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리던 발도르챠 Val d'orcia
2010. 08. 16 월요일 날시: 쾌청
산지미냐노에서의 시간이 택도 없이 짧긴 했지만.
그렇다고 더 지체할 수도 없어서, 마을 한바퀴 투어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미련없이 떠나기로 한다.
현재, 나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발도르챠val d'orcia밖에 없다.
발도르챠, 투스카니의 원형..
산지미냐노도, 시에나도..발도르챠에 비하면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발도르챠를 가려면 여기 산지미냐노에서 다시 시에나siena로 나가야 한다.
6:05분에 있는 첫 버스는 아무래도 나에겐 무리이고, 그 다음 버스가 8:50분에 있으니 그걸 타기로 한다.
1시간 15분이 걸려서 시에나 그람시gramsci 광장에 도착한다.
다시 광장지하에 있는 sita 버스 매표소로 내려간다.
발도르챠를 가고 싶은데 어느 정류소에서 내리면 되냐고 물으니, 산퀴리코san quirico에서 내리면 된단다.
표를 달라하니 오늘 역시 체르탈도 가는 날처럼,
여기선 발도르챠 버스가 없으니, 페로비아Ferrovia로 가란다.
아니, 타임테이블은 분명 버스 시간표인데, 왜 자꾸 기차역으로 가라는 거야..?? 참 이해가 안된다
이 나라는 버스와 기차를 같은 기관에서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나..참 이상해요..
혼자서 투덜투덜.. 중얼중얼..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페로비아로 간다.
도착하니, 내가타고자 했던 노선의 버스인지 기차인지..출발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놓치면, 어제처럼 또 못간다. 기차역으로 바삐 들어간다.
매표소로 가서 산퀴리코 표 달라니, 산퀴리코는 기차로 가지 않고 버스로 간단다. 에~??
"그람시 버스 매표소에서 기차역으로 가라 했는데.."
했더니, 기차역앞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면 된단다.
아하~!! 그말이었구나~
산퀴리코행 버스는 기차역앞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거라는 말이구나 흐~~
그 말을 이해를 못하여, 기차역으로 가라하니 기차타고 가라는 줄 알고..
문장하나 잘못 이해하니 몸과 마음이 고생을 많이 한다.
어쨋거나 이번에는 제대로 이해했으니 티켓팅만 하면 되는데..
시스템이 다른 남의 나라에 오니 버스티켓 하나 사는 것도 힘들다.
하긴, 이태리는 시스템 적응의 문제라기보다는 언어문제가 주요원인이었다.
전혀 독해가 되지 않으니..문맹의 설움을 지대로 경험한다.
버스표 하나 사기 위하여 기차역 창구에서 오토머신으로..
거기서 다시 버스 티켓 부스로..거기서 다른 지역 부스로..왔다리 갔다리..
몇번을 하고난 후에야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으니..
그것도 왔다리 갔다리 하는 사이에, 버스 출발 시간이 촉박해져서..
버스터미널로 뛰어가서 내가 표 사올때까지 가지말라고 버스를 붙잡아놓고는 다시 부스로 달려가는 등..
아주 난리 굿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여 도착한 곳이 이 곳, 산퀴리코 도르챠 san quirico d'orcia이다.
날 그렇게 고생시킨 너, 날 얼마나 만족시킬려고..
이곳에서 내릴려하니, 버스기사가 몇번이나 확인한다. 정말 이곳에서 내릴거냐고..
"그렇다'고 확인하니 내려준다.
확신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처음부터 이곳을 찍었고, 다른 곳은 아는 곳이 없으므로..
우선 내려서 주변을 돌아보니, 도시가 한산하기 짝이 없다. 길을 다소 헤매다가, 저 표지를 찾으면서 길이 순조로와진다.
이곳이 산퀴리코 구도시 입구이다. 토스카나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낡아보이는 중세풍의 가옥으로 형성된 도시이다.
구도시로 들어가는 성문 바로 앞에 '산퀴리코 엔 기울리타 교회'와 광장이 있고..
낮으마한 붉은 색 흙담벼락과 지붕이 전형적인 토스카나 시골마을..
가끔 발도르챠 전원풍경에 관심있는 나 같은 여행자들도 볼 수 있고..
구도시는 돌과 흙과 풀뿌리에 시간이라는 재료가 함께 버무려지면서, 있는 그대로 그림이 되고 향기가 된다.
한때, 이 지역을 통치했던 영주들이 거주했던 성이겠고..
레스토랑 입구 장식용 와인병이 보라색꽃과 기차게 잘 어울린다.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산퀴리코에서 두정류장만 더 가면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인데..
피렌체에서 시에나 오는 날 내 옆자리에 앉았었던 신사분에게 발도르챠가 어딘지 물었더니,
'몬테풀치아노'를 말해주며, 와인이 매우 유명한 지역이라며 한 번 가보라고 추천을 해 주었던 곳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이 지역이 어디에 붙었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서..포기했더랬는데..
이 곳에 와서보니..얼마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던 것을..못가본 것이 못내 아쉽다.
가끔 요런 토스카나적인 소품가게들도..
작은 문이건 큰 문이건..네모 문인건, 아취 문이건.. 문을 통해서 바라보는 정경은, 뭐랄까..
보는 이로 하여금 보이지않는 부분에 대한 동경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
.
.
.
.
내 앞에 주어진 이 상황에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들을 둘러보고 감상할 수 밖엔 없지만..
그리고 이 마을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돌다보니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카리스마 넘치는 피렌체와 시에나 등의 대도시들을 뒤로하고..
산지미냐노같은 중세마을에서조차도 한시바삐 떠나왔던 것은
그들에게서 만족되지 않고 충족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을 여기 발도르챠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여기까지 좇아왔는데..-_-;;
내가원하는 것은 없고,
피렌체 내려온 이후 계속 보아오던 황토색 중세마을들만 계속 보여주니..
도대체 발도르챠의 풍경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더 찾아 나서야 하는가..어째야 하나..
생각하며 마을 뒷골목으로 올라간다.
마을 뒷쪽 언덕으로 올라가니, 아~
보인다. 저 멀리~ 투스카니의 하늘과 투스카니의 전원이 펼쳐진다.
높푸른 하늘에 티끌하나 없는 하얀 뭉게구름, 민둥산같은 하얀 구릉, 그 끝에 길게 길게 쭉쭉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들,
은빛 올리브와 싱그런 포도넝쿨에 둘러싸인 붉은색 농가들..
가슴이 탁 트인다.
앞이 탁 트이는 풍경,
한참을 내려다보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마을 어귀로 내려간다,
돌아오는 길에 다소 아쉬웠던 발도르챠의 해바라기밭을,
차창을 통해서나마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