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쌍피 나들이, 영광 불갑사 상사화 꽃 축제
2016. 9. 18(일) 날씨: 종일 비~
용천사에서 2시간여 지체하다가
왕복 7시간 거리의 장거리 여행에 한 곳만 보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3사 순례를 목표로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원래 제 1 목적지는 영광 불갑사였었는데
22번 국도 길목에 '꽃무릇 큰 잔치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있어 따라 들어오다 보니
용천사 축제 이정표였던 것이었다.
적극적인 해보면 면민들의 이정표로 인하여 용천사를 먼저 들리게 되었고
꽃무릇은 원껏 감상하였으나
이 궂은 날씨에 원거리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불갑사를 들러야겠다 다짐하고는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불갑사 빨리 보고
고창 선운사까지 3사 순례를 마쳐야지~♬
22번 국도를 타고 영광쪽으로 가다보니 불갑사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정표를 따라 지방도로 내려서자마자
도로는 이미 정체상태다.
영광군에서는
교통대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지방도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논밭을 비워서 주차장을 마련하고
오가는 차량을 일방통행으로 구분운영하는 등 무진장 애를 쓰고 있지만
몰려드는 차량들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사찰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 주차하였지만
가장 가깝다해봐야 사찰 입구 행사장까지 20여분은 걸어 올라가야 한단다.
이번에는 부득불
모친은 주차장에 쉬시게 하고
혼자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관절이 좋지 않은 모친은
바람이 쐬고 싶은 마음에 언제나 어디나 따라나서기는 하나
멀리 걷지를 못하시니
모시고 나와도 함께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행사장에 이르는 도로는
명절연휴 마지막 휴일을 알차게 보내려는 등산객과 관광객으로 가득 찼다.
바쁜 걸음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오니
축제장의 마이크 소리와 참가자들의 노랫소리가 소란스럽다.
노점상과 행사장을 뒤로 하고 올라가니 불갑사 입구가 나타난다.
불갑사는
인도 간다라 지방 출신의 고승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서기 384년(침류왕 1년)에 모악산(불갑산)자락에 처음 지은 사찰이라 적혀있다
고려말 각진 국사가 주석할 때는 수행승이 1000명이 넘어서 가람을 대규모로 중창해야 했으며, 본사에 40여동의 가람을 갖추었고
산내에 암자 31곳을 세워 마치 불국 세계를 연상시키는 도량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불갑사(佛甲寺)의 어원은 '불교가 전해진 뒤 처음 건립됨으로써 모든 사찰의 으뜸이 된다'라고 하여 부처 佛에 으뜸 甲자를 쓰는 절이 되었다한다.
불갑사의 유래와 역사를 읽어보니
오전에 보았던 용천사의 유래와 유사해서 약간 혼돈이 온다.
확실히 가람의 규모는 용천사와는 비교도 안되게
불갑사가 크다.
그런데 왜 유래와 역사는 유사한지..
뿐만 아니라
축제의 내용까지 유사하니
두 사찰간의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는데.
같은 불갑산 연봉을 사이에 두고 구수재를 넘어 남북으로 위치해 있으면서
용천사는 굳이 자기네는 모악산이라 칭하고,
불갑사는 모악리에 소재해 있으면서도 굳이 불갑산자락에 소재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같은 꽃무릇을 가지고도
한쪽은 꽃무릇이 옳다,
한쪽은 상사화가 옳다라고 주장하고 있고..
같은 지역
같은 기운을 받고 있는 모악산 자락에서
같은 내용의 축제를 굳이 서로 힘겨루기 형태로 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지역의 연합축제형식으로 치루면 더 효율적이고 홍보효과도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하는데..
아뭏든 같은 지역에서
같은 내용의 행사를 하게 되면
주최측에서도 상당히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으로 차별화를 해야 할 것인가?
용천사가 주변의 언덕과 산자락을 이용해서
군락을 조성했다면
불갑사는 평지를 중심으로 군락이 조성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금강문 들어가는 사이의 평지에
상사화 군락이 조성되어 있다.
상사화는 넓게 퍼져 있는 단풍나무 아래
붉은 융단처럼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
초록이 빨강을 받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상사화군락지에서는
빨강이 초록을 받혀준다.
그러니 세상이 더 밝아지는 느낌이다.
꽃무릇은 중국에서는 '석산'으로 불리며
돌이 많은 곳에서 마늘모양으로 생긴 뿌리가 자라는데 기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어떤이는 꽃무릇과 상사화는 엄연하게 차이가 난다고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상사화라고 하면
잎과 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특징을 가진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니
잎이 먼저 지고나서 꽃이 피든
꽃이 지고 나서 잎이 자라든
서로를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둘 다 상사화라 해도 틀리지는 않을 듯 한데..
학술적으로 명료하게 구분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진 모르겠으나
난 그냥 꽃무릇을 빨간 상사화 정도로 생각하고자 한다.
올라가는 길목에 상사화 전시장에 걸린 정형택 시인의 시가 상사화의 운명을 구구절절 잘 표현하고 있다.
같은 길
오명가명
한번쯤은 어쩌다가
마주칠 수도 있으련만
수십세월
비껴가고
비껴오고
내가 섰던 이 자리
한번쯤은 둘이함께
마주해도 좋으련만
온다하면 떠나가고
간다하면 소식없고
....생략
이것이 인간사라 치면
이보다 더 애절할 수가 없는 일이다.
한번쯤은 어쩌다가 마주칠 수도 있으련만
어떻게 수십세월 그렇게도 비껴가고 비껴 올 수 있을까
한번쯤은 둘이함께
마주해도 좋으련만..
떠나가면 소식없고..
머물고 간 자리마다
못다한 사랑
불씨처럼 번저가고..
전문작가가 찍은 새벽녁 안개짙은 군락지의 모습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평생을 품속에 안고 사는 그리움의 실체처럼 신비롭다.
시인의 싯구를 되뇌이며 올라가니
불갑사 천왕문이 나타난다.
올라올 때
도로를 가득 메웠던 인파를 생각하면
사찰을 관람하는 사람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불갑사는 남쪽에서 보아오던 사찰양식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내가 아는 한, 건축양식과 규모 그리고 구조 등이 쌍계사와 다소 닮아 보이긴 하다.
만세전이라는 가람이 있다는 점과 구조 등이 확실히 유사한 것 같다.
좀 더 독특한 것은 대웅전인데
팻말은 정문으로 붙어있는데
불단배치가 오른쪽으로 향하도록 되어 있다.
북방불교의 건축양식과 남방불교의 불단배치 양식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구조란다.
어떤 부분은 웅장하고
어떤 공간은 아기자기하고..
오래된 고찰이지만
오랜 시간동안 세월 속에 묻혀진 사찰이 아니라
오랫동안 잘 관리되고 정리되어 온 절집이라는 느낌이 온다.
마지막 컷을 찍으며
빨리 내려가서 영광굴비정식 한 그릇 먹고
3사 순례를 마쳐야지 하고 부랴부랴 서둘러 내려왔지만
내려오는 길에 스마트폰 밧데리가 아웃되는 바람에
길을 잃고 헤메다
선운사는 커녕 집으로 돌아오는데 5시간이 넘게 걸렸다.
비록 3사 순례는 못했지만
일타쌍피는 하였다.
긴~ 하루였다.
불갑사에 전해지는 '상사화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