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솥바위의 전설과 정암철교의 추억
2015. 8. 6. 목요일 날씨: 내 기억에 가장 뜨거웠던 여름날로 기억될 날
거주지가 옮겨진다는 말은 낯선 것에 새로이 적응해야 한다는 불편한 의미도 포함되지만
반대로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등에 대한 경험이 확장된다는 좋은 의미도 포함한다.
그동안 경남권에서 살아왔었어도 내 삶의 중심지가 부산이다보니
경남북부쪽은 늘 내 시야의 사각지대였다.
다행히 이번에 합천으로의 이동으로 인해
그동안 몰랐던 역사와 알지못했던 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면서
내 시야를 조금씩 넓혀갈 수 있게 된 것은 내 이동의 좋은 결과 중 하나이다.
오늘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의령의 '정암, 솥바위'에 대한 전설을 배운다
김해집에서 합천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늘 바라보게 되는 정암철교.
군북에서 의령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남강을 건너야 하는데
오늘날 모든 자동차들은 오른쪽의 콘크리트 다리로 왕래하게 되지만
내 어릴때는 이 철교를 건너야 했었다.
어린시절 아버지 손잡고 외가를 갈 때는 나룻배를 이용하여 둑방길로 걸어내려오거나
또는 월촌으로 넘어와서 이 철교를 지나거나 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다리를 볼 때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생각한다.
외형적으로 닮은 구석은 없지만
프란체스카에게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는
'흰나방이 날개짓하는 저녁무렵의 희끄무리한 해무리속에 애잔하게 남아있는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었듯이
나에게 이 다리는 아마도 내 유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난 주중에 집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에
유난히 이 아이가 내 시야로 강하게 들어왔다. 나는 결국 차를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로버트 코스프레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나는 다리를 전문으로 찍는 다리 전문 작가도 아닐뿐만 아니라
어떤 큰 소신이 있는 블로거도 아니기 때문에 당장 주변상황에 의해
곧잘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곤 한다.
다리로 들어가기위해 주변에 차를 주차하고 보니
철교주변 경치가 좋아 어느샌가 다리는 까마득 잊어버리고 주변부터 살핀다.
특히, 철교 들어가는 입구 느티나무들이 우거진 큰 암벽 옆에
'솥바위 전설'에 대한 안내문이 있고
이 안내문을 보는 순간
철교에 대한 생각은 싹 사라져버리고 '솥바위'의 흔적을 따라 흘러가게 된다.
그런데 솥바위라니..
지금까지 의령이 외가라 치고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솥바위라고 하는 곳이 있었던가?
이 돌산을 솥바위라고 하는가?
기다 아니다 표시가 없다.
내가 누구라고 하는 표시도 없고 예쁘기만 한 비각.
암벽아래 고이 모셔진 사면 한칸 짜리 비각.
비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출입문까지 하나 더 달아서 보안을 철통같이 해 놓은 것을 보면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없어 보이는데 설명은 없고..
성하의 햇살마저 흡수해버린 짙은 거목아래로 돌길이 나 있다.
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길이 끝나는 쪽에 공연장형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고,
그 곳에 서니 솥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보인다.
'솥바위'라 함은 '솥鼎 바위巖' 즉, 정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정암'이란 지명이 바로 '솥바위'란 뜻이었다는 것을 이참에야 알게 된다.
이 바위를 굳이 솥바위라 부르는 까닭은
바위아래부분에 솥다리 처럼 3개의 기둥으로 받혀진 모습이 마치 솥모양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결국, 이 작은 바위가 이 지역의 마을 이름인 '정암'의 유래가 된 것이로다.
근데 의령사람들이 좋아하는 솥바위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8Km안에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 설이다.
이 전설은 우리 고향에서도 이미 알려진 바 있는데
우리 고향마을에서는 진주 지수라는 마을을 풍수가 좋은 땅이라 하여
부자가 나는 명당땅이라 한다.
그 예로, 이병철 삼성회장, 구인회 엘지회장, 조누구누구 효성회장을 손꼽게 되는데..
정암에 오니
정암의 기운으로 부자가 된 사람으로 위 세사람을 꼽는다 하니..
부자길의 근원지가 정암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시한번 드는 의문은
그들로 인해서 이 지역에 좋아진 것은 무엇이지??
아뭏든 정암의 유래하나를 배우고는 정암루로 오른다
옛날부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었지만 정암이란 지명을 되뇌이면서
은근히 어떤 바위를 지칭할 것이란 짐작은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솥바위라는 의미인줄은 당연히 몰랐고..
설령 알았다 치더라도 그 솥바위가
강 중심에 떠 있는 그 작은 바위가 아니라 지금 오른 뭍위의 이 바위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올라와서 보니 이곳은 '정암진'이라 불리우고 있고,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던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왜군을 무찔렀던 승첩지였다 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의령군은 의병의 혼을 기리고 후손에게 그 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1935년에 이곳에 '정암루'를 건립하게 되었다한다.
누각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니
한쪽으로는 의령대교를 통해 들어오는 관문 입구에 세워진 곽재우 동상과 관광객을 위한 까페가 내려다 보이고
강쪽으로는 애시당초 내가 갈 길을 멈추었던 이유였던 정암철교의 전신이 가깝게 내려다보인다.
짐작했듯이 누각에서 내려다보이는 철교가 가장 보기가 좋다.
만약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찍던 로버트가 안다면
당장 달려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정암루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에서 정작 솥바위는 잘 보이진 않는다.
앞을 막아놓은 나무들 때문이다...
다시 내려와서 철교입구에 서 본다.
지금은 차량보다는 자전거 및 보행전용도로로 용도변경되어 있고..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내 유년의 추억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흐뭇해진다.
반면에 철교에서 바로보는 정암진은
나이는 먹었으나 아직 눈빛 형형한 노회한 노장군의 위엄과 같은 모습으로 묵직하게 앉아 있다.
사족: 내 유년의 모습을 추억하기 위해서 들렀던 곳에서
새로운 사실들에 촛점 맞추어 쫓아다니는 것으로 끝나게 됨으로써
감성여행이 지식(?)여행으로 변모한듯한 알듯모를듯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정암진의 짙은 그늘과
정암루에서 바라보는 정암철교와의 조우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