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영동 기행

어떤 오욕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을, 봉화 각화사

노코미스 2013. 8. 23. 09:00

2013년 8월 15일 목요일 오전  날씨: 뜨거움

 

 

이른 오전에 축서사에 들렀다가

다시 물야로 나와서 오전약수터를 돌아서 주실령을 넘어 각화사로 향합니다

구비구비 지방도와 임도를 꺾어돌며 찾아가는 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행입니다

 

섭씨 35~7도를 오르내리며

 염천의 지옥불보다 더 뜨거웠던 불볕더위도 이 곳 각화산 오르는 길까지는 쫓아오지 못하는 듯합니다.

 

가늘 길 내내 차량 실외온도가 27도를 유지해주고 있으므로

나는 오랜만에 에어콘을 끄고 차창을 내려 시골의 청정한 산바람과 만납니다.

 

 

 

고냉지 사과 과수원을 지나고 구비구비 산길을 거슬러 올라오니

어느순간 하늘을 덮는 울창한 숲과 바람, 청아한 새소리, 계곡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여기가 선경인가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여밀 준비를 하려할때

저 위쪽에 태백산 각화사라고 현판을 써붙인 높은 누각이 보입니다.

 

달이 그림자를 씻고 지혜의 눈으로 서있다는 ‘월영루(月影樓)'랍니다.

 

차에서 내려서 올려다보는 순간

기운이 너무나 좋습니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설렘이 있습니다.

 

 

 

조심스러이 계단을 오르니 누각 옆 잘 손질된 아담한 정원에 이끼 낀 삼층석탑이 고답스럽게 서 있습니다.

각화사 보물이랍니다.

그 단아한 모습이 내 가슴속으로 소~옥 들어와 앉습니다.

 

그 앞으로 요사채가 하나 있었는데

스님들이 공양을 하실 것인지 공양발우들을 앞에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찰의 규모에 비해서 스님들의 수가 상당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각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선원으로 등록하여 전국의 수좌들이 모여 공부하는 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아뭏든 스님들의 묵언수행중에 나의 움직임이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가능하면 발걸음과 사진을 절제합니다.

 

 

 

대웅전 앞마당으로 올라서는 순간

대자대비 지혜광명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이 편안하고 포근하면서 가슴이 탁 트이고 눈앞이 환해지는 이런 느낌은 도대체 무슨 느낌인건가요?

지금도 이 곳에 섰던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실제로 이곳은 불교계에서도 아주 유명한 길지로서

그 기운이 너무나 맑고 강해서 아무리 오래 정진을 해도 몸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전국의 스님들이 안거에 들기 위하여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선방의 결재기간은 보통 3개월인데

각화사만은 오래 정진해도 지치지 않으므로 결재기간이 무려 9개월이나 된다합니다.

 

사진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맑고 강한 기운을 느낍니다. 공손합장~

 

 

 

 

이 귀하고 아름다운 각화사는 686년(신라 신문왕 6) 원효대사가 춘양면 서동리,

지금의 춘양고등학교 교정에 자리 잡았던 남화사 대신에 새로 사찰을 세웠는데,

옛 절을 생각한다 하여 각화사라 했다고 전해진다합니다.

 

그러나 그 밖의 사적은 전혀 전하는 바가 없고,

창건 뒤 어느 때인가 소실되었으며 고려 예종(睿宗) 때 계응(戒應)스님이 중건했다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는 태백산 사고의 수호사찰로 지정됩니다.  

 

태백산 사고는 1606년 (선조39년)에 지어져 1913년까지 약 300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해왔던 곳입니다.

 현재 태백산 사고는 불타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부서진 기왓장과 축대만이 들풀 속에 흩어져 있고,

 사고에 보관되어있던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이랍니다.

 

처음에 이곳으로 올때,

나는 각화사 자체가 태백산 사고지에 지어진 절이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사고지는 각화사에서도 약 1Km 이상을 더 올라가야 한다하니

나한테는 이러나 저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 목적지인듯 합니다.

 

 

 

아뭏든, 한때 전성기에는 사찰의 규모도 엄청나서 수도하는 승려가 8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10년 사고와 절이 소실되어 다시 1926년에 달현(達玄)이 이를 중수(重修)하였는데,

지금은 옛 절터에 남아 있던 3층 석탑과 귀부(龜趺) 하나만 전해집니다. 

 

이것마저도 마멸과 파손이 심하여 정확한 고증이 어렵고,

특히 귀부는 비석이 없어져 유래와 시대를 알 수가 없다합니다.

 

 

 

공양요사채 뒷쪽으로 자리잡은 태백선원입니다. 이곳이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공간인 듯합니다.

 

 

대웅전 뒤켠 언덕으로 올라봅니다.

뒤켠 언덕은 싱그러운 낮은 초원으로 산악마을의 전형을 보입니다.

 

 

 

산간 사찰의 기운이 맑아서일까요

 한낱 야생초 이파리에 담긴 기운도 이토록 맑습니다.

 

 

산령각입니다.

 

독립된 건물로 보아도 참 아름답습니다.

 

전체적으로 전각들이 욕심과 탐심이 없습니다.

 

 

 

산신각앞에서 멀리 앞산을 바래봅니다.

 

순간, 어떤 오욕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이 스쳐지나갑니다.

 

 

만약 경남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찾아간다면

부산 부전역(무궁화호 09:05출)-----> 춘양역(14:14착), 시내버스 탑승(1시간 단위배차)---30분 소요--->석현마을(각화사 입구마을)

---도보30분-->각화사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