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나라 /12-09 프랑스

순교자의 언덕, 몽마르뜨(Montmartre)

노코미스 2012. 10. 7. 12:38

 

2012. 9월 2일(일요일) 오후

 

파리에 온지 사흘만에야 파리의 전통음식하나 먹어본다.

내용을 알고 보면 영~ 먹고 싶지않지만 이름만 들어보면 너무나 우아할 것 같은 음식, 에스까르고 달팽이 요리~

 

 

영화 '귀여운 여인'을 보며, 프랑스 가면 저 달팽이 요리를 꼭 먹어봐야지 벼뤘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처음 파리에 왔을 당시 일정에 에스까르고가 들어있어서 얼마나 행복했었던지..

 

근데, 오늘 에스까르고를 먹으러 간단다. 당시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따라간다.

훗, 이곳은 6년전에 에스까르고를 먹으러 왔었던 바로 그 집이다. 파리에 에스까르고를 하는 집이 그렇게도 없나~ㅎ 

 

이집은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으로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집인데,

최근에 와서 영업전략상 그룹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가이드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한번씩은 다 들러는 집이 되었다.

 

나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가 넘겨주는 달팽이까지 합해서 9마리정도 먹고나니

더 이상 달팽이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어져 버렸다.

 

점심을 먹고는 몽마르뜨(MontMartre)로 간다.

 

 

몽마르뜨언덕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무랑루즈'를 지난다.

지금은 그런 낭만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 곳 다락방에서 노래하던 니클 키드먼과 이완 맥거리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려본다.

 

 

 

몽마르뜨(MontMartre)에 도착했다.

 

몽마르뜨는 '순교자의 언덕' 또는 '마르스(Mars)의 언덕'이라는 뜻을 갖는단다.

마르스의 언덕은 몽마르뜨의 원 의미이고,

순교자의 언덕에 촛점을 맞추는 설은 AD250년 파리최초의 수도사였던 생 드니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목이 베여 순교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근대 파리시민들에게는 더 의미있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가 절대 군주국가에서 오늘날과 같은 자유민주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파리시민들의 대 유혈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1789년에 시작된 파리 대혁명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파리코뮌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수없이 많은 생명을 바치고 피를 흘렸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갔는지

파리시내의 모든 보드블럭에 핏물이 흘러넘쳐서 세느강이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시대 무고한 시민들이 흘린 피로 얻어진 가치가 평등, 자유, 박애이다.

 

이 때 파리코민막바지에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격전지가 이곳 몽마르뜨였다.

 

몽마르뜨의 바리게이트가 무너지면서 혁명군은 국군에 항복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이후에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국가적 이념을 국가헌장에 삽입하게 되었고

자유민주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

 

그런 역사를 뒤로 하고 지금은 아뭏든 많은 사람들이

몽마르뜨의 샤크레쾨르 성당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기 위하여 이곳으로 모여든다.

현지인들에게는 모르겠지만 관광객들에게 있어서는

에펠탑, 개선문, 그리고 몽마르뜨의 샤크레쾨르 성당은 파리의 공식 랜드마크이니..

 

우리는 두어시간의 자유시간을 얻어 각자가 알아서 주변 구경을 하는 것으로 하였다.

해서, 나는 성당보다는 떼르뜨르 광장쪽으로 먼저 향한다.

 

 

 

떼르뜨르광장, 이 곳이 몽마르뜨의 꼭대기이다.

몽마르뜨가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고, 떼르뜨르는 몽마르뜨의 꼭대기이니

곧, 떼르뜨르는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 되는 셈이다.

그래봐야 해발 130m란다.

 

아뭏든,

많은 관광객들이 몽마르뜨를 찾는 이유는

사실은 샤크레쾨르성당이 아닌 이 떼르뜨르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언덕위의 마을을 보기 위해서이다.

이 마을은 중세의 모습을 전혀 개발하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떼르뜨르 광장 입구로 들어가니 성당 뒤쪽으로 오래된 생피에르성당이 있다.

앞쪽의 웅장한 샤크레쾨르성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한산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종교적 분위기는 오히려 이쪽이 더 강하다.

 

 

 

 

이렇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준다. 이런 것이 종교의 기능 아니겠는가..

 

 

피에르 성당에서 광장쪽으로 나오면 바로 건너편으로 보헤미안 까페(살롱 드 라보엠)가 있고

그 앞으로 근대기를 재현하는 복고풍의 악사가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19세기 말, 수많은 예술가들이 집시처럼 모여들었던 공간 몽마르뜨르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었길래 그랬을까 했더니..

 

사실, 근세기까지 몽마르뜨지역은 파리시가 아닌 파리근교의 시골마을이었고

 프랑스를 동경해서 파리로 날아온 수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파리에서 가장 방값이 싼

산꼭대기 마을 몽마르뜨로 몰려들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면서 이곳은 예술과 문화와 자유가 있는 환락의 거리로 자리잡기 시작했단다.

 

 

산꼭대기 마을의 입구에 있는 광장에는 아직도 많은 거리의 예술가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지금은 그다지 예술성을 드러내는 작품은 보기가 어렵다.

 

어떤이는 자신의 그림이 노출되는 걸 꺼리는지라 화가들의 사진은 그만찍고 눈으로만 즐기기로 한다.

 

 

근세기의 로트렉, 피카소, 모딜리아니, 고흐, 고갱..그들이 걸었을 거리

드나들었을 까페, 레스토랑, 아뜰리에, 갤러리 등을 상상하며

골목골목을 탐색해본다.

 

 

 

그들도 이곳에서 벨에포크를 찾고싶은게지~

 

 

골목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시간냄새가 나는 바나 까페들이 보인다.

 

 

골목길의 작고 아담한 까페일수록 자신들만의 개성과 스토리를 많이 안고 있다.

안면있는 그림과 사진들을 곳곳에서 발견한다.

 

 

근세적 분위기의 까페 옆집에는 물론 현대적 감각의 까페도 공존하고..

 

 

영화 '아멜리아'에서도 본 듯한 거리.

축대의 벽면을 갤러리로 활용하는 센스, 그녀는 누구를 찍는 것일까..?

 

 

 

그래, 나도 이 남녀가 부러웠어~

그녀도 보니 혼자구나, 그러니 이 커플들이 부러웠겠지~^^

 

 

훨씬 화려해진 몽마르뜨의 그림들 속에서..

이 중에서 몇 백년후 21세기의 몽마르뜨의 풍경을 대변해줄 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코너를 돌때마다 만나게 되는 이런 분위기의 까페, 레스토랑..

 

이런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때 그 곳에서의 냄새, 분위기, 느낌, 향기 등이 솔솔 퍼져나오는 듯 하다

도란도란 이야기나누는 소리, 에소프레소 증기뿜어내는 소리, 주문 주고 받는 소리들..

그윽한 커피향, 가을그늘 냄새

오고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들..

 

 

 

몽마르뜨에 남아있다는 오래된 포도밭을 보기 위하여 샤크레쾨르 뒷편 서북쪽 골목으로 내려가니

포도밭 아래쪽 조그만 가옥앞에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 있다.

앞에서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중이고 여행자들은 설명을 들으며 이집에 집중하고 있다. 

 

 

 

뭐지~? 뭔가 유명한 집인건 분명하다.

집앞에 이런 포스트도 붙어있고..

근데 글자를 모르니 무슨 내용인지는 알수가 없다.  일단찍고보자.

캬바레 아티스틱? 예술가와 관련된 곳인가보지..

 

 

 

정리하면서 이 사진이 나온다.

친절한 '이웃님'에게 물어도 잘 모르고..

 

아하, '위키피디아'가 말해준다.

 

 

Au Lapin Agile(재빠른 토끼)은 파리의 18구 몽마르뜨 언덕에 위치한 유명한 캬바레이다. 오홋~

원래는 '암살자의 카바레'로 불리웠는데 그 이유는 어느날 자객이 들어와 이집 주인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이란다. 흠~

 

그 이후,

 캬바레가 20살쯤 되었던 1875년에 예술가 Andre Gille이 이 집 간판을 그려줬는데 그것이 이집의 영원한 이름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간판 그림이 바로 토끼가 뜨거운 스튜냄비에서 뛰쳐나올려고 하는 그림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는 카바레를 'Gill의 Lapin(Gill의 토끼)'라는 뜻으로 'Le Lapin A Gill'이라 불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Cabaret Au Lapin Agile'으로 진화해버렸다는 것이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이곳은 피카소, 모딜리아니, 아뽈리네르 등 쟁쟁한 화가와 문인들이 자주 찾는 핫 스팟이 되었단다.

 

1905년 피카소의 유화 '라팽아질에서'라는 그림이후, 이집이 많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몽마르뜨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에서도 등장하는 유명한 집이란다.

 

참고로 인터넷 바다를 뒤져서 관련자료를 찾아봤더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나온다.

 

 

1880~90년경의 라팽 아질 사진(왼)과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에 등장한 라팽아질(우)

 

 

Gill이 그림 간판그림 'Lapin'(좌) 과 피카소의 '라팽아질에서'(우)

 

 

  이런 히스토리가 있는 집인줄도 모르고..

 

몽마르뜨 까페하면 '무랑루즈'만 있는 줄 알았는데, '라팽아질'도 있구나.

그뿐이랴 고흐나 르노와르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뜨'도 이 언덕에 있다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몽마르뜨를 예술의 언덕이라고 할 때,

사실은 샤크레쾨르쪽 도로보다는 오히려

그 뒤편에 있는 이쪽 골목이 그 단어에 더 적합한 공간이다. 

 

라팽아질을 그린 몽마르뜨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의 어머니 슈잔 발라동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그녀를 말하다보면 그녀와 연관된 당시대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줄줄이 엮어져 나오게 된다.

 

이 언덕이 그들의 스토리와 연결되어 있는 언덕이다.

 

만약 파리를 한번 더 올 기회가 있다면

몽마르뜨, 멀 다시 찾으마~

 

 

 

다시, 골목을 타고 올라오니 오늘날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예술을 판다.

 

 

 

그저 '아~'하고 감탄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고, 감동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우리도 이런 공간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좋다~

 

 

집합시간이 되어서 부랴부랴 첫 출발지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샤크레쾨르 성당을 들여다보고자 했지만

현지인들의 미사시간이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래서 바로 나와버린다. 멀리서 인증샷이나 하나 남기고..

 

 

순교자의 언덕 '몽마르뜨'는  예술의 언덕에서 지금은 자유의 언덕으로 ..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