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나라 /10-08 투스카니

프라 안젤리코의 오래된 프레스코화와 산마르코 수도원

노코미스 2010. 10. 27. 19:08

 

산 로렌쪼 교회를 지나고, 카부르가로 내려와서 동북쪽으로 올라간다.  

 

산마르코 수도원 정문출입문위에 산마르코의 상징인 날개달린 사자가 아기천사들과 놀고 있다.

 

 

 

이미 12세기부터 있었던 이 수도원은 1434년부터 도미니쿠스 수도회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437년에 '메디치가의 아버지'코시모 일 베키오 장로의 의뢰로

카부르가의 메디치궁을 지었던 미켈로쪼가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축물로 재건축하고, 

프라 안젤리코가 수도원 곳곳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하여 피렌체에서 최초의 엘레강스한 르네상스 양식의 수도원이 되었다

 

 그후 1580년에 쟘 볼로냐에 의해, 다시 1678년에 실바니에 의해 수복되었다

  소박하고 심플한 파사드는 1777년부터 1780년에 걸쳐 죠아키노 프론티에 의해 만들어 졌다.

 

 오늘 나는 프라 안젤리코를 만나기 위하여 우피치를 포기하고 산 마르코 미술관을 찾는다.

 

 

 

 수도원이 지금은 미술관이 되어 있다.

개관시간은 얼레~ 우리하곤 좀 다르다.

 

평일인 월요일-금요일까지 8:15-13:50

반대로,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은 8:15-16:50

그리고, 매달 첫째/ 세째/ 다섯째 일요일, 매달 둘째/넷째 월요일은 폐관이라는..

 

시간 잘 맞추어야겠다.

 

 

 

수도원 전시실은 피아노 테라(지상층)와 프리모 피아노(1층)에 배치되어 있다. 모두 1관, 2관, 3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던가..

1관은 안젤리코의 목판화 전시실, 2관은 수사들의 방, 3관은 프라 발트로메오 수사의 콜렉션으로 되어 있었던 듯.

 

 

밖에서 표를 사서 입장하면 곧바로 수도원 안뜰로 들어선다.

안뜰을 중심으로 사방이 아치형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고,

회랑벽에는 한 때 이곳에서 거주했었던 수도사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들이 남아있다.

 

 

 출입구에서 연결되는 회랑 맞은 편 끝부분의 벽에 프라 안젤리코 수도사가 그린 프레스코화 '십자가 상' 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1층 대강당벽에 남아있는 대형 프레스코화 '십자가형' 이다. 역시 안젤리코 작품이다.

 

도미니크 수도원의 성직자였던 베아또 안젤리코(1387-1455)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화가이지만,

그의 직분이 수도사였다라는 이유로 화가로서의 평가는 다소 과소평가되어 있었던 화가중 한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이지만,

 일생을 경건한 그리스도 신앙의 표현에 귀의하고 헌신하였다하여'안젤리코(천사같은)'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20세때, 피에솔레의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그 후 코르토나, 포리노 다시 피에솔레 등을 옮겨다니다가

1436년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으로 옮겨와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후에는 이 곳의 원장이 되기도 하였다

 

초기 그림은 로렌초 모나코의 고딕풍에서 출발하여, 성서의 삽화와 템페라의 판 그림에

금빛으로 빛나는 듯한 색채와 꼼꼼한 세부묘사를 보여주다가..(이것은 1층 안젤리코 목판화 전시실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후에, 도나텔로와 마사초 등의 영향으로 양체표현과 원근법을 터득하여 표현하기도 하였다.

 

산마르코 수도원의 벽화에서는 프레스코화기법을 채택, 그 제약과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보여준다.

 

 

   

 2층 올라가는 난간아래에 위치한 북스토어에 들어갔더니 한 쪽 벽 전면에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다.

이전에 수도원의 식당으로 쓰였던 곳이다.

 

한국의 가을 들국화처럼 부드러운 채색을 하는 안젤리코의 그림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과도 분위기가 다르고..

누구일까? 누구의 작품이지..?

 

음~ 알고 봤더니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1494)'이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이기도 하다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은 일반적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것과 곧잘 대조되기도 한다는데..

레오나르도의 것이 좀더 동적 구조를 지녔다면,

기를란다요의 작품은 좀 더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특징을 가졌다고..

 

어쨋거나 1480년경에 그려진 작품으로서 화가의 대표작일뿐만 아니라,

15세기에 그려진 같은 소재의 그림 중에서 최고 걸작으로 꼽히기도 하는 작품이란다.

 

 

어쨋거나 과거 중세수도원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에 '최후의 만찬'을 배경그림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지금은 이 공간이 북스토어로 사용되지만, 과거에는 식당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수도원 식당을 나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난관 바로 앞에 안젤리코의 '수태고지'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부드러운 황금빛이 성스러움과 고귀함을 나타내면서 편안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속의 배경도 아마 이 수도원의 안뜰과 회랑을 배경으로 한 것인가..

 

안내요원에게, 원래 이 자리에 있어왔던 것이었는지 물었더니 '그렇단다'

 

어디에선가 옮겨온 것이 아니라

 550여년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왔던 것이라는 말을 들으니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그 긴 시간을 그 자리에서 기다려 온 것같은 착각을 하면서..

이 조우가 괜히 의미심장해지고 감동이 더 크게 밀려온다.

 

순간의 고요함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잠시 그림앞에서 머물렀다가..

다시 왼쪽 통로를 따라 순례를 해 본다.

통로 양쪽으로는 수도사들이 기거했던 '첼라(Cella)'라고 하는 작은 방들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방은 안뜰로 향하는 벽면에 나있는 손바닥만한 창문하나에 사방이 꽉막힌 최소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입문의 맞은 편 벽면에는 여측없이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안젤리코의 벽화가 한점씩 그려져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십자가형'에 처한 그리스도의 그림이었다.

 

색감이 아주 부드럽고 그림속의 표정들이 얼마나 고요한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정화되고 신심이 절로 울어나도록 한다.

 

한마디로 보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다'고 내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당시 이 방에서 생활하고 기거했을 수도사들의 삶이 어땠을까를 생각했던 거 같다. 

 

세상과의 모든 교류가 단절된 이 좁은 공간에서

외롭고 고독한 수도생활을 통해서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수행이 고통스러울 때, 예수의 십자가형을 올려다보면 위안이 좀 되었을까..

 

안젤리코의 그림은 충분히 위안이 되었을거라 생각하지만..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었다면 ,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그것의 정체가 눈물인지 감동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어떤 것으로 인해, 당시 나는 '온 가슴이 촉촉히 젖어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느 한 방에 가니,

 바닥에 유리를 덧대어 놓은 곳이 있어 내려다봤더니 바닥아래쪽에 반사경을 통해서 무엇인가가 보였다.

 

보니, 그리스도 성화가 바닥 아래쪽으로까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성지순례를 하는듯한 경건한 마음으로 복도를 따라 걸었더니 복도 끝부분에 조그만

예배실이 나오고 낮은 계단참위에 조그만 독방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시대의 이단아 '사보나롤라'의 첼라이다. 프라 발트로메오가 그린 그의 초상화를 통해서

 금욕적이고 결연한 순교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두개정도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더 깊숙히 그의 서재 스튜디올로가 있고..

그곳에는 그가 시뇨리아 광장 Uffizzi앞에서 당시의 인문학 자료들을 분서갱유하는 그림이 걸려있다.

 

시대를 잘못읽은 한 개혁자의 역방향적 역사, 어쩌면 숨기고 싶은 역사일수도 있는데..

 

 그들은 앞서간 사람들의 사소한 발자국조차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모두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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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도를 돌아서 나와 오른쪽 복도를 향하니

그곳에 미켈란쪼의 도서관이 나오는데

중세의 성경 필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 수도사들은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글씨도 직접쓰고 그림도 직접 그리고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한자한자 필경을 했을 것이라..

 

문득, 신에게 바쳐진 그들의 삶이란게 참으로 고달팠을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속에서는

어떤 세속의 때도 오염될 수가 없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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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층으로 내려와서 북스토어 쪽으로 나와서 왼쪽 코너로 들어가면

Fra Bartolomeo(1473-1517)작품이 콜렉션되어 있는 3관이 나온다.

지오바니 안토니오를 경배하는 그림들이 많다.

16세기 작가 Plautilla Nelli(1523-1588)의 '피에타'를 감동적으로 보고 나온다.

 

 

나와서 복도를 돌아, 수도원 입구옆에 있는 1관으로 입장한다.

그 곳에는 안젤리코의 초기 작품인 패널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황금색으로 덧칠된 패널화가 예수와 성모의 영광을 충분히 빛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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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과 모든 활동이 신으로 귀의하는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에서

신을 모르는 나는 의미도 모른 채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했고', '가슴이 촉촉히 젖어오는'경험을 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지금도 생각한다.

 

신심이 좋은 사람은 좋은 성지순례길이 될 것 같다.  

 

 

 

퇴장 전용문인 뒷문으로 나오니 빗줄기는 아침보다 더 거세어져 있고..

 

 

나가서..점심을 좀 먹어야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