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아의 역사지구
2010. 08. 19(목) 날씨: 맑음
공식적으로 제노아의 마지막날일뿐만 아니라, 이태리 여행의 마지막날이다
제노아 들어오는 당일날은 숙소찾느라 하루를 다 소비했고,
다음날은 친퀘떼레에서 하루를 보내고..
제노아 시내를 관광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오늘이 첫날이면서 마지막 날이다.
앞부분에서 소개한 콜롬보집은 단지, 위치상 분류를 하다보니 첫날루트에 포함시켰으나
사실은 그곳도 이날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선, 신시가지 보다는 역사지구부터 돌아보기로 한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이 '팔라쵸 델 프린치페'이다.
제노아 피아자 프린치페를 지나 오른쪽 대로를 따라 800m 정도 가니 저 끝에 중세풍의 궁전과 시계탑이 보인다.
입구는 생각보다 초라하다. 팔라쵸 프린치페란 프린스의 궁전 즉, '왕자궁'이란 뜻이다.
500년에 최초 건립되었고,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날,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순전히 '까라바죠'때문이다.
위의 사진에서도 보인다. 입구에 '까라바조'를 홍보하는 플랜카드..
전날 저녁 오스텔로에 들어가서 첵인을 하고 들어서자 마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인 것이 '까라바죠'전시 리플렛이었다.
이거 완전 대박..언젠가 하고 봤더니..지금 하고 있다.
그럼, 어디서..? 하고 봤더니, 팔라쵸 프린치페라..
해서, 리셉션의 잘 생긴 총각한테 위치를 물어서 찾아온 곳이 이곳이다.
들어서는 입구와 건물은 다른 팔라초들에 비하면 그다지 웅장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건물 앞에 조성된 이태리식 정원과 넵튠분수는 볼만하다
아래쪽에서 분수만 돋보였다면,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는 정원은
구도적인 측면에서 매우 아름다운 정원이다.
테라스로 나오니 정면으로는 정원과 저 멀리 지중해가
서쪽으로는 제노아의 역사지구와 언덕위의 아름다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복도에서부터 프레스코화로 시작하여
각 방은 시대별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 방을 돌면서 열심히 까라바죠를 찾았으나, 그는 내 앞에 나타날 줄을 모르더니..
제일 마지막 방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난, 최소한 방 하나정도는 내어주는 기획전인줄로 기대했었는데..
이건 뭥미..? 요거 달랑 하나..
그 허무함과 배신감에 기가 찼지만..
내가 이태리어를 몰라서 일어난 사건인것을..참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누구 탓하고 있기에는 오늘 일정이 너무 빠듯하므로 그 시간에 얼른 자리를 옮겨서
하나라도 더 보는 것이 올바른 결정이다.
그래서 다시 제노아 피아자 프린치페로 거슬러 올라가..발비街에 있는 '팔로쪼 레알레(Royal Palace)'로 들어선다.
들어서는 입구가 '팔라쪼 델 프린치페'와는 완전히 다르게, 압도적이다.
이 건물은 바로크 시대의 소중한 보물이며, 1822년부터 사보이 왕실의 거주지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국립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반 다이크 같은 유명한 작가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침시간에 팔라쪼 델 프린치페에서 시간을 모두 소진하는 관계로 정작 이곳에서는 정원만 보고 나온다.
정원의 조약돌 모자이크만 봐도 그 정교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피나코덱 관람을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그냥 발길을 돌린다.
바로 대문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이 건물역시 그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이 건물들은 모두 벽에 사각형 빨간 딱지가 딱~딱 붙어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번호가 찍혀서..
들어가보니 대학이다.
이 곳이 법대라고 했던가..?? 들었던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하튼, 나이가 들수록 사진을 여행길에 사진을 많이 찍는 이유가 있다.
증빙자료가 없으면 기억에서도 지워지므로..;;
이런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건물의 꼭대기에 이런 상징물과 뒷벽에 어떤 의미있는 글들이 있지만..
후~ 문맹의 설움이여...
대학건물 앞으로는, 발비가가 대학가임을 증명하는 책방도 있고..
그러고 보니 이태리에서는 책방을 많이 보지 못한 것도 같고..
대학가에서, 열심히 지도를 읽으며 길을 찾는 은발의 여행자를 보면서..
어느덧 여행에 지쳐가는 내 영혼은, 다시 힘을 얻어 '가리발디街'로 고고..
가리발디가가 시작되는 메리디아나 광장에 도착하니
대로변에는 팔랄쪼 로소rosso, 팔랄쪼 비앙코bianco, 팔랄쪼 도리아 툴시doria tursi를 비롯하여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피아자 폰타네 마로세까지 도열해 있고
큰 도로 이면으로 들어가면 높고 높은 건물들 사이로 좁디 좁은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팔랄쪼 로소, 비앙코, 툴시는 8유로짜리 '싱글 티켓'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위의 빨간 건물이 팔랄쪼 로소, 아래쪽 건물이 아마도 비앙코일 것이다.
팔랄쪼 로소와 비앙코는 주로 중세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가하면,
툴시의 경우는 중세왕가에서 사용했던 의상과 도자기 등의 전시관도 함께 있다.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기억력의 한계로 이미 그들은 망각의 세계로 빠져버렸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이것 하나이다.
툴시에 전시되어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의 참회Maddalena Penitente'..
어쩔 수 없이 도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그 모습이 처연해서..
내 가슴에 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자리를 뜰 수가 없었으므로..
작품설명서를 통해서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면..
원래 이 작품은 수주를 받아서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
작가인 Antonio Canova가 조각에 회화적 효과를 달성해보려는 시도와 종교적 주제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숙고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제작 연도는,
작품 뒷면에 'Canova Roma 1790"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은 1794~1796년 사이에 완성되었다고 본단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완성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이 작품은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는데..
이 때 두가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대중들에게는 열렬한 환호를 받은 반면에, 비평가들로부터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림과 조각의 경계에 대한 작가의 관점과 두 예술 사이에 발생가능한 갈등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 그 이전의 조각들이 주로 울퉁불퉁한 선 굵은 근육들을 표현해왔던 거에 비하면
이 작품의 진짜처럼 조각된 눈물이나 풍부한 머리카락 그리고 누디한 피부톤 등은
조각이 아닌 그림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러니, 나중에 두 장르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겠다만..
어쨋든, 기법의 문제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감성의 정교함이 예술에는 문외한인 나를 그 앞에서 꼼짝 못하도록 만들고 있으니,
가히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거 같다..
이 작품을 본 다음에는,
이전에 보았던 모든 작품들은 다~ 잊어버려도 좋다는 기분으로 뮤지엄을 벗어난다.
대로변의 뮤지움을 관람하고는 도로의 뒷편으로 나있는 골목으로 내려오니 미로같은 좁은 골목들이 펼쳐진다.
그 골목을 사이에 두고, 높고 높은 건물들이 웅장하게 서 있다.
건물은 높고 웅장하나..
그 외관은 이미 세월의 모진 풍파를 다 겪은 뱃사람의 살가죽보다 더 많은 생채기를 안고 있다.
얼기설기 얽혀져 있는 전기줄과 간판들..
높은 건물에 비해 낮은 출입구들..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살지 않는지 출입구의 셔트들은 대부분이 내려져 있다.
이 골목이 얼마나 깊은지..하늘의 햇살도 다 닿지를 못한다.
이런 뒷골목은 옛날부터 제노아 뱃사람들과 그들을 대상으로 살아가는 매춘부들의 거주지였다고..
다른 도시에도 분명 근엄하고 교양있는 귀족들이 사는 지역과 지저분하고 왁자지껄한 천민 또는 서민들이 사는 지역이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들은 그 지역들이 공간적으로 서로의 구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하나 제노아의 경우는, 같은 구역내에서 도로라고 하는 선 하나를 경계로 바깥면에는 근엄한 신사들이
안쪽면에는 비릿한 뱃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구분된다.
이런 모습을 이희수 교수는 '삶과 풍경의 극적인 대비'라고 표현한다.
내가 그 골목을 돌 때,
그런 '삶과 풍경의 극적인 대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 삶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바뀌어져 있다.
제노아 뒷골목에 남아있기에는 이미 부자가 된 제노아 뱃사람들 대신에
그 골목에는 가난한 조국에서 부자의 꿈을 좇아 날아온 무슬림들로 대체되고 있었다.
과거 뱃사람과 매춘부들로 가득했던 이 골목이 이제는 거의 이주온 이민족들을 위한 슬럼가로 변해가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쉽게 발길을 돌려 화려한 번화가쪽으로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이제 돌아가자..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