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도덕적 명령을 초월하는 덕목, 본래성을 말하는 "I am Love"

노코미스 2011. 1. 30. 19:29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틸다 스윈톤, 플라비오 파렌티, 에두아르도 가브리엘리니, 알바 로르워쳐, 핍포 델보노

제작  이탈리아   

장르  드라마, 로맨스/멜로   120분

개봉  2011-01-20

 

 

밀라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기에,

그러잖아도  지난여름 맞았던 이태리 백신이 떨어져 가는지라 우울증 치료에 좋겠다 싶어 찾아갔는데..

 

볼 때는 가볍게 보았으나, 보고나니 가볍지가 않다.

아름다운 로케이션, 멋진 훈남훈녀 배우들, 럭셔리한 소품들, 아름다운 빛과 색의 향연 들..

이 모든 것들에 감동받은 것은 둘째치고,

워낙 많은 싸인과 상징들이 포진되어 있어서..

그것들 다 풀어서 이해하려니, 보고난 다음이 더 어렵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읽고 나면 스토리가 훨씬 풍요롭다.

 

그러나, 모든 행간과 싸인을 다 읽을 수는 없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여주인공의 행로만 따라가보도록 한다.

 

 

구정대목 밑 주말이라 혼잡해 진 도로와 주차장 사정때문에 입장이 4-5분 지연되어서

들어가니, 밀라노 방직산업계의 재벌가문인 레키가의 우두머리인 시아버지의 생일 만찬이 열리고 있다.

 

밀라노 시내에는 하얀 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코트의 깃을 세우고는 종종걸음으로 길을 재촉하지만

레키가의 대저택안에는 바깥의 추위나 바람과는 아랑곳없이 그저 따뜻하고 우호적이고 따뜻함으로 가득차 있다.

 

따뜻한 음식을 앞에두고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소리, 오고가는 미소들..

 

게다가, 오늘 시아버지는 자신의 후계자로 여주인공 엠마의 남편과 그녀의 장남을 공동 후계자로 지목한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는 삶이다.

 

늘 그녀의 등 뒤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는 남편, 친구같은 딸, 그리고 남편만큼이나 사랑스럽고 든든한 두 아들

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녀.. 그것이 현재의 엠마이다.

 

 

 

 

비록 그녀의 그런 행복한 모습들이 자유롭다기보다는 웬지 재단되어 있다는 느낌이 살짝 스쳐지나가기도 했지만,

 

어쨋거나 아직은 완벽한 행복감을 느끼는 엠마(틸다 스윈턴)에게

마치 예고도 없이 선물을 가지고 찾아온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처럼,

그녀에게 예고도 없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는 것인데..

 

이런 예고치 않게 찾아오는 새로운 낭만적 감정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의 51%이상을 차지할만큼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흔하고 흔한 이야기들을 또는 주제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풀어가느냐 하는 것이 예술적 행위의 목적이라고

봤을 때 과연 이 영화는 어떤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반응은 분명 두 갈래로 나누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 쪽은 아름다운 예술영화라고 극찬할 것이고 다른 한쪽은 지저분한 불륜영화라고 폄하할 거라는..

나 역시 이걸 어떤 관점에서 봐야할까..한동안 고민했었다.

 

결국 나는 아름다운 예술 영화쪽에 한 표를 던진다.

어쩌면 철학 영화이기도 하다. 한 여인이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행로에 대한..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본래성이야말로 도덕적 명령을 초월하는 최상의 덕목이라 했으니..

이 여자가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들 친구와 정분이 났다는 것을 용서해야 하느냐 하지말아야 하느냐 또는 윤리적이냐 비윤리적이냐 하는

등의 문제는 한 개인의 존재론적 문제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여년전 미술품 수집차 러시아로 오고가던 남편의 눈에 띄어서 이태리로 시집와서

남편이 지어준 엠마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우아하다. 

파리하게 빛나는 피부, 몸의 곳곳에서 틔지않게 그녀를 빛내주는 악세사리 들, 그리고 원색적이지 않은 그녀의 우아한 포지션과 표정은

완벽한 구도하에 작업된 하나의 예술품과 같다.  이런것들은 모두 남편의 작품이다.

이 아름다운 모습에서 '엠마'라는 타이틀을 빼앗는 순간, 지금까지 그녀가 가지고 있던 그 많은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무'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녀는 '엠마'외의 다른 누구도 아니다.

과거에 그녀가 누구였었는지, 미래에 그녀가 누구일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부르기쉬운 하나의 익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녀가 안토니오를 만나기전까지는..

 

 

 

낯선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또는 그 사랑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난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든다'라고 했지만,

영화에서 '엠마'는 안토니오를 만나기전까지는 사랑에 대한 욕구가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엔 그녀의 욕구에 의해서보다는..그냥 하나의 해프닝처럼 찾아왔다는 것이 옳겠다.

 

어째보면, 사랑은 결과론적 현상이 아닐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눈 뜨보니 '내가 사랑을 하고 있더라~'

 

 

그런 환희의 순간이 '엠마'에게 찾아 온 것이다.

우연히..

자기도 모르게..

 

안토니오와 함께 하는 동안은 온 세상의 문이 열려있고,

온 세상의 자연과 사물은 하늘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짝을 찾아 순리대로 사랑을 하고..

 

 

 

 

 

그녀가 안토니오와 함께 있는 시간동안의 영상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마치 지금까지 엠마의 밀라노에서의 생활이 폐쇄된 공간에서의 감금된 삶이었다면

안토니오가 있는 산레모산골은 마치 그녀의 존재를 모두 다 받아줄 수 있을 것처럼 모든것이 활짝 열려져있고 빛이 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영상은 그러한데, 음악은..왜 이다지도 불안한가..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익명의 거짓존재로서 살아가던 현재의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그것을 찾으려는 본래성 자체가 불안한 행위임을

암시하는 것인가..

 

 

 

격정의 순간이 지나고,

안토니오와의 대화를 통하여 엠마는 자신의 존재를 하나씩 기억해 내고 복원해 낸다.

 

이태리에 오는 순간 모두 잊어버려야 했던 자신의 이름, 그리고 국적, 고향음식..

대신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었고, 또한 모든 새로운 것들 즉, 자기가 아닌 것들을 배워야 했던 시간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긴 머리를 잘라내고..

안토니오의 옷을 걸치고..

그리고 밀라노를 버릴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토니오와의 관계때문에 언쟁을 하다가 실수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게 된 엠마의 상실감은 정상수준이 아니다.

 

죄책감에 용서를 빌러 간 것인지

아님 선택의 순간에 대한 신의 소리를 듣고자 한 것인지는 몰라도 거의 넋을 잃은 채 찾아온 곳이 성당이다.

 

마지막에 그녀가 자신의 삶을 수정하는 공간으로서 성당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자신의 선택이 옳다라는 신념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이 곳에서의 고백을 하나의 聖事로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거나..

 

어쨋건,

뒤따라 온 남편을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백을 하기 시작한다. 먼저 독백으로..

'난 당신이 이전에 알고 있던 내가 아니야~ '

 

그런 속마음도 모른채,

아들을 잃은 아내를 따뜻하게 위로하며 '사랑해~ 함께 잘 극복해나가자'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서로의 속마음을 속이고 숨기며 살아가는 부부의 일상을 보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마음이 서글프다.

 

서로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마주 서 있을 때, 

성당의 지붕창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햇살과 교차해서 날개소리를 힘차게 퍼드덕거리며 자유를 향해 바깥으로 비상해나가는 비둘기

신은 엠마의 결정에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암시해준다. 

'나는 안토니오를 사랑해'..

 

그 다음 장면이 압권이다.

방금 '사랑해~'라고 말하며 자신의 웃도리를 벗어 비에 흠뻑젖어 떨고있는 아내에게 덮어주며 따뜻이 안아주던 믿음직했던 남편..

 

아내의 입에서 흘러나온 '나는 안토니오를 사랑해'..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는데 필요한 잠시의 침묵..

그리고 상황이 파악되자 보이는 그의 태도, 그것은 정말 단호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넌 지금까지 존재하지도 않았어'라는 한 마디와 더불어 덮어주었던 자켓을 훽~하고 바로 벗겨가 버린다. 와~

 

30여년을 함께 살아왔던 시간들에 대한 정리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압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니..

누군가는 이 헤어지는 순간만을 위하여 몇 년 또는 죽는날까지 평생을 소모하기도 하는데,

'넌 지금까지 존재하지도 않았어~" 이 짧은 대사 하나로 상대의 존재를 그렇게 깡그리 지워버릴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역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하여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게 맞다. 

이 한마디로, 우리는 엠마가 키티쉬가 되어 새 삶을 찾아가는 것을 비난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그녀의 존재는 자신이 아닌 남편에 의해서 규정되어 왔었고, 다시 남편에 의해서 그녀의 존재가

'무'의 상태로 되돌아간 지금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창조해 나갈일만 남았다.

그것을 찾아 떠나는 그녀를 어떻게 비난할 수가 있겠는가..

 

물론, 마지막에 안토니오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다소 암울하기는 하였으나..

이후의 결과가 해피할지 안해피할지..하는 문제는 차후의 문제이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 그녀의 딸이 미소지으며 그녀를 보내 주었듯이..

 

.....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여자가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것이 필연인 것처럼 끌어가는 것은 감독의 힘이다. 그것은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의 미학적 안목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여름 이태리 여행에서 느꼈던 두오모 꼭대기의 감동을 재연할 수 있게 해주어서,

또한 일정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산레모를 간접여행할 수 있도록 해 주어서 더더욱 좋았다.

산레모는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이어서 더욱 좋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