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화양연화'
"알아요~ ?
옛날에는 숨겨야 할 비밀이 있을 때 어떻게 했는지..?
산에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곤 하고 싶은 말을 한 후, 진흙으로 구멍을 봉했다죠~
그리곤 비밀을 자기 가슴에 묻는거죠.."
그리곤
오래된 고성의 석벽에 난 구멍에 뭔가를 속삭인 후, 풀잎으로 구멍을 막고 떠나는 남자..
그 남자가 평생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가슴에 묻고 싶은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벌써 10년이 넘은 영화이다.
10년 전, 내 감성에 너무나 잘 맞았었던 영화..그래서 몇 번을 더 봤는지 모른다.
한번씩 감성이 메말라간다 싶으면 생각나는 영화..'화양연화'
이제는 나이도 나이이니만큼 이전만큼 주인공들의 감성에 함께 젖어들지는 않으나,
여전히 영화적 감성은 좋다.
현대화되기전, 60년대 홍콩의 퇴색한 듯한 느낌의 골목들과 비오는 날의 가로등..
그리고 두 연인들의 감성만큼이나 슬로우 템포로 흐르는 카메라 앵글..등등
더불어, 음악적 감성 또한 탁월하다.
중간 중간
두 주인공의 마음이 교차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넷킹콜의 부드러운 저음 'Quizas, Quizas, Quizas'와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Yumeji's Theme 등은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비가 오지 않아도 비오는 날의 차분하게 젖은 감성을 느끼게 해준다.
우연히 같은 날, 서로 이웃한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두 남과 여..
각자 남편과 부인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둘은 늘 혼자이다.
여주인공의 남편은 사업상 일본 출장이 잦고, 남자 주인공의 아내 역시 출장이 잦다.
그래서 혼자서 국수를 사러가고, 혼자서 국수를 먹고..
어느 날, 내 아내가 들고 있는 백을 그것도 국내에서는 그닥 흔치 않은 백을 그녀가 들고 있다.
내 남편이 메고 있는 넥타이를 그가 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 남편과 똑 같은 라이트까지..
내 남편이 귀국해서 집에 있는 날은 그의 아내도 집에 있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용케도 내 남편이 출장을 가는 기간에 그의 아내도 출장이다.
서로 말은 않지만 짐작은 간다.
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똑 같은 입장이 되어서 둘이서 상황극을 연출해보기도 하고..
두 부정한 배우자에 대한 똑같은 배신감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함께 연습해보고..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고, 아픈 몸을 다독여주고..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늘 말해왔지만..
그들 역시 어느사이엔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여자는 늘 남편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했지만,
남자의 이별 연습 제안에 남자보다 더 많이 마음이 아픈 것은 여자이다.
마음은 그를 따라가고 싶어나
당시의 시대적 도덕성은 그녀에게 남편을 기다리라고 말하고..
결국,
남자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그녀와의 시간'을 가슴에 안고 혼자서 싱가포르로 떠난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화양연화'가 있는 옛날의 그 셋집으로 둘 다 돌아와 보지만, 어긋나는 두 사람의 행보는 다시 만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아마도 일생에서 한번이면 족하다는 의미인가..
"그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지나간 날들을 추억한다.
비록, 먼지낀 창틀을 통해서 보듯이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일뿐이지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그 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