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산골 유가노(湯ヶ野)의 그 곳, 후쿠다야(福田家)
2016. 2월 29일(월) 오후 날씨: 비 그리고 때때로 갬
오도리꼬 가족은 아마기산 계곡을 따라 계속 도보여행을 했었겠지만
현대인은 이쯤에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합니다.
나나타루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다가 그들의 다음 여정인 '유가노(湯ヶ野)'로 향합니다.
버스는 거의 한시간에 한대 꼴로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루 내내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그렇다고 소낙비는 아닌
봄을 부르는 빗줄기가 계속 오고가고 하면서 아마기산자락은 환상입니다.
「길은 꼬불꼬불했다. 마침내 아마기(天城)고개가 가까워졌을 무렵, 빗발이 삼나무 밀림을 하얗게 물들이면서 굉장한 속도로 나를 쫓아왔다」-이즈의 무희-
소설속에서 '나'가 오도리꼬 가족을 만나는 날도 그렇게 비로 시작되더니
내가 그들을 만나는 가는 날도 빗발이 '굉장한 속도'로는 아니지만 하루종일 나를 쫓아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소설의 밑바닥을 흐르는 정서는 햇빛 쨍한 뜨거운 감성이라기보다는 안개비 촉촉히 젖은 멜랑콜리하면서도 맑은 봄날같은 그런 정서이거든요. 그들의 그런 감성을 공유하는데는 날씨도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텐데 날씨가 이렇게 여행운을 바쳐주는군요. 이번 여행은 이런 세렌디피티의 연속이었답니다.
유가노 정류소에서 내리면 '이즈노 오도리꼬 문학비'라는 안내판이 있고,
안내판을 따라 신작로에서 골목길로 내려가면 오도리꼬 하이킹 코스의 라스트 포인트가 나옵니다.
'에도야' 앞으로 난 소로의 저 끝자락이 아마기 계곡 하이킹 코스의 마지막 포인트가 됩니다.
그들은 이 계곡 위쪽 신작로 난 싸구려 여관에 짐을 풀고 며칠을 지내며
마을의 요릿집에 오는 손님을 받을 계획입니다.
오도리꼬의 오빠는 도쿄에서 온 귀한 도련님인 '나'에게는 좀 더 고급 온천에 머물도록 안내해줍니다.
"우리들은 거리에서 자갈길과 돌계단을 내려가서 개천옆에 있는 공동탕 옆의 다리를 건넜다. 다리 쪽은 온천 여관의 정원이었다." -이즈의 무희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120여년의 역사를 가진 '후쿠다야'
아마 그 당시로 치더라도 한 30여년의 역사가 있는 유서있는 고급 여관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젊은 시절의 화려함은 없지만 곱게 늙은 반가의 고운 여주인 얼굴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다리를 건너봅니다.
소설에서 이 다리는 '나'와 무희의 의식의 흐름을 이어주는 심리적 교량과도 같은 것입니다.
주인공인 '나'는 여관의 2층에서 다리건너 저쪽에 있는 그녀를 끝없이 의식하고 있고
그녀 역시 그에게 이르기위해서는 이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그러나 이 다리 하나 건너기가 쉽질 않습니다.
"무희가 다리를 반쯤 건너오고 있었다. 40대 여자가 공동탕에서 나와 두 사람 쪽을 보았다. 무희는 어깨를 바짝 웅크리고, 꾸중들으니 돌아가겠어요, 하는 듯이 웃어보이고는 급히 되돌아갔다. " -이즈의 무희 중에서-
다행히 나는 누구의 저항도 받지 않고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여관의 정원입니다.
정원 입구에 얌전한 무희의 동상이 뒷모습을 보이며 외롭게 앉아있습니다.
이 정원에서 나이많은 처녀들과 함께 가을 국화를 감상하기도 했겠지요~
'이즈노 오도리꼬, 유가노 온센 후쿠다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서 어떤 상념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한..
단순한 조각상이지만
얌전한 그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 애잔함을 불러일으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실제로 제일고(현, 동경대) 1학년때 묵었으며, 소설의 배경이 되는 건물입니다.
정원 바로 앞의 사랑채 같은 이 작은 건물의 2층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세찬 비가 내리치는 밤에도 덧문을 지어뜯듯이 열어두고는
개천 건너편 요리집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와 샤미센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가오루'를 그리워하고
여자들의 교성과 웃음소리, 그녀들을 희롱하는 손님들의 떠들썩한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밤 그녀가 '더렵혀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밤새 번뇌합니다.
그 일층에는 현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관'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 방에서 내려다보면 여관앞으로 수량이 풍부한 맑고 깨끗한 개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빨간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가을이지만
제가 갔던 그 날은 가오루의 수줍은 연정같은 연분홍 사쿠라가 개천가로 늘어져 있었습니다.
여관 뒷편 정원으로 들어가니 '이즈노 오도리꼬' 문학비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비에 새겨진 내용은 어느 부분에서 발췌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일본글인데다 검은 현판에 삐뚤빼뚤 써져 있어서 도저히 제 능력으로는..-ㅁ-
아마도 유가노 관련 내용이 나오는 부분이겠지요~
다시 다리 건너편으로 돌아나옵니다. 개천 맞은편에서 건너편 동산을 바라봅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동산 아닌가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생각나는 풍경
남의 나라에서 내 나라의 정서를 떠올리는 것이 정상인지 아님 비정상회담에 상정해야 할 안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그림을 보니 내 마음속에 있는 고향의 서정이 느껴지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군요~
비온 뒤 비에 씻긴 깨끗한 자연속에서
말~간 어린 소년 소녀의 풋사과같은 사랑이야기를 기억하며 주변을 돌고나니 왠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청수가 흐르는듯한 감미로움이 흐르는군요. 그 느낌을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