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한 '위대한 침묵'
2010. 2. 15(월)
이번 설에는 서울사는 작은동생 가족들은 몸이 아파 내려오지도 못하고,
큰 동생은 설 뒷날이라 가족들 데리고 처가집가고 나니, 엄마만 달랑 적막하게 남겨졌다.
나이가 들수록 기동성이 떨어지니 가족들로부터 점차 떨어져서 변방이 되는 듯한 노인을 보니 가슴한켠이 아리다.
북적되던 명절 뒷날 갑자기 떨어지는 고요함 앞에 사람들은 자칫 침울해지기 쉽다.
그래서, 엄마를 외출에 동반하기 위하여 선택한 영화가 '위대한 침묵'이다.
듣는것이 어려운 엄마에게 적당할 것 같았다.
마침 부산지역에서는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아르테관'에서 하루에 한번 상영을 하고 있다.
그나마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관객들은 주로 중년층의 남녀들이다. 다른 흥행영화들과는 달리 중년 남성 관람객들이 제법 눈에 많이 뜨인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저들은 왜 이 영화를 보러 왔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게 하는 행위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였지만..
어쨋거나, 특수한 관람층을 형성한다는 것은 일반 상업성영화와는 무언가가 다를 것임을 눈치채게 하는 부분들이다.
기대를 가지고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시작부분에서 그동안 언론에서 극찬해왔던 수많은 평론들이 자막을 통해 펼쳐진다.
-마음을 사로잡고 황홀하게 하며, 삶의 활기를 주는 영화 _ 뉴욕 타임즈
-이미지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이자, 감동 그 자체 _ 쥐트도이체 차이퉁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기존의 언어를 초월한 창의적인 다큐멘터리 _ 센티에리 셀바기
-<위대한 침묵>은 무엇보다도 시간이 공간이 되는 영화다 _ 타게스슈피겔
-솔직히 내겐 이 영화가 <킹콩>보다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_ 뉴스위크
-<위대한 침묵>은 삶의 느린 리듬에 관한 시적인 에세이다 _ 버라이어티
-분주하고 소란한 삶 속에서, 이렇듯 소박한 삶을 침묵으로 전하는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_ 글라우베 하이마트
나중에 지겨운듯한 하품소리를 5분단위로 뱉어내는 저 아저씨나 나나 우선 이 글귀들을 실제로 경험하기 위하여 이 영화를 선택했으리라.
처음, '위대한 침묵'의 제작배경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에서 단지 평론과 언론매체들의 극찬에 이끌려 이 영화를 한번 봐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단지, 허접한 일상을 미사여구로 포장한 상업성 영화와는 뭔가 다른 어떤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 자체로 좋았다.
어떤 사람들처럼 '감동적이었다'라는 말은 하지 않으련다.
그냥 좋은 영화였다.
졸다 깨다 3시간..
여기서 '졸았다'는 말은 '재미없다'라는 말과는 좀 의미가 다르다
그냥,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봤다는 뜻이다.
그리고 편안함과 기대감이 교차하면서..졸다 깨다..그렇게 3시간을 전혀 무리없이 감상했다.
그렇게 졸아가면서 보아도 영화의 내용과 흐름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고..
졸다가 눈을 뜨면, 영화의 느린 리듬은 큰 변화없이 여전히 물흐르듯이 흐르고 있고
보이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가치롭다.
그냥 편안하게 그들의 흐름을 따라가면 된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며,
다른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요소이다.
그러나, 이 3시간짜리 대작을 졸다깨다 본 것으로 다 이해했다 말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영화는 비종교인이 보고 이해하기에는 종교적 기호가 너무 많았었고,
그것에 대한 해석이나 이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영화가 제공하는 이미지를 다 이해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해서,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집에 돌아와 나름대로의 공부를 좀 더 했어야 했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혼자 유영하는 저 아름다운 곳은 도대체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까르투지오 수도원이란 어떤 곳일까?
도대체 저들은 왜 저렇게 살까?
저들의 하나하나 행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저 불빛의 의미는? 등등
<수도원 이미지:구글에서 퍼옴>
영화에 등장하는 수도원은 프랑스 알프스 중턱에 위치한 샤르트뢰즈라고 하는 해발 1300m 산기슭에 있는
그랑데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이란다.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까르투지오 교단에 소속된 수도원으로서,
카르투지오 수도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대표적인 수도원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까르투지오란 명칭의 기원이 된 수도원이기도 한 것 같다.
즉, 카르투지오란 수도원이 최초로 세워졌던 이 곳 샤르트뢰즈(chartreuse)의 라틴어 표기법이라고..
어쨋거나, 이런 설립역사를 가지고 있는 까르투지오 수도원은
방문객이나 관광객 등 일반인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오로지 신을 섬기고 자신들의 영적인 삶과 침묵을 추구하는데 헌신하는 봉쇄 수도원으로,
로마 카톨릭교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수도원이고..
이 수도원은 1688년에 설립된 이후
단 한번도 수도원 내부와 수도사들의 생활이 외부에 공개된 적 없어 더욱 신비에 가려져 있었던 곳이었고.
그런 수도원이 독일의 '필립 그로닝'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그 속내를 공개하는 것이니..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랑데 샤르트뢰즈(Le Grande Chartreuse)는
커다란 회랑을 중심으로 벽쪽으로 수도사들의 개인 방이 도열해 있는데,
수도사들은 각자 개인방에서 명상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
그들은 독방에서의 생활하며서 세상과 단절하고 그리고 내면의 고독을 추구하는 삶이
신에게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데..
평소에는 거의 개인방에서 개적으로 수행을 하다가 일주일에 한번 친목을 위한 대화나 산책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친목시간에
'식사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하는가..?'등과 같은 뜬금없는 주제를 가지고 상당히 진지한 토론을 하기도 하고..
결론은 나이많은 수도사가 '가끔 손 씻기를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라는 것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의 적용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음을 은근히 내비추기도 하고..^^
한 두번은 눈덮힌 알프스 중턱으로 올라가서 미끄럼과 원시스키를 타면서
천국의 아이들처럼 행복해 하고 온 알프스 기슭에 울리도록 행복한 웃음소리를 날리는 것을 보면서 그들도 인간임을 본다.
순수한 생명체..^^
이런 일상에 대한 설명이 없었어도..
맑디맑은 밤하늘 별들의 흐름으로 세월의 유수함을 표현하고,
세월이 흐르고 온 세상이 캄캄한 어둠속에 묻혔어도 변함없이 끄지지 않는 한 가닥 빨간 불빛을 켜 둠으로서
언제든지 우리가 찾아가야하는 영적 세계를 이미지화하고 있다는 정도는 느낄 수 있겠으나..
그들의 삶의 규칙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보니
그들의 구도적 삶이 좀 더 분명하게 들어오는 잇점도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난히 흰동공이 맑아보였던 흑인 신입 수도사의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서
영적 에너지가 한 순간으로 몰려옴을 느끼면서 3시간의 긴~ 침묵에서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