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섬, 리도 디 베네치아
함께 무라노 가자하여 이곳까지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남자를 따라왔으나
어느순간 끄나불이 사라져 버리니 다시 목표수정을 해야만 했다.
아직 무라노를 가든 부라노를 가든
어디서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바가 없는지라
무조건 산마르코 광장으로 가야되는 줄 알고는 그 곳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 '리알토 보트 스테이션'옆으로 지나는데 얼른 내 귓속을 파고드는 소리가 있다.
리도~ 리도~
응? 여기서도 리도가는가베~
급 노선변경을 한다.
'리도 가나요~?'물으니 간단다.
리도를 가기 위해서는 전용노선이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가장 대중 노선인 NO.1 바토레토가 간다고 하니
의심스러워서 몇번이나 물었다.
그랬더니, 분명히 간단다.
당시는 의심스러워서 몇번이나 물었었지만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리도가 행정구역상 베네치아 소속이니
대중교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니 계속해서 의심스러운듯이 따지고 물었던 것이다.
찍고보니 '존 말코비치'도 있고..
리도는 특별히 볼 것이 있다기 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바퀴 돈다면
그 재미도 만만치 않다해서
작정을 하고 출발을 한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 휘날리며 땀을 좀 흘리고 나면
벌써부터 슬금슬금 의식언저리로 기어올라오려고 하는
나그네의 외로움을 다소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리알토에서 대운하를 통과하여 산마르코운하쪽으로 나온다.
산죠르지오 마죠레 성당도 지나고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도 지나고
산마르코 광장도 지나고..
한낮의 베네치아 앞바다에 내리쬐는 햇살에 시야가 아스라해질 무렵..
배는 점차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더 넓은 수평선을 향하여 나아가고..
땅을 잊을만하니 리도가 나타난다.
선착장의 분위기가 베네치아에 비하여 훨씬 깔끔하고 모던하다. 주변에는 대형 유람선도 왔다갔다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건너마을을 조망하는 청춘남녀의 실루엣같은 온갖 사소한 것조차도 여행자의 마음을 흔들고..
선착장에 내리니 일부는 저런 주황색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베네치아에서 하루정도 버스를 못 보다가 이곳에서 버스를 보니 낯선 세상에 온듯하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이렇게 무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착장 앞에 가로놓여있는 도로를 바로 횡단하여 앞으로 직진한다.
버스는 어디를 가고, 저들은 어디로 가는가..?
페키지 여행 가이드들의 불문율이 있다는데..절대 묻지 말아야 할 것 3가지
차창밖에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는
여기가 어디예요?
저 꽃 이름이 뭐예요?
저 사람들 어디로 가요..^?^
결국, 나도 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아무에게도 묻지 못한채,
그냥 주변의 지형도를 보고 따라 갈 뿐이다.
사실 이길을 쭉 따라가다보면, 이 길이 끝나는 부분에 리도 비치가 나온다.
비치는 나에게 그닥 흥미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이 동네를 한 바퀴돌아볼까하고
저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 하나를 고를려고 하니 저것은 개인것이란다.
렌트를 할려면 도로 입구변에 자전거 렌트점이 있다고 알려주길래..
그곳으로 갔더니,
또 마침 점심시간이라네..
이래저래 발품 팔 수 밖에 없다.
도로 주변에 도열해 있는 가게의 진열장들을 구경하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가는 길에 '빌라'가 보인다. 보니 대형 할인 매장이라..
마침 점심전이다. 물가조사도하고 점심해결도 할겸 들어가본다.
물500ml 1병과 샌드위치 하나에 6.55유로를 계산하고는 가지고 나와서는
길가에 마련해 둔 여행자를 위한 휴식공간에서 요기를 한다.
가다가 샛길로 빠져보니, 또 이런 조그만 운하를 끼고
아주 조용하고 모던한 주택가가 나타난다.
가게에 채소를 사러나온 현지인들도 있고..
휴가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소형모터 보트들도 보이고..
그러나, 너무 조용해서 재미가 없다.
다시, 중앙로를 나온다.
중앙로를 따라 길을 걸으니 어느 젤라떼리아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아이스크림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젤라또의 나라 이태리에서 저런 줄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나도 줄을 선다.
맛을 보는데 의의가 있으므로 작은 콘으로 하나 1.3유로..
가격 착하고 맛..좋다.
젤라또 졸졸 빨며 걷고 있으니 앞선 빨간 원색 원피스가 시선을 확 끈다.
그 뒤를 따르는 반나체의 이 노랑 머리 꽃미남의 뒤태 역시 예사롭지 않다.
쌍으로 시선을 끈다.
이 뜨거운 아드리아해안의 햇살 아래에서는,
우리가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걸치고 다녔던 옷이라는 물건도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이다.
어쩌면, 리도의 키워드가 이런 것 아닐까..자유!!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떨쳐낸 자유!!
.
.
.
어쨋거나,
아무이유도 없이 두 모자뒤를 졸졸 따라간다.
그들이 해변으로 들어간다.
나 역시, 따라 들어간다.
들어가는 입구 광장에 요런 조각상도 한 번 봐주시고..
들어가니 리도 비치가 요렇게 펼쳐진다.
한국에서도 평생 여름 바다는 가보지 않던 내가
이국의 바다를 보니, 나도 저 바다에 몸한번 담가봤으면..하는 생각이 확 몰려온다.
아니,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지..
이 이국의 해안에서 저런 벽안의 사람들과 내가 그 곳에 함께 했었다는 걸 추억하고 싶은 거였겠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뿐이고..
소심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에는..
곱지도 거칠지도 않은 모래사장위에 펼쳐진 파라솔아래에서..
선탠을 좋아하는 유러피안들이 선탠을 즐기고 있고..
파라솔이 없는 젊은 친구들은 맨몸을 뜨거운 햇살에 온전히 맡기고..
창의적인 어린 아이들은 어디를 데려다놓아도 주변의 물건들을 가지고 잘도 논다.
지켜보는 엄마와..
자유로운 아이들..
내 눈이 포착하는 또 하나의 피사체..'아이들'에서 리도여행은 끝난다.
자유로운 자전거타기는 못했어도
리도의 해변에서 '자유'를 느낀 건 분명 하나의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