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겹 연꽃잎에 감싸인 청정도량 '청량사'
건너편 청량정사에서 위태롭게 올랐던 가파른 길이 아닌 편한 길로 애둘러 나오니
바로 청량사 설법당과 해우소 방향으로 연결된다.
본당으로 연결되는 산비탈에 돌과 기와장을 이용해서 쌓은 장독대가 멋지다.
장독대에서 내려다보니 범종루가 언덕 중턱에 우뚝 솟아있고..
범종루 아래쪽으로 반가위관음미륵상이 깊은 고민에 빠져 앉아있다.
그 아래쪽 건물이 '안심당'이라고 하는 찻집이다.
다른 말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이 닉네임은 안심당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청량사를 위한 닉네임으로 적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청량사야말로 '바람이 소리를 만나는 곳'이라고나 할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올까
창호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청량산인-
본당인 '유리보전'이다.
유리보전이란 명칭은 처음 들어보지만, 설명서에 의하면
약사여래불을 모시는 본당을 유리보전이라 칭한다
이 유리보전은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간한 고찰이라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청량산에는 연대사라고 하는 사찰을 중심으로 대소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의 요람을 형성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유리보전 가옥형태는 조선후기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단다.
본당 안으로 들어가본다.
약사여래불을 중심에 모시고 양쪽으로 지장보살과 문수보살이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이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는데
그 중 하나는 공민왕이 친필로 썼다고 하는 '유리보전(琉璃寶殿)'현판이고
다른 하나는 지불(紙佛)이다.
지불이란 종이로 만든 부처라는 의미인데,
위의 부처님이 바로 그분이시고, 현재는 그 위에 금도금을 입힌 상태라 한다
아뭏든 당일 가까이에서 봤을때부터 부처님의 신상이 다소 부실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단순히 제작연도가 오래되어서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종이로 제작할 정도였다면 제작연도도 당연 오래되긴 했을 터이다.
상당히 귀중한 자료를 본 것이다.
유리보전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청량산 허공중에 5층 석탑이 고고하게 솟아있다
건너편 하얀 산봉오리와 텅빈 허공이 멋진 배경으로서 역할을 자청한다.
이러한 완벽한 조화가 바로 '깨달음의 본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자연속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탑신앞 촛대함에서는 우리네 연약한 중생의 영혼같은 촛불이 흔들리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것은 어둠속에서 한 줄기 아름다운 빛이 되는
우리네 희망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 뒷편 작은 산신전 문앞에 등을 돌리고 있는 저 여인네는
무엇을 저리도 간절히 간구하는 것인지..
뒷모습에서도 그녀의 간절함이 묻어있다.
본당 뒷편쪽에서 불탑난간쪽을 조망해본다.
불탑앞에 가지가 셋인 거대한 소나무가 귀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 앞에 이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청량사에는
신라 고승이자 당대 최고의 사상가였던 원효대사와 관련된 유적과 설화가 많이 있다고 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삼각우총과 삼각우송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인즉슨,
원효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힘을 쏟고 있을 때 하루는 절 아랫마을에 내려가게 되었다.
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를 만났는데 마침 농부가 소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의 뿔이 셋이나 달려 있는게 아닌가.
하지만 이 뿔 셋 달린 소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 때 원효대사가 농부에게 다가가 이 소를 절에 시주하는게 어떻겠냐고 권하니
농부는 흔쾌이 이 뿔 셋 달린 소를 절에 시주하겠다고 하였다.
원효대사는 농부에게서 소를 건네받아 절로 돌아왔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멋대로 날뛰던 소가
신기하게도 절에 온 이후로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것이었다.
소는 청량사를 짓는데 필요한 재목이며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밤낮 없이 운반하고는 준공을 하루 남겨 놓고 생을 마쳣는데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원효대사는 이 소를 지금의 삼각우송 자리에 묻었는데 그 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 후세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삼각우송’이라 하고 이 소의 무덤을 ‘삼각우총’이라고 불렀다.
불탑과 본당 가운데에 우뚝솟아있는 소나무가 전설속의 '삼각우송'이다.
전설이야기를 읽고 위로 올려다보니 정말 소나무의 가지가 3개로 갈라져 있다.
청량사에서 이런 전설속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도 제법 쏠쏠한 재미가 있겠는데,
사실은 오늘은 시간이 그닥 많지를 않아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찍고는 내려와야 한다.
산신전에 올라 내려다보니
지난주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아 희끗희끗해진 기와지붕너머로
육육봉으로 둘러싸여진 청량사의 아담한 모습이 응집된 모습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작은 암자 처마끝에 메달린 풍경을 볼 때마다 나는
내 가슴의 처마끝에 작은 풍경하나 달아놓고
나를 흔드는 바람에조차도 아름다운 소리로 반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천상 세속인일수 밖에 없는 나의 욕심들과 행동에 스스로 헛헛해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것조차 삶의 의욕이라 위안하며 하하거리면서 일상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