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염천지절에 구름조차 외로운 의성 고운사(孤雲寺)
2013. 8월 14일 수요일
아는 이로부터 '자기가 무슨 도닦는 사람도 아닌데 뭐하러 이 뜨거운 8월에 길을 나서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성 댓글을 받아가면서도
나는 큰 변명의 여지없이 그냥 또 길을 나섰다.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가도 그만이고 안가도 그만인것을 왜 이 뜨거운 염하지절에 길을 나서야 하는가?
아뭏든 그이로 인하여 큰 화두하나 받았다.
고운사 들어가는 길에 보게된 늦여름의 시골풍경이다.
내 어릴적에는 이런 모습이 시골마을의 전형이었건마는 지금은 귀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제 시골농가도 마당 한 귀퉁이 이용해서 키우던 텃밭농사는 가치가 없다. 모두 대단위 과수원으로 눈길을 돌린다.
옛날에는 대구 사과라 했는데, 사과농사 북방 한계선이 의성, 군위, 봉화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아마도 해마다 상승하는 대지의 온도때문일것이다.
아뭏든 길가 과수원의 사과들이 한창 8월의 햇살 아래서 단맛을 농축시켜가고 있다.
고운사입구 산문을 들어서면 천년 숲길이라 불리는 숲길이 터널처럼 펼쳐진다.
와~,
이 숲길을 들어서는 순간 모든 중생은 아마도 부처님의 자비를 느끼게 될 것이다.
마치 피안의 세계인 마냥 그 뜨거운 지옥불 같은 8월의 햇살은 이곳에서 깨어지고, 이곳에는 오로지 아름다운 존재만 허락된다.
가벼운 바람소리, 산새소리,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좋다.
차를 두고 살살 걸어 올라가더라도 나쁘진 않겠지만,
차로 가더라도 천천히 서행을 하니 그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천왕문 바로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선문을 들어서면 바로 조그마하고 앙증맞은 전각이 하나 보인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구조나 자연적 모습들이 아기자기하므로 이런 건축물도 자금자금한 것이 더 안정적으로 보이고
우리의 자연과 더 아름답게 조화가 되는 듯하다
정면에서 올려다보니 '고불전'이라고 쓰여있다.
아마도 초기불교에서는 종교도 이렇게 소박했겠지~
요즘의 거대한 금동불상앞에 섰을 때보다 이 작은 석불앞에서 마음이 더 겸손하고 청정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곳을 지나 몇 발자국 올라가면 입구에 이런 고색스러운 누각이 하나 나타난다.
이 누각이 고운 최치원 선생이 여지. 여사 대사와 함께 건립했다는 '가운루(駕雲樓)'이로다
사찰명 고운사도 고운 최치원이 가운루를 건립한 이후 그의 호를 따서 개칭했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가운루는 계곡위에 세워진 누각이다.
유럽을 다니다보면 지붕덮힌 다리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가운루도 이름은 누각이지만 기능적으로는 계곡사이를 잇는 다리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선지식인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감이 있는것이라~
바깥에서 보면 굵고 튼튼한 긴 기둥 몇 쌍이 계곡바닥으로부터 누각을 떠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계곡 오른편 도로변에 누각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
문이 열려있다. 고운사는 모든 것이 거의 개방적이다. 왠만한 건물들은 모두 문이 열려있다.
이런 것들은 사소한 것들이지만 사찰의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사찰은 속세보다 더 많이 폐쇄적이며 타산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곳도 있다.
고운사는 입장료도 없다.
주지스님의 청정한 마음을 읽을 수있는 부분들이다.
아뭏든 들어가본다. 겨울에 드실음식인가? 감자를 말리고 있다.
열려진 쪽문으로 맑고 깨끗한 산사의 바람과 풍경이 들어온다.
종루도 바로 보이고..
그 위쪽으로 대웅전도 보이고
들어왔던 입구 반대편인 왼쪽 끄터머리에 누각을 내려오는 계단이 나 있다.
지금은 막혀있지만 과거에는 계곡을 건너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흔적이다.
이 누각을 건너면 계단 위의 건물 '우화루'로 연결된다.
이건물 역시 최치원 선생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계단에서 바로 보이는 건물 서편에 그려져 있는 '청룡, 호랑이 벽화'도 유서깊은 벽화라서
유의깊게 보란다.
그린 연대와 사연은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자리를 어디로 옮겨도 벽화속 호랑이 눈은 계속 따라다녀서
그 어느누구도 그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는 신기한 그림이란다.
정말 그런가..?
우화루는 '차를 마실수 있는 공간'이라 되어 있다.
우화루에서 가운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들꽃들이 산사의 분위기를 훨씬 밝고 예쁘게 만들어준다.
등운산 산허리 너른 터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앉은 '대웅보전'
어쩌면 이렇게 자연과 어긋나지 않을 만큼의 규모로 재단을 하였을까?
서양미술사에서 말하는 황금비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작아도 넉넉한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대웅전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종루
전각과 요사채들..
고운사는 원래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으며, 원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라말 불교와 유교, 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고운 최치원이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축한 후 그의 호를
빌어서 외로운 구름 '고운사'로 바꿨다고 한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였던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당시 사찰의 규모가 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별거 아니지만 고려초기 사찰들의 규모로 생각하면 상당히 큰 규모였다고 볼 수 있겠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이 도선국사께서 조성한 것이란다.
보물 제 246호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약사전
약사전에 보존된 보물 제 246호 '석조 석가여래좌상'
높이 79Cm 정도의 크지 않은 불상으로
불상받침인 대좌와 불상뒤 원광인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굵고 짧은 목에는 삼도가 뚜렸하고,
네모진 상체에 나란히 흘러내린 옷주름선 등이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멋지다.
약사전과 나한전 사이 너른 마당에는 빨강 고추가 말라가고 있다.
무채색의 산사에 빨강색이 주는 강렬함이 이채롭다.
마당 오른편으로 삼성각이 잘 조성된 계단위에 단정하게 앉아 있다.
다른 절들에서는 삼성각은 대체로 주전각 뒷전에 밀려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고운사에서는 반듯한 오름 계단위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약사전 건너편에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다.
그냥 스쳐지나치기에는 존재감이 강렬한 '만세문'
나이 먹은 노인처럼 외모는 많이 퇴색했으나
시간의 덮게로 감춰진 그 연륜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나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읽어보니
만세문은 연수전 출입문이다.
연수전은 영조 20년 (1774년)에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보관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며,
1887년 극락전 등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수되었다.
연수전은 만세문현판이 걸린 솟을 대문에 사방으로 담을 쳐서 독립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사찰의 여타 전각들과는 다른 평면도를 그리고 있다.
탱화의 색감이나 내용도 일반사찰의 그것들과는 다소 다르다.
색감은 차분한 그린톤에 흰색안료로 광택효과를 내고 있어서 고급스러우면서도 화려하다.
그리고 그림의 내용역시 봉황이나 용과 같은 왕실을 상징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 석탑이 고려시대 석탑인줄 알았더니 이것이 아니라 도선국사가 건립한 3층석탑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 석탑의 건립역사는 알 수 없으나 이것역시 단정한 것이 보기가 좋다.
...
경북지역의 사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차에 이번 여행길에
경북의 좋은 사찰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이번 여행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고운사는 고려시대에는 14개군의 사찰을 관장하며 전체 암자와 전각이 366칸에 달할 때도 있다하니 한때는
그 위세가 대단했던 곳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대한불교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로서 5개군에 걸쳐
60여개의 말사를 관장하는 거찰이다.
경내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몇가지 유물과 유적들이 있고,
그리고 아직 28동의 고건물들이 현존하고 있어서 볼거리가 심심찮다.
고운사!! 강추하는 코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