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공예의 섬, 무라노
아침에 내가 세웠던 계획은
오전에 리도 잠깐 들렀다가, 오후에는 인포센터에 가서 다다음날 움직일 돌로미테에 대한 정보좀 얻어놓고
산마르코 대성당과 듀칼레 궁전 관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 날이 8/7일 토욜이었던 것을 깜박했다. 리도에서 돌아오니 인포센터는 얌전히 문이 잠긴채..
직원들은 자신들의 휴가를 즐기러 가고 없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더더욱 안될 것이고..
결국, 돌로미테는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산마르코 대성당의 입장은..
입구에서 부터 줄이 늘어져 있어, 끝이 어딘가하고 따라가 봤더니..
듀칼레 궁전중간까지 이어져있다. 이런경우는 초기 계획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좋다.
산마르코 성당은 또 다음날로 밀리고, 차선책으로 내일 일정이었던 무라노 행을 먼저 수행하기로 결정한다.
산 자카리아 선착장에서 No.41 바포레토를 타고 무라노로 향한다.
무라노는 산마르코 광장에서 보트 버스 바포레토(Vaporetto)를 타고 40여 분 가량 이동하면 다다르게 되
는 섬으로서, 세계 최고라는 베네치아 유리 공예의 산실이다.
저~ 멀리 오클칼라의 무라노 섬이 시야로 들어온다.
노랗게 보이는 바포레토 선착장이 'navagero'선착장이다.
Murano는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큰 섬이다.
무라노 대 운하와 산도나토 운하 및 조그만 운하들에 의해서 전체섬이
9개의 작은섬을 포함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바포레토 선착장이 5개나 될만큼 큰 섬이다.
나바게로 선착장앞에 프레스코화가 있는 건물이 유리공예 공장이었던 것 같다.
현재 무라노에 있는 유리공예 공장 수는 100여 개 남짓있다는데, 대부분은 공장이라기보다는
2~3명의 장인들이 전통적인 기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소규모의 ‘공방’수준이다.
공장에서 유리로 말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관람한 후, 전시장을 돌아보게 안내한다
베네치아의 명성을 높이는데 한 몫을 더하는 것 중 하나가 베네치아 유리공예이다.
현란한 크리스탈과 거울로 대표되는 정교한 예술,
유리공예가 처음으로 무라노 섬에 전해진 것은 지금부터 약 1천년 전인 982년 경이다.
이 곳이 유리공예로 명성 떨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재료가 되는 강바닥에서 나오는 자갈과
다른 하나는 습지의 평원에서 얻을 수 있는 소다회의 조달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란다.
이런 이유로 발달한 유리공예는 인근 국가들로 수출되어
중세 베네치아의 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유리산업이 중세 베네치아 부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되는 더 중요한 전략은
무라노 유리공예의 기밀이 다른 곳으로 누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인들을 외딴 섬에 모아 놓고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관리한 왕실의 결정에 있다.
유럽 전역의 왕실과 귀족들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관심받게 되면서 그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베네치아 정부에서는 기술이 바깥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위하여
장인들을 모두 이 외딴 섬으로 집결시켰는데,
일단 이 섬 안으로 들어온 장인은 절대로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따라서 유리공예는 베네치아의 단독기술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탈출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수백 명에 달했다는 슬픈 얘기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그런 이유보다는
오히려 유리공예가 불을 다루는 작업이다 보니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외딴섬으로 이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어느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가설이 옳든지 상관없다. 어차피 여행자에게는 팩트보다는 스토리가 필요할 뿐이니까..
운하를 따라 산타 마리아 에 도나토 성당을 향하여 걸어올라가니
집집마다 아기자기 공예품들을 전시해 놓은 상가들이 즐비해 있는데..
대형 전시장보다 오히려 이런 올망졸망 작은 샵들의 윈도우가 훨씬 예쁘다.
그 속에서는 이렇게 오래된 문조차도 연출인듯 싶듯이 너무 자연스럽고..
저 앞에 보이는 대성당(산타 마리아 에 도나토 교회)으로 건너가기 전에 다리도 좀 쉬어주고..
1140년에 지어진 이 성당은 12-3세기 베네치아 회화의 특징인 금색배경에 장식된 모자이크된 인테리어를 갖춘
대표적인 베네또-비쟌틴 스탈의 성당이란다. 나야 뭐~ 봐도 모르니 설명서만 열심히 읽는다.
금빛 배경에 아드리아의 바다색으로 몸을 감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은
대표적인 베네치아 비쟌틴 양식으로 표현된 모자이크 작품이다.
베네치아는 지리적으로는 서로마 제국에 가까웠지만
그들은 동로마 즉 비잔틴제국의 속국으로 시작하였다.
그래서 교회도 로마기독교보다는 비잔틴교회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 비잔틴 교회의 특징은 금박 모자이크 이콘이다.
그런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바깥 한켠에는 이런 아름다운 정원이..
오후햇살이 나른하게 떨어지는 골목길 모랭이에서 길을 찾는 두 할머니 여행객이 인상적이다.
나도 저 나이에 저런 열정이 남아있게 될께..??
정원옆의 우물..
베네치아의 중세교회구조는 항상 우물을 끼고 있다.
당시 교회는 지역 코뮨의 중심이었고,
코뮨의 중요 역할 중 하나가 물이 귀한 섬에서 물을 제공하는 거였는데..
물론 이것은 엄격히 말해서 우물이라기보다는 저수조에 가깝다.
즉, 빗물을 받아서 저장해두었다가 정수하여 생활수로 사용하도록 하는 형태이다.
바실리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유리박물관이 있는데..
그냥 스쳐지난다.
허물어져가는 난간밑일지라도 젊은 커플들이 있으면 그 장소는 빛이 난다..^^
노부부도 좋고..
무라노 대운하를 끼고 '팔라쪼 다 물라'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나바게로'선착장으로 돌아나와 나의 숙소로 향한다.
no.41번을 기다리고 있으니 no.42번이 먼저 온다.
생각하니 산타루치아 역전근처를 좀 익혀두어야 할 것 같아서 얼른 올라탄다.
무라노 대 운하를 벗어나서 중간중간 아름다운 물의 도시들을 감상하고 있을 때,
어느새 카날 그란데로 들어섰다
전날 들어올 때, 밤에 들어오느라 산타루치아 역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보지도 못했는데..
낮에 보니 새로운 느낌이 든다.
이 곳에서 다시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바포레토를 탄다. 전날 탔던 no.2...
이렇게 해서라도 베네치아랑 좀 친해지고 싶었다.
아침 7시에 나와서 하루 종일 12시간을 넘게 돌아다니고 나니 첫날부터 일찌감치 발가락에 멍울이 지고,
오른쪽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혀서 신발신고 걷기가 많이 불편하다.
라인홀더 메스너 같은 대단한 산악등반가에 오지 탐헝가들도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군소리업이 겸양해하는데..
나 같은 아무 보잘것없는 아낙이야 더 말해 뭐하리..
모든 힘든 것들을 나이탓으로 돌릴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호텔 입구에 있는 불빛이 아름다운 조그만 레스토랑에서 마게리타 피자 하나 먹고 들어가니
호텔 리셉션을 지키고 있는 친구가 한국에서 온 나를 굉장히 환영한다.
중국에서 중국어 공부를 했던 적이 있으며, 그 곳에서 한국친구들을 많이 사겼었는데,
한국친구들 너무 착하고 친절했다고..
나에게 그 친절을 되돌려주고 싶어한다.
9시 30분에 자기일이 끝나니,
정말 싸고 맛있는 피자집과 젤라또 집을 안내할 테니 생각있으면 내려오라는데..
쉬면서 생각해보마..하고는 올라갔는데,
시간이 다 되어가니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을 정도로 피곤하므로
내려가서, 정중히 제안을 사양하니..
그도 아쉬워하고, 나도 아쉽기 그지 없건만...
나역시,
왠만하면 이렇게 좋은 문화교류의 기회를 사양할 사람은 아니건만 그 아까운 시간을 사양할 정도로 몸이 힘드니..
나이앞에는 장사없음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