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레치메 디 라바레토 내려오는 길
뜨레치메에서 '라바레또 산장'으로 내려오니 오락가락 하던 비가 잠시 멈춘다.
그래도 오전중에 내리쬐던 뜨거운 햇살은 사라져 버리고, 몸에 휘감겨오는 냉기가 제법 서늘하다.
무언가 따뜻한 것으로 몸을 뎊힌 후에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싶어, 핫쵸코하나를 주문하여
테라스에 나와있는 의자하나를 차지하고 앉는다.
올려다보이는 하늘은 불과 한시간 전임에도 불구하고, 올라올 때 보여주던 하늘색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당장이라도 한바탕 소낙비를 쏟아부을듯한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분위기를 아는 것인지, 검은 산까마귀들이 온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다.
하늘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산길을 내려가는 것이 좋을 듯싶어..
얼른 잔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산길을 내려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하늘은 맑게 개이기 시작하고..
올라오는 길에 들러지 못했던 또 다른 길이 나를 유혹하고..
다시 날씨도 개었고, 시간은 아직 여유있고, 가보지 않은 길이 유혹한다면..
당연히 그 길을 따라야겠지..
앞선 젊은 커플들이 길과 잘 어울린다.
이곳에선 무어든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한참을 내려와서 올려다보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또..
만약 뜨레치메에 거대한 바위만 있었다면, 그것이 역사적으로 아무리 의미있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역사일뿐 나에게나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감동하는 것은
내가 높은 곳에 올라와서 그런것도 아니고,
돌로미테라는 지역에 와서 그런것도 아니다..
이유는
구름과 들꽃과 그리고 하얀 돌로마이트가 빚어내는 그 환상적인 코러스 때문인 것..
사랑하는 사람옆에 있을때 내 몸과 마음이 모두 열리듯이..
지금 이 곳에 있는 동안
이태리에 와서 꽁꽁 닫혀있었던 내 몸과 마음이 한 구석도 막힘 없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다.
더불어 입까지..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