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진본과 모작의 그 모호한 경계에 대한 증명 '사랑을 카피하다'

노코미스 2015. 6. 12. 16:24

 

간만의 포스팅.

 

요즘 나의 삶의 행태를 말하자면 시간은 넘쳐나지만

복잡하게 얽힌 해결되지 않은 어수선한 생각들 때문에 생각을 정리해서 해야하는 일들은 할 수가 없다. 

 

시간이 남을 때는 그저 멍하니

나를 진공상태속에 내버려둠으로써 뇌를 쉬게 해주는 방식으로 몇달을 지내고 있다.

 

마침, 오늘은 메르스 비상때문에 자발적 휴가를 결정하고 집에서 뒹굴거리다 보니

갑자기 할일이 뚝 끊어지고 생각거리도 뚝 끊어져버렸다.

다른날과 달리 가벼운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본다.

 

 

지난 주말,

여느날과 다를바 없이 저녁시간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시간을 맞추어 티브이를 켜니

나의 시야를 확~ 끌어들이는 화면이 눈 앞에 나타났다. "토스카나"

 

내가 좋아하는 주말 프로그램 중 하나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인데

그 프로그램은, 요즘 종편에서 활동하는 핫한 외국인 패널 몇 사람이 있는데

그들의 모국과 고향 방문을 모티브로 한 여행프로그램이다.

 

여행을 직접 하지 못할 때는 책 또는 이런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대안을 삼기 때문에

나는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지난주부터 이태리 친구의 고향집 방문을 목표로 하여 진행을 하는 것이다.

더 좋은 것은 이 친구가 자신의 고향인 베네치아로 바로 가지 아니하고

자신이 과거 친구들과 자전거 여행하면서 가장 행복했었던 곳을 보여주고 싶다며

'토스카나'로 안내를 해 주는 것이다.

 

 

 

 

아~, 토스카나!!

한 때 얼마나 그리워했던 곳인가!

 

프로그램을 보고난 후,

다시 토스카나에 대한 그리움이 용솟음쳐오르고..

 

5년전 토스카나 방문 사진들을 꺼내어 그리움을 달래고

그것으로 모자라서 그동안 보았던 영화들 중에서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기로 한다.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중,

나에게 처음으로 토스카나라는 지역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었던 영화는

베르나르도 베르툴루치의 '스틸링 뷰티'였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시에나'라고 하는 도시를 읽게 되었고

시에나라고 하는 곳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 걸 처음 알았었다.

 

 

 

그 후에,

투스카니의 태양, 토스카나 웨딩 등 토스카나라고 하는 단어만 나오면 환장하듯이 챙겨보았다.

영화보다는 단지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금보아도 여전히 아름답다.

 

 

 


사랑을 카피하다 (2011)

Certified Copy 
7.8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줄리엣 비노쉬, 윌리엄 쉬멜, 장 클로드 카리에, 에이거드 나탄슨, 지아나 지아세티
정보
미스터리, 로맨스/멜로 | 프랑스, 이탈리아, 이란 | 106 분 | 2011-05-05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화 중, 

최후의 것이 '사랑을 카피하다'이다.

 

특히,

'사랑을 카피하다'는

-나만큼 나이를 먹은 중년의 이야기라는 점

-다소 이해는 안되지만 나름대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주제

-그리고 아름다운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 등에 있어서 마음에 들었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침 '사랑을 카피하다'의 감독이

나에게 토스카나를 되새기게 한 종편 주말 여행 프로그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동명이작인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찍었던 그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이란 점이다.

이런 우연이~

 

 

내친 김에 토스카나도 즐기고

내가 좋아하는 꽃중년 줄리엣 비노쉬와 윌리엠 쉬멜도 만날겸 포스팅 한번 해보자~

 

 

이야기는 영국작가 제임스 밀러(윌리암 쉬멜 분)가 토스카나에서 자신의 책 'Copia Conforme(기막힌 복제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영화에서 작가가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런 구성은 제법 흔한 모티브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반드시 영화속에서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가 'copy'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원본이라고 하면 그 작품의 가치여부와는 상관없이 의미론적으로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독창성, 신뢰성, 특별함, 진짜, 탄생 등의 의미를 포함한 의미로 이해한다.

반대로, 카피 또는 복제라고 하면 좀 더 부정적이며 거짓, 가짜 또는 특별치 않는 평범함 등으로 생각한다.

 

영화속의 작가 제임스 밀러는 이런 일반적인 통념에 의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즉, 복제를 인간생식에 비유하면서

사실상 인간은 조상의 DNA 복제품이라고 주장하고

진품에 대립되는 복제라는 개념이 정말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부분에 대해서

깐깐하게 변론을 제기한다.  

 

 

 

 토스카나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까칠한 프랑스 여인 엘르(줄리엣 비노쉬 분)는

이 주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에게 쪽지를 남기고는 사인회 끝난후 만남을 희망한다. 

 

그리고는 그에게 보여줄 곳이 있다면서 토스카나의 작은 시골마을 '루치냐노'로 인도한다.

 

일종의 로드무비처럼 시에나에서 루치냐노로 이동해가는동안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자연을 배경으로 '원본'과 '모작'에 대한 토론이 끝없이 이어진다.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엘르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모작보다는 원본에 더 가치를 두면서

모작의 가치를 변호하는 작가를 공격하는 역할을 했겠지만 어떤 말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고

오히려 모작을 옹호하던 제임스 밀러의 말들만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이 그렇게 떠받드는 로마시대의 모든 조각상들은

사실상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모작이다. 그리고

파손된 고대유물의 경우 원본보다는 오히려 복제품에 의존하게 될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원본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한다

또한 예술품에 있어 원본도 결국은 모델의 복제일뿐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원본은 박물관에 특별함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예술이라고 보지 않았던 평범함과 일상속에 있는 것이다. "

대충 이런 의견이었던 거 같다.

 

 

 

 

감독은 원본과 모작에 대한 모호한 경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영화속 작가의 입을 통하여 설명하고

엘르와 제임스 밀러와의 관계를 통하여 증명하고자 한다.

 

아들하나와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엘르는 오랜간만의 이성과의 교외나들이로 치기가 발동했는지

아니면 대화를 나누면서 친밀감이 고조되었는지

상대를 점차 자신의 삶속으로 끌어들인다.

 

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 티격거리기도 하지만

엘르는 자신의 사적 상황에까지 점차 제임스를 끌어들인다.

 

아들과의 갈등 중재에 그를 끌어들이고

전남편에 대한 감정을 마치 그가 남편 대역이라도 되는 듯이 그에게 몰아붙이고 화를 내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때로는 큰 귀거리로 치장을 하기도 하고, 진한 립스틱을 칠하기도 하면서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고 투정을 부리고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들이 남자입장에서는 어색하고 이상하지만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이 두사람의 이런 모습들을 보고는 그들을 진짜 부부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커플놀이하고 있는 줄을 모른다.  

 

 

 

오늘 처음 만난 독자일뿐인 여성과 너무 가깝게 걷는 것이 어색할 뿐인 남자에게

광장에서 만난 노 부부의 남편은 남자를 살짝 불러 '중년 남편의 사랑이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것'이라고

귀한 삶의 지혜를 귀뜀해주기도 하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는 그들 두사람처럼 오랜동안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며

자신들의 결혼사진에 초대하는 바람에 뜬금없이 이국땅에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 들러리까지 서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은 어느듯

정말 자신들이 진짜 연인인것 같은 착각으로 빠져든다.

 

영화를 보는사람들조차도

저 사람들이 진짜 부부인지 또는 진짜 부부가 남남놀이를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본 것처럼

남남인 사람들이 부부놀이를 통하여 진짜 연인관계로 발전해가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는 후자의 관점에서 본다.

이미 앞에서

제임스가 책 소개 행사에서

"복제품을 통하여 원본에 다가갈 수 있다" 라고 암시했듯이..

 

 

 

이 둘이 보여주는 연인관계는 모작일까? 진본일까?

또는 가짜일까? 진짜일까?

 

 

 

이 영화는 스토리가 주제를 따라 논리정연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토론을 통하여 논리적 전개를 하다가는 리얼라이프가 토론의 맥락을 툭툭 끊기도 하고..

 

스토리만 파악하려 하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스토리가 끊어지면 끊어지는대로 리얼라이프가 새치기를 하면 하는대로

그들이 이끄는대로만 따라가면서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고

두 꽃 중년들의 티격거리는 사랑싸움을 한발짝 떨어져서 

구경하듯이 즐기는 것이 이 영화를 쉽게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 보고나면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표면으로는 토론을 통한 주제 어필

그 저변으로는 그들의 실제 관계의 변화를 통하여 보여주는 주제에 대한 증명

그것이 격자무늬처럼 이어져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렇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