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모국에 바치는 슬픈 비가, '독일 창백한 어머니'
감독, 제작, 각본: 헬마 잔더스-브람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94XXXXXXe164) 참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도이칠란트'라는 시로 조용히 시작되는
잔잔하면서 감정의 울림이 큰 영화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난 화자가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살아낸 고단한 엄마의 삶을 담담하게 나레이션하면서 전개해가는 영화이지만
기실 그 엄마라는 캐릭터는 모국인 독일을 인격화한 것이라는 건
조금만 지켜보면 알수 있다.
내용은 크게 잔인하지도 하고
누가 누구를 때리는 것도 아닌데
많이 아프고 슬퍼다.
인간으로서 한 여성의 일대기로 보더라도 위로받아 마땅한 영화이지만
실제로는 못난 모국에 바치는 슬픈 비가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모국에 대한 이중적인 정서를 갖는다,
그 모국이 아무리 자랑스럽지 못하고 수치스럽다 하더라도 미워할 수 만은 없다.
미움과 애잔함, 그것이 대부분 국민들의 모국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정서이다.
특히, 몰락한 모국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리스의 국민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에서도 보면
모국 그리스에 대한 이러한 정서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고대 그리스가 잉태된 모레아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끝없이 절망하고 안타까워한다.
고대의 지혜와 영광은 외세에 짓밟히고
황폐화된 모국에서 살아가는 후손들은 현재의 나태하고 몰락한 자기 모습을 전혀 인지 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한 동포들을 보면서 작가는
경멸과 수치, 절망과 안타까움 사이를 수도없이 왔다갔다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
세상의 지탄을 면치못할 모국이긴하지만
히틀러가 나타나기전까지만 하더라도
평화를 사랑했던 모국이었다.
그랬던 모국이
그릇된 아들 하나(히틀러) 잘못둔 죄로
세상으로부터 모든 모욕과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며
위협적인 존재로 치부당하는 모국을 생각하면
수치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애잔한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자국민으로서
모국 독일의 나치시대에 대한 책임을 보라보는 관점이 크게 두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무한 책임론과
다른 하나는 나쁜 독일과 좋은 독일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있단다.
전자를 대표하는 작가로 토마스 만이 있다면
후자의 관점을 가진 대표적인 지식인이 브레톨드 브레히트이다.
이 영화가 모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후자로 보인다.
이 영화가 브레톨드 브레히트의 시 '독일'로 시작하고
표제도 이 시의 싯구에서 따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헬마 잔더스-브람스와
브레톨드 브레히트는 모국인 독일과
전범인 히틀러는 별개로 구분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처럼 보인다.
모국인 독일은
아들하나 잘못둔 죄로
이렇게 비난받고 멸시당하며 모욕당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대인 압제와 관련해서도
실제로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같이 동참했었건만
전쟁이 끝나자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척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데 급급한 이웃들을 보면서
나의 모국만 이렇게 조롱당한다 생각하니..
왜 그렇게 사니?라고 항의하고 싶을만큼 억울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책임이 없다할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영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세상의 조롱속에서 평생을 수치스럽게 살아가야 할 모국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식(국민)의 마음이 절절하다.
도이칠란트
by 베르톨트 브레히트 (1933)
모두가 그렇듯
내게도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다.
오, 독일, 창백한 어머니여
어찌 세상 사람들 속에서 더렵혀진 채 앉아 있는가?
모욕당한 이들 속에서조차 눈에 띄는 모습이여.
제일 가난한 이들은 쓰러져 누워있고
굶주림으로 괴로워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저들의 배만 채우려 손을 내밀었다.
잔인하도다.
형제를 배신하고 손을 내민 이들은
뻔뻔하게 활보하고
비웃음을 짓는다.
모두가 알고 있다.
집안에는
거짓말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나
진실은 조용히 감춰지고 있는 않은가?
어찌하여 당신은 압제자들에게 칭송받고
탄압받는 이들에서 고발당하는가?
학대받는 이들은 손가락질 하지만
학대자들은 그집의 체제를 찬양한다.
그 모든 것은
착한 아들의 피가 묻은
신의 치맛자락 안에 숨겨져 있다.
당신의 집에서 연설이 들려 왔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고
당신을 보면 살인자를 보듯 칼을 힘주어 잡는다.
오, 독일
창백한 어머니여!
당신의 아들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위협적인 존재로 앉아 있는가?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