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강원 기행

송구영신 기차여행을 떠나보자~

노코미스 2011. 1. 3. 00:36

 

함께 일년을 보냈던 사람들, 그 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 받으며

한해를 정리하는 일로서의 송년모임이나 회식들이 무의미한 것 만은 아니나..

그렇다고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그렇게 보낼 수는 없어서..그날만큼은 온전히 나한테 바치고 싶었다.

 

한해의 마지막날을 스승집에서 잘거라고 보따리 싸들고 쳐들어온 제자..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고..

난, 새벽같이 베낭메고 길을 나선다.

 

목적지를 어디로 정할까..하던 차에 여행칼럼에서 발견한 곳 '승부역'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라는 글귀로 유명한 곳..

 

승부역은 행정적으로는 경북 봉화군에 속해 있으나...

위치로는 태백에서 약 25분 정도 떨어져 있는 태백산맥 줄기에 위치해 있는 오지중의 오지..

그래서 겨울철에 운행되는 '눈꽃 열차'의 종착점으로 유명하다.

영남사람에게 눈은 하나의 로망이다. 눈..스노우..그래, 눈을 보러 가자..

 

게다가 전날..

그렇게나 눈이 귀한 영남에서조차도 눈이 쏟아졌잖아..그 정도면 산간오지에는 눈이 겹겹으로 쌓였을지도 몰라..

정말 절묘하고 완벽한 타이밍이다..ㅎ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하여 봉화역으로 전화를 해 본다. 눈이 와도 기차운행에는 지장이없는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 지금 봉화에 눈이 많이 왔는지..

당연히 '많이' 왔단다.

더 이상 지체하고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눈꽃 열차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 개인적으로 찾아가기로 한다.

부산에서 승부까지 그나마 가장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은 기차를 타고 가는 것..

물론 KTX나 새마을호가 아닌 '무궁화'호이다.

 

무궁화호는 '부전역'에서 출발하나보다..

오전 09:05분 하루 한번만 출발하는 강릉행 열차를 타고 약 6시간을 가서 도착할 수 있는 곳.. 

이렇게 어려운 접근성이 나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아침일찍 집에서 출발하여 부산 본가에 자동차를 파킹하고는 '부전역'으로 갔더니..

과거 아주 어릴 때 명절이나 제삿날 엄마손잡고 부전시장 나들이갈 때

곁눈으로 훔쳐보았던 조그만 간이역 같았던 '부전역'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깔끔하게 잘 정비된 현대식 무궁화호 전용역사로 잘 지어져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경우에는 '부전동역'에서 하차하여 부전시장 건물을 끼고는 도로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와야 한다. 택시를 타는 경우는 역사 바로 앞까지 들어온다. 

 

 

택시 승강장 바로 앞에 역사건물이 깔끔하게 자리잡고 있고..

 

 

바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몸이 불편한 노약자들은 오른쪽의 엘레베이트를 이용해서 올라가면 된다.

 

 

 

올라가면 '표 사는 곳' '타는 곳' 의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복도의 분위기는 왠만한 공항 청사같은 분위기이다.

 

 

시간을 보니 조금 일찍 도착하여 여유도 있고 해서, 창을 통해서 주변을 살핀다.

왼편 건너편으로 내려다보니..옆 건물에 '부전역 주차장'이 있다. 다시 내려가서..일 주차비를 물으니 '10,500원'이란다.

계산해보고..이익이라 싶으면 이곳을 이용해도 될 듯..

 

 

주차장 건물 담장을 넘어 시선을 약간 동쪽으로 돌리니..기차가 정차해 있는 터미널이 보인다. 뒤편으로 서면의 빌딩들이 대도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고..

 

 

 

오르쪽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창밖을 내려다보니..

기차 정비장 담벼락 옆으로 텅비어있는 넓은 땅덩어리가 보인다. 아~ 하야리아 부대가 떠난 자리로구나..

 

남의 나라에서 알토란 같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는 치외법권지대로 군림했던 미군부대..한 나라의 역사가 된 땅..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준비중이라 했던가..

 

 

 

표사는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실내 공기가 후끈하다. 사실 이날, 바깥 날씨는 상당히 추웠다.

바깥의 추위와 상관없이 대기실에는 히터를 충분히 올려준다.

따뜻한 대기실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떠날 시간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아침 일찍 나선 사람들은 미리 싸온 떡, 계란 등으로 요기를 떼우기도 하고..

동행이 있는 계꾼들은 동행들의 도착을 하나하나 챙기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 떠나는 사람들도 있어서..나처럼 그들의 주변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나는 매표소로 가서 '승부역' 티켓을 요구한다.

어~ 근데, 매표원 아가씨..매우 낯설어한다.

'어디요~?'

'승부역..'

'승부역이 어디지~?'

'봉화있는데..'

그랬더니, 그제서야 검색을 하더니..

'아~ 승부역~'

 

아니, 그렇게 유명한 승부역을 모르나..

일반인도 아닌 매표원이..

 

생각해보니, 경남쪽에서는 그곳을 목적지로 하여 여행을 하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은가보다..

하긴..나중에 봤지만, 내가 탄 열차에서 '승부역'에 하차한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승부가 오지는 오지인 모양이다. 더더욱 끌린다. 매표원도 모르는 '승부역'.. 흐흐

 

 

근데..

매표원 아가씨가 '아~'하고는 검색을 하더니, 다시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표가 매진이란다, 허걱~

 

입석도 괜찮냐고 묻는다.

일단은 괜찮으니 끊어달라고.. 했더니,

다행히, 일정구간 지나고 다시 좌석이 나오니.. 다시 좌석을 예약해 준다. 

 

 

 

시간이 되니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에 따라, 3번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부전동-강릉'행 열차 1682호가 대기하고 있다.

아이보리 바탕색에 주홍색 띠가 경쾌한 느낌을 준다.

 

 

 

기차에 오르기전까지도 사실은 무궁화호 열차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있었다. 시간이 늦은 것은 이미 내가 알고 결정한 것이고..

그 외에 좌석이 불편하면 어쩌나..추우면 어쩌나..냄새가 나면 어쩌나..

그러나, 기차에 올라서 내 자리를 찾아서 안자마자 바로 나의 그런 걱정들은 그야말로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앞좌석과 뒷좌석간의 거리는 오히려 KTX보다 훨씬 넓고 편하다.  

KTX는 좌석간 거리가 너무 좁아 다리를 계속 굽히고 가야하는데, 이 객차는 발판에 발을 올리기 위해서는 다리를 쭉 펴야한다. 하하..좋다

 

게다가 올라타자마자..실내는 후끈하게 뎊혀져 있어서 바로 외투를 벗어야만 했다.

냄새..이것 역시 기우이다. 상당히 공기도 쾌적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지수가 많이 높아져서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혼자 위로했지만..

이 정도이면 뭐.. 10시간도 탈 수 있겠다..

게다가 새마을호나 KTX에서는 볼 수 없는 서민적인 정감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더 좋다.

 

09:05, 이 기차는 부전역을 출발하여 강릉으로 가는 기차임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서서히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대망의 무궁화호 기차여행이 시작된다.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은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