만 남아있는 시 공화당 흔적이있다.
지금은 기둥만 남아있지만, 과거에는 이곳에 성화가 밝혀졌으며, 한번도 꺼졌던 적이 없다고 한다.
아고라가 끝나는 부분에 길가에 드러누워있는 '니케'의 부조상..
니케의 부조상 앞, 도미티아누스 사원 입구에 놓여있는 '분수대'
이곳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오던 그 시절의 영화를 생각해보면 대단했을 것 같다는..
분수대의 왼쪽 안쪽으로 위치하고 있는 '도미티아누스 사원(오른쪽)'과 '폴리오의 우물(왼쪽)'
'도미티아누스'는 로마의 폭군중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을 곳곳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신들의 손에 의해 사살된 후 사원은 파괴되고 현재는 그 토대부분만 남아있다.
'메미우스 기념탑 Memmius monument '- 가이우스 메미우스(Gaius Memmius)는 로마의 웅변가이자 시인이며 호민관이었으며, 폰투스전쟁에서 에페스를 탈환한 로마의 독재관 스라의 손자이기도 하다.
본인이 이 지역의 호민관 시절에 할아버지인 스라를 칭송하기 위하여 비를 세웠다.
이 비에는 그의 할아버지 스라를 칭송하는 말들이 새겨져 있다.
여기까지를 보고나면 헤라클레스 문이 나타난다.
이 헤라클레스 문을 통과하면 ..
크레테스 거리가 나온다.. 많은 현대인들이 고대인의 삶을 그리워하며 몰려온다.
터어키 최대의 단일 유적지답게 관광객이 넘쳐난다
조금 한적한 시간에 볼 수 있는 크레테스 거리의 모습... 이 거리의 끝부분에 보이는 건물이 셀수스 도서관..
보시다시피 이 모습들이 2000년 훨씬 이전에 사람들이 '꽃피웠던' 문명의 흔적들이다.
도시 전체가 그저 널부러져 있는 돌덩어리에 불과하지만..단순한 돌덩어리들만으로 우리현대인을 위압하는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카리스마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대제국 로마...
거리의 대리석 포장상태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포장과는 비교도 안되리만큼 럭셔리하고 견고하다..
크레테스 거리를 중심으로 수도 없이 많은 유적들이 있어서 다 기억할 순 없겠지만,
우선 기억나는 건 거리 왼편에 위치하고 있는 상류층 민가터에 남아있는 모자이크 테라스,
오른편으로 위치해 있는 다양한 문화 인프라??..하드리아누스 신전, 수세식공중화장실, 대형 유곽 등이 펼쳐져 있다.
우선 왼편부터 살펴보면,
..<모자이크 테라스의 화려한 문양>
민가터 자리에 이런 모자이크 흔적만 남아있다.
지금은 쇠락해서 흔적조차 없지만 당시 그들이 누렸던 삶의 질은 이와 같이 화려하고 정교했던 것이다..
오른편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여유있고 풍요로운 대중문화를 즐겼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위쪽에서부터,
'트라야누스의 우물(Nymphaeum of Trajan)', 이 우물은 102~104년에 걸쳐 립되었으며,
AD 98-117 까지 로마의 땅을 지중해에서 페르시아만까지 넓혀 대제국을 이루는데 기여한 로마 5현제중 한 사람인
로마황제 트라야누스에 바쳐진 우물이다.
이 우물의 특징은 삼각형의 파사드이다.
당시에는 입구 정면에 연못이 있었고 그곳에 세워진 트라야누스 황제 동상의 발끝에서 물이 흘러 나우고,
연못주변의 대좌에는 디오니소스, 사투로스, 아프로디테등 여러 신들의 동상이 나열되어 있는 웅장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있었던 신들은 현재 셀추크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트라야누스우물과 하드리야누스 사원의 사잇길로 올라가면 뒤쪽으로 '스콜라스티카 목욕탕'이 있다.
1세기에 세워진 공중 목욕탕으로 4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스콜라스티카'라고하는 여성이 3층짜리의 비잔틴 양식의 목욕탕으로 다시 건축하였다.
보이는 것은 목욕탕입구이다
비잔틴 양식의 3층 목욕탕 건물의 흔적이다.
탈의실로 사용되었던 홀에 머리부분이 소실된 스콜라스티카의 좌상이 있다.
'하드리야누스 사원 The Temple of Hadrian'은 도미티아누스 사원 이후 두번째로 로마의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A.D 138년에 지어진 이 사원은 에페소 시민들에 의해 지어져 로마 5현제중 한명이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 에게 바쳐졌다.
하드리야누스(재위 AD 117~138)는 재위기간 중 제국 각지를 돌아보면서 국경수비에 힘쓰는 한편
여러가지 제도를 정비하는데 애썼던 황제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사원 입구의 아치정문은 에페소 유적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번째 문의 아치 위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행운의 여신 티케(Tyche)가, 두번째 문의 중앙에는 메두사의 모습이 각각 부조되어 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의 아취정문의 행운의 여신 티케의 부조
하드리아누스 사원 안쪽문 중앙에 새겨진 메두사 부조
안쪽문을 통과하여 사원내부로 들어가는 길..
하드리야누스 사원을 끼고 뒤쪽으로 살짝 들어가면 수세식 공중화장실이 나온다.
칸막이가 없이 구멍만 나있다..어쩌라구~
난, 참 난감한 상황이 연상되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여기 일렬로 앉아서 일을 보고 있을 시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비실비실 웃음이 나면서..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다해도 그래..역시 야만인은 어쩔 수 없어.
사람들이 있거나 없거나 어디서건 엉덩이를 까지~~쯧쯧..
하고 생각하다가..
아니지~
당시 그들의 옷차림을 생각해보면, 저런 상황이 그다지 난감스럽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로마시대에는 '토가'라고 하는 긴 천으로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중요부위가 가려졌을 것이니까..
난감함이 사라지니 다시 진지함으로 돌아온다.
2000년 전에 세워진 수세식 공중화장실..
우리나라는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공중화장실이라는 곳을 가질 못했다. 푸세식에 냄새가 너무나 심해서..
아~우리의 무지함과 야만성을 한스러워하기에 앞서..
대로마제국의 진화된 문명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셀수스 또는 케르스스 도서관 Celsus Library'
마블거리의 끝부분과 크레테스 거리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케르스스 도서관.
에페스 유적의 하이라이트다.
로마 제국의 아시아 주 집정관이었던 셀수스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묘위에 세운 기념물이다.
이후 목조부분이 소실되고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발견되었을때는 상당히 많은 파괴가 있었는데
1970년에 복구하여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도서관의 오른쪽이 아고라입구이다. 지식을 쌓는 일과 소비를 하는 일을 그다지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
건물의 특징은 2층 파사드 건물에 정면에는 각각 지혜(소피아), 운명(아레테), 학문(엔노시아), 미덕(에피스테메)의
4가지 의미를 상징하는 여성의 동상이 있다. 물론 모조품이고, 진품은 빈 박물관에 있다.
이 벽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하부는 콘포지트식(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의 혼합형식) 기둥머리,
상부는 코린트식의 기둥머리로 되어 있는 대리석 원기둥이다.
내부는 1층으로 되어 있고, 이 곳에는 12,000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내가 방문하던 날, 로마전통복장인 '토가'를 입은 남자들이 도서관앞에서 짧은 시대극을 연출하고는 잠시 쉬고 있다.
전문적인 연극인인지 아니면 단순한 관광거리로 재현하는 알바인지는 알수가 없다
시민들은 도서관에서 지식을 쌓다가 심심하면 도서관 오른쪽에 있는 아고라로 들어간다.
이 아고라는 위쪽에 있었던 아고라보다 훨씬 그 규모가 크다.
아고라 입구에서 들어가면 이런 거대한 주춧돌이 큰 광장을 돌면서 세워져 있다.
이곳의 기둥도 컨포지트식이다.
그 시절 이 광장의 규모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대단하다.. ..
아고라 내부로 한참 들어와서, 뒤돌아서서 찍은 사진..
저 끄트머리에 보이는 높은 건물이 케르스스 도서관이다
사진에서 볼 때 왼쪽 돌담이 보이는 위쪽으로 마블거리가 뻗어있다.
아고라를 벗어나 마블거리로 올라왔다.
마블거리는 과거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산책하던 거리라고 한다.
이 거리는 도서관에서 현재 대극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이 모습은 여러차례 수리를 한 모습이고..극장앞 주변에는 실제 로마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길 밑에는 수로였다고.. 이 길 중간쯤에..쩌~~기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
그 쯤에 유곽의 광고가 노면에 새겨져 있다.
마블거리의 한켠에 있는 포석에 새겨져 있는 이 유곽광고는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할말은 다하고 있다.
발 그림은 '이 발보다 작은 발을 가진 사람은 매춘숙소를 이용하지 못한다.'
발옆의 여인그림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
여인아래 네모난 그림은 돈 즉, '돈을 가지고 오너라'
새끼발가락 위쪽의 하트모양은 '마음을 담은 서비스' 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추.리.들.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곽은 어디에 있는가?
크레테스 거리와 마블거리가 끝나는 모서리부분,
마블거리를 사이에 두고 케르스스 도서관과 마주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유곽. 즉, 매춘 숙소다.
내부로 들어가면 방들이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다.
도서관과 아고라와 유곽의 위치를 보면 그들의 생활상을 이렇게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심심하면 아고라에 가서 물건도 사고, 논쟁도 좀 하다가..
그래~~도 심심하면.. 유곽에 가서 여성들과 담화를??^^**
유곽을 보고 마블거리를 따라 다시 바닷가 쪽으로 내려온다.
그러면 여기, 마블거리가 끝나는 부분에 원형 대극장이 있다.
피온산을 따라 만들어져 있는 이 야외 대극장은 아르카디안 거리의 끄트머리에 있다.
최초에는 헬레리즘 시대에 창설된 것이지만, 로마시대에 각 부분이 확장되기도 하였다.
2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의 관객석은 지름 154m, 높이 38m인 반원형구조로 되어있고,
연극 상연과 또는 에베스의 모든 시민이 다 참여해야 하는 시민회의가 이뤄어진 시민회의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이런 야외극장에서 연극이 가능했던 것은 그 시대의 건축공학적 기술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저 아래 공연장에서 동전을 떨어뜨리면 그 소리가 관객석 젤 위에까지 들리도록 설계가 되어 있단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람의 힘을 이용한 것이란다.
즉,
사진에서 보면, 대극장입구에서 쭉 뻗어있는 도로가 있는데
과거에는 이 거리끝에 바다가 맛닿아 있었는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하여
무대의 소리가 높은 자리에 있는 관객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르카디안 거리Arcadian Street'는 북쪽입구에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거리이고,
남쪽입구에서 들어오면 가장 나중에 만나게 되는 거리이다.
대극장 입구에 깔려있는 이 거리의 대리석 일부는 실제 로마시대의 대리석 그대로라고 한다.
항구에서 대극장까지 연결되어 있는 너비 11m, 길이 530m로 건설된 이 도로는
당시 고급상점과 화랑이 위치했던 고급쇼핑거리였다고..
BC 4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거리는
로마의 아르카디우스 황제(395-408 AD.) 시대에 복구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도로는 항구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항구도로"라고도 불린다. 다시 이 도로는 로마로 이어진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피온산 자락에 위치한 대극장을 배경으로 아르카디안 거리에 서다...
한 여름의 에페스는 무지 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천년전에 살았던 인류 공동 조상들의 숨길을 느끼고 싶어하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도 마다한 채
한낱 돌무덤뿐일수도 있는 이곳을 해마다 찾아온다
에베스 유적 관광을 하는 동안은
온통 나둥그러져 있는 돌무더기들이 지긋지긋했고 의미도 없었다.
한번 들어본적도없는 로마황제들의 이름을 딴
모든 건축물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짜증스러웠고..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자각들..
그리스 로마 문화의 본산이 과연 어디인가?
과연, 오늘날 쓰여지고 있는 세계사의 중심이 서양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은것인가?
인류의 문명사에서 아시아의 위치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이전에 내가 세계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틀이 쫘~~악하고 쪼개지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이래서 인간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안에서 좁은 사고의 틀로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단죄했던가?
그 옛날 이동수단도 제대로 없었던 인류의 조상들은 패기와 진취성 또는 도전정신 하나만으로도
지구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건만..
그래서 몇천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어리석은 후손들의 정신적 길잡이를 하고 있건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