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세비지 그레이스

노코미스 2010. 2. 26. 14:59

 

 

  

 

그닥 기대없이 보다가 ..제작노트를 읽고 다시 본다.

 

보고난 이후,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정신이 몽롱하다.

로그인을 하는데 아이디란에 '세비지 그레이스'를 쳐넣을 만큼 ..

 

특히, 이 내용이 실화라고 하는 점에서 그러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이유하나는 그런 충격적인 행위들이 아무런 이유나 설명없이 일반인이 일상을 행하듯이

너무나 평화롭게 무감각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더 그러하다.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동기나 설명이 없다.

양심이나 도덕적 반성이 없으므로 죄책감같은 것도 없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할 뿐이다.

그들에게 그것이 우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처럼

근친상간이나 트리플 섹스나 동성애나 모든 비일상적인 하드코어들이

화면상으로는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말은 더 큰 충격이었다.

영화의 흐름에 따라 하드코어의 강도는 점차 커져간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전조도 없이..

그저 자연스런 일상이 흘러가듯이.. 그 일상속의 한 에피소드처럼 아주 편안하게..

영화는, 사건이 일어나고난 후에야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이 깨닫도록 

미리 전조를 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사람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내용을 되짚어보면서 뒤늦게야 더 큰 충격에 멍~해지겠지..

.

 

이 영화의 코드는 제목에 이미 드러나 있다.

savage와 grace는 양극의 끝에 놓일법한 대립적인 단어이다.

그 두 대립적 단어가 함께 병행하는 단어..그것이 이 영화의 본질이다.

 

 

 

본질을 규명하는 수식적 단어 'savage'를 삐고 나면 이 영화는 상당히 'grace'한 영화이다.

즉, contents를 드러내는 대사를 죽이고 화면만 본다면 이 영화는 더 이상 우아하고 아름다울 수 없다

우선, 모든 장면에서 화면을 가득채우고 있는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외모는 최상이다.

"You really are such handsome boy~" 블랑카가 토니에게 던진 이말은

진정으로 현상과 일치하는 대사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최고가의 의상에, 우아한 손짓과 미소에, 유럽 대륙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에..모든 것이 최상이다.

이에 더하여 더 이상 우아할 수 없을만큼..아마도 이런 모습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불륨을 올리고 그들이 대화하는 내용들을 들어보면 그것은 우아함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천만달러를 주면 인육을 먹을 수 있느냐, 또는 친구의 부인과 잘 수 있느냐..?등의 어쩌면 잔인할 수도 있고, 야만적일수도 있는 저질의 대화를 나누면서 얼굴에는 우아한 미소를 띠우고, 그들의 세련된 웃음소리는 끝이 없는 먼 울림으로 어떤 형체도 없이 오랜동안 허공을 헤맨다.

 

 

 

그들 삶을 구성하는 잔인성과 야만성은 영화가 전개되면서 점점 강도가 더해간다

동성애나 마약, 그리고 트리플 섹스등도 만만한 코드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는 축에 끼이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이 틀안에 들어가야 할 강도높은 코드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근친상간'..

 

이 정도 되면

최종적으로 '정신분열'과 '존속살해'는 어쩌면 이미 예견되는 결말이지 않을까~

 

 

 

관객들은 영화속에 펼쳐지는 화려한 의상에, 아름다운 리조트에,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수동적으로 취해있다가, 어느순간 눈앞에 와 있는 결말을 보면서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온 정신이 몽롱~해진다. 

 

처음에는,

'뭐야~?'이런 극적인 장면에 긴장감없이 이렇게 밋밋하게 처리를 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진실이다.

그래서 그것이 더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 이 충격은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커지는 것 같다.

 

 

 

 

영화는 충격을 주는 것만으로 끝나진 않는다. 내가 본 세비지 그레이스는 우아하면서도 좀 더 심리적이고 교훈적이다.

 

즉, 대상관계이론의 대가인 Mahler는

어린시절 유의미한 타자인 엄마와 맺은 대상관계 유형은 한 개체로서 자녀의 독립과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과

그것이 건전하게 형성되지 못할 때 개인은 공생적 증후군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는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외현적으로는 마약, 동성애, 근친상간 등 자극적이고도 잔인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적절한 시기에 주양육자와 자녀간에 분리개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공생적 증후군의 슬픈 실체를 그린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비뚤어진 모자관계의 슬프고도 잔인한 결말에 대한 영화..

 

눈에 보이는 실체만 좇는 사람에게는 이 영화가 다소 불편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실체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탐미적 잔인함 이면에 깔린 교훈적 의미를 놓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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