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영동 기행

내 삶의 한 부분을 의탁했던 그 곳, 구룡포

노코미스 2011. 8. 27. 03:23

 

구룡포!!

 

왜 구룡포라고 했을까..? 당연히 의문을 가졌었지..

그럼에도 진지하게 그 답을 얻을 노력은 하지 않았다.

9마리의 룡과 관련될 것이라 정도만 생각했지..그 외의 디테일은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말해준 적도 없었고..

 

그런데, 호미곶 새천년 기념관에 가니 지명의 유래가 설명되어 있다.

"용 열마리가 승천하다가 불행하게도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나머지 아홉마리가 승천한 포구" 라고..

왜 그 시점에서 10마리의 용이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지명의 유래는 그러하다.

 

근데, 10마리가 다 올라갔으면 이곳의 지명은 뭐가 됐을까..? 열룡포?

..한 마리가 잘 떨어져 죽었다.

 

 

어쨋거나 이 곳은 내 삶의 한 부분을 의탁했던 곳이다. 20년도 더 된 어린시절..처음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했던 곳

 

임용을 받고 근무를 하기 위하여 이 곳에 처음 방문한 날 그 날의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3월임에도 불구하고 골목골목 스산하게 불어닥치는 매서운 바람과 그 바람결에 휘날리는 초봄의 서설..

 

그러잖아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혼자 독립을 시작해야한다는 사실에 바짝 긴장하고 불안해 있던 상황에

그 날의 차갑고 스산스러운 날씨는 나의 몸과 마음을 더욱 서럽고 춥게 만들었었다. 

 

시작은 그러했으나..

 

 

그래도 3년동안 이 골목 저 골목을 오르내리며 참 즐거웠었고,

아침저녁으로 이 길을 오르내리며 수많은 나의 워너비를 생각했다. 내 생애 가장 꿈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공원옆에 근무했던 학교가 있었는데..

학교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폐쇄되고 없어졌다. 당황스럽다.

 

공원은 그 때보다 훨씬 말끔하게 정비가 되어 있다. 가르치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이 공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7살밖에 안된 녀석이 이 곳에 앉아서 앞 바다에 떠 다니는 배를 얼마나 잘 표현하든지..

그 녀석도 벌써 30살은 되었겠다.

 

 

 

 

구룡포의 숨겨진 역사와 덧대어진 역사를 외현으로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

이 모습속에 숨기고 싶지만 버리지 못하는 구룡포의 혼재된 역사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공원을 돌아서 공원뒤에 위치해 있는, 이제는 폐교가 된, 옛 근무처로 들어가본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쓸고 닦고 가꾸고, 아이들과 함께 했을 여러가지 상징물과 건축물들이

몇년동안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끊기면서 점차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운동장은 아예 온통 잡초로 뒤덮여 있다.

 

 

 

풀밭을 헤치고는 구룡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뒷마당으로 나가본다.

은행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은행나무가지 아래로 구룡포 시내와 자리를 옮긴 수협공판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 여름 아침 이곳에 서면

해무가 발밑까지 감싸고 올라와 마치 내가 구름속에 떠 있는듯한 환상을 주기도 했던 아름다운 장소이다.

 

잠시동안, 이 작은 도시속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더듬어보다가 더 어두워지기 전에 자리를 뜬다.

 

 

장안리 골목으로 내려온다.

20여년이 넘은 세월이니 당연하겠지만, 골목이 많이 쇠락해보인다.

하긴 20년전에 이 골목에서 젊은 처자교사로 불리웠던 나 역시 기력이 쇠해가는 중년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근래들어 부쩍 구룡포가 여러 블로그에 등장한다.

과거 행정단위가 영일군에 속했었는데, 포항시에 편입되면서 이 지역을 테마 관광지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다. '구룡포 일본인가옥 보존지구'같은..

 

 

 

허긴, 이 골목안의 모든 가옥은 일제시대 지어진 적산가옥구조가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은 어떠한지 몰라도,

당시 내가 이 지역에 근무할 때만 하더라도 실제로 2층에 올라가면 다다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집들도 꽤 많았었다.

 

 

 

적산가옥을 보존하고자하는 구룡포주민들의 속뜻은 어쩌면 

이 거리가 많은 돈과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과거 화려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곳에 올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이전의 시간 즉, 70년대의 풍요를 말하곤 했었다.

'그 땐, 길거리의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었다'

그러나, 그렇게 추억을 회상하곤하던 그 시절도 나쁘진 않았다.

 

여름부터 추석전후가 되면 만선의 꿈을 실은 오징어 배들이 하나 둘 구룡포 앞바다에서 불을 밝히고

그 배가 한번 나갔다 들어오면 포항시내 백화점 매출은 거의 구룡포사람들이 책임진다 할 정도로 그 씀씀이도

아주 여유있었고 통도 컸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여유가 많이 사라져 보인다.

 

 

 

'후루사또'

들어가서 차 한잔을 하고 최근의 동향도 좀 들어볼까 했더니..

11:00-18:30까지만 운영 한다고.

 

 

 

적산가옥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대표적인 가옥

원형이 남아있는 집 담벼락에는 일제시대때의 최초 건물 사진과 일본인 건물주 이름을 붙여놓았다.

 

이 거리가 과거에는 유흥가였다고 하더니, 이 집 역시 유흥 음식점을 하던 건물이다.

 

 

 

한창 번창했을 당시의 장안리 골목의 모습이다. 남쪽이 포구쪽이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공원이 있는 용주리가 나온다.

장안리와 용주리가 일제 시대 대표적 번화가였다.

 

아마도 조만간에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재현되지 않을까 싶다.

 

 

 

구룡포까지 왔으니 '전복죽'을 먹고 싶었다. 어느 집이 맛있는지 알 수가 없어 동네주민 한분을 잡고 물었더니..

'구룡포 전복집'의 죽맛이 좋다고 일러주시더니 날 빤히 바라본다. 안면이 많단다.

 

20여년전에 저 위 학교에 근무했었다고 하니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 이름을 나열하며 바로 날 기억해 낸다.

당시 1학년 학부모셨나보다. 기억력도 참 좋으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날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니 기분이 좋다. 20년전의 나와 조우하는 느낌이다.

 

 

 

전복 한마리를 듬성듬성 썰어넣은 전복죽을 맛있게 먹고 나오니 바깥은 벌써 어둠과 가로등 불빛으로 가득차 있다.

 

 

이 사진은 한국전쟁이 터진 2년 뒤인 1952년의 구룡포사진이다. 위의 사진과 같은 거리이다.

 

 원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특히 건물이 있는 쪽은 가로등 불빛과 네온사인 간판으로 화려함이 약간 더해졌을 뿐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다쪽은 상당히 많이 매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로가 물가에 바로 인접해 있었던 거에 비해서,

근래의 사진에서는 도로가 벌써 4차선으로 확장되었을뿐 아니라

도로 이면에는 또한 8차선 넓이정도의 공영주차장이 있으니..그만큼 바다가 좁아져가고 있다.

 

 

 

매립지 안쪽으로 들어가본다.

당시에는 이 시기쯤 되면 오징어배 집어등의 불빛으로 인해서 온 시내가 대낮같았고,

만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온 마을이 활기가 넘쳐흐르곤 하였는데..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다시 찾았건만..

 

 

 

 

다시찾은 나의 제 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구룡포는 과거의 그 흥청거리던 부잣집 분위기는 시간속에 묻혀버리고

쇠락해가는 조그만 포구의 모습만 어둠속에 남아있다.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는 다시 구룡포 시장으로 들어가본다.

늦은 시간이라 당연히 파장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들어갔지만 그 시간에도 떨이를 흥정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생애 최초로 한치회란걸 경험하게 하고,

꽃게 등딱지에 붙은 내장이 그렇게 맛있고 오도리가 그렇게 맛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해준 곳,

과메기란걸 먹어보게 하고, 도로묵이란 생선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해 준 곳이 이 구룡포시장이었다.

 

시장의 모습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 ..

 

 

 

구룡포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와 분식집들도 70년대의 향수를 자아내는 분위기 그대로 밤을 맞이하고 있다.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맞이해 줘서 고맙다.

 

그러나, 과거 버스 종점과 공판장이 있었던 번화가쪽은 판도가 많이 변해있어서 옛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밤 8시가 넘어서야 구룡포를 벗어난다. 오천근처에 오니 빛의 도시 포항시가 화려하게 나그네를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