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19세기 대 서사의 감동, '레 미제라블'

노코미스 2012. 12. 23. 14:24

 

 

 

 


레미제라블 (2012)

Les Miserables 
8.3
감독
톰 후퍼
출연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정보
드라마, 뮤지컬 | 영국 | 158 분 | 2012-12-18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왕정시대가 멸망직후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다시 왕정복고시대로 넘어갔던

역사의 대격변기(영화에서는 1815~1836년)를 살아간 '불쌍한 사람들'인 제 3신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빅톨위고의 장편소설을 근거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소설이 쓰여진 이후, 130여년간 수많은 연극과 영화로 재해석되어져 왔지만, 원작이 좋다고 영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영화적 감동은 누가 연출하고,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그 맛과 느낌이 달라진다.

우연히도 이 영화를 보고 이틀뒤인 어제밤 ebs에서 방영하는 1999년판 '레미제라블'을 잠깐 보았다.

 

그것을 보면서 원작을 재해석하는 각본과 그것을 어떻게 구성할것인지를 결정하는 연출자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연기하는 연기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판 레미제라블이 얼마나 웅장하고

감동적이며 스펙타클하며 훌륭한 구성을 가진 영화인지를 상대적으로 더욱 더 실감할 수 있다.

 

조금 다른 말이지만,

어릴 때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만 감정적 요소가 들어갔다 싶으면 눈이 퉁퉁붓도록 울었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날인가부터는 눈물이 없어지고 상당히 냉소적 반응을 하고 있음을느끼게 되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내 감정의 삭막함때문일거라 짐작은 해 본다.

그런 나였는데, 이번 레미제라블을 보면서는 2시간 반동안 내내 눈물이 흘러서

옆사람들에게 방해되지않기 위해 얼마나 감정을 억눌러야 했는지 모른다.

그런 감정의 임펙트가 어디서 오는 것이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을 하나로만 말하기에는 이 영화는 매우 복합적이다.

매우 다양한 관점과 주제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씩 풀어나가지 않으면 실타래처럼 얽혀서 오히려 뭐가 뭔지 알수가 없을 지경이다.

하나씩 풀어보자~

 

1. 영화는 원작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 작가가 누구지를 먼저 생각하였다.

 

왜?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들에 비하면 원작에 대한 해석이 매우 남다르다.

 

첫째, 원작에 숨어있는 종교적 에너지를 바깥으로 완전히 드러내고 있고 장발장을 거의 성자로 해석하고 있다.

장발장이 가석방이후 헤어진 옷과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맨발로 눈보라가 휘날리는 해질녁 높은 돌산을 넘는 모습이나

이름모를 산골마을에 도착해서 잠자리를 얻고자하나 '위험한 인물'이라는 낙인에 의해 동네 사람들로부터 돌팔메질 당하는 모습 등은

마치 구도의 길을 떠나고 성자가 핍박을 당하는 종교적 이미지들과 일치한다.

 

 

더불어 그가 미셸린 주교로부터 은혜를 받은 후 회개하고 성공한 후에 불쌍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온정은 거의

성자수준이다. 특히, 판틴이 능욕당하고 있을 때 그가 그녀에게 베푸는 사랑은 마치 예수가 거리의 여성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습과 그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런 상징화는 영화 곳곳에 붙박혀있고, 그런 상징성을 최대한 이미지화하고 최대한 언어화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개인의 영성을 자극하여 신성한 임펙트를 남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 다른 시나리오들은 장발장 이야기를 거의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보편적 이야기로 축소시켜서 풀어나가는 편이라면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과 왕정복고시대의 혼란스러운 특정 시대의 대 서사를 함께 삽입함으로써

그럴수밖에 없는 개인적, 시대적아픔의 당위성을 공감하도록 하고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시대의 대 서사는 개인서사의 배경으로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오늘날 우리들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응하도록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일종의 시대적 사명감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셋째, 개인의 문제를 시대적 서사와 병렬할 때는 늘 다음과 같은 문제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즉, 개인이 지은 죄가 과연 개인의 책임인가 아니면 그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사회의 책임인가?

 

장발장이 빵을 훔치게 된 것은 그의 비도덕적 품성때문인가 아니면

빵을 사고자 하나 빵을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한 사회의 책임인가를 묻고 있다.

 

자베르 경감은 끊임없이 '너 같은 녀석은 늘 그런식으로 살지~'라고 단정지으면서 개인의 품성론을 주장하지만,

반대로 소설은 장발장이 성공하여 충분한 돈을 벌었을 때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죄는

개인적 품성때문이 아니라 상황적 요인임을 말하고자 한다

 

 

 

네번째, 이 시나리오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주제는 

법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완고한 법치와 관용적인 사랑의 효과간의 대비이다.

자베르경감은 완고한 법치의 화신일 것이고, 장발장을 구원해준 수도원장은 사랑과 관용의 분신일 것이다.

 

과연, 무엇이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미래 우리사회에서 불쌍한 국민을 구원할 주제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인류 공통의 보편적 문제인식이기도 하다.  

 

물론, 이같은 내용들은 모두 원작에 내재되어 있고 표현되어 있는 것들이지만

그런 주제와 인식들을 강조하고 약화하는 것은 시나리오 작가의 몫이다.

 

2012년판 레미제라블의 시나리오 작가팀이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의 주제 인식은

매우 냉철하고 지적이다. 이런 복합적인 주제들을 서로 동떨어지지 않고 스토리와 스토리 사이에서

겹겹이 끼워넣어서 튀지않으면서도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은 대단한 능력들이라 생각된다.

 

 

2. 시나리오는 감독에 의해서 한번 더 재구성된다. 이번에는 감독이 궁금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아무리 각본을 잘 썼다하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이미지화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그래서 작품은 감독과 연출자의 손에서 한번 더 재구성된다.

각색팀의 주제 인식도 좋았지만, 그것을 주제 인식이 드러나도록 연출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란 말이다.

 

그래서 누가 과연 이런 대작을 연출했을까하고 봤더니 '킹스 스피치'가 뜬다.

'킹스 스피치'의 감독 톰 후퍼 감독이 연출했단다.

 

사실 매치가 잘 되질 않는다. 킹스 스피치가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는 했지만

영화의 규모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나 이런 면에서 다소 불만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능력으로 이런 스펙타클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하고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허지만 그가 만든게 사실이라니까, 그의 진화하는 연출력을 축하해줄 수밖에 없다.

 

 

3. 감독의 복 중 하나가 적절한 캐스팅이다. 앤 헤스웨이는 완전 물이 올랐다.

 

영화속의 판틴은 마치 성경속의 창녀 막달레나 마리아를 연상케 한다. 혼자산다는 이유로 치욕당하고 능욕당하고..

 

천한 여성이 당하는 이런 모욕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모든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도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아뭏든 한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너무나 놓여진 상황은 가슴 아프다.

그 때, 판틴 그녀를 표현하는 앤 헤스웨이의 감정몰입은 정말 처연하다.

 

 

생선비린내가 진동할 것 같은 부둣가 사창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절망스러운 상황과

불행을 비통해하는 판틴을 표현하기 위하여 11KG나 감량하고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잘려나간 볼품없는 모습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픔 그 자체이다.  

 

 

 

 

그 외에도 장발장의 휴잭맨 역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내었고, 코제트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사랑스러움은

맡은 역할과 싱크로율 100%이다. 사랑스러운 코제트의 짝으로서 마리우스 역의 에디 레드메인의 캐스팅 역시

너무나 적절했던 거 같다. 둘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에디 레드메인은 '세비지 그레이스'에서 매우 인상깊에 본 친구중에 하나여서

이번 영화에서 만나게 되어서 상당히 반가웠다.

쥐면 깨어질 것 같은 병약한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마력이 있는 배우였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신념과 행동력이 강력한 혁명군으로서의 이미지도 잘 그려서

마치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그 외에도 어린 아역들 마저도 자기 몫을 100% 척척해내니

영화가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중견배우인 러셀크로우만이 남의 옷을 입은 듯해서 다소 안습이었다.

 

이렇게 각본과 연출과 연기자 삼박자가 착착 맞아떨어져 주니 런닝타임 2시간 반이 길지 않다.

개봉 며칠만에 100만 관객이 눈앞이란다.

아직 레미제라블 보지 않은 분들은 주말 한 나절 좋은 영화 한편에 투자해보라고 권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