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역시 20년전에 뜻도 모르고 의미도 모른 채, 평론가들의 평점에 따라서 봤던 영화이다.
당시 나의 느낌은,
도대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영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던 비상구가 왜 제목으로 들어갔는지,
부룩클린이 무엇인지,
미국의 어느 지역이라 하는데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왜 제목을 이렇게 어렵게 붙였으며,
영화는 왜 이렇게 어둡고 칙칠할까, 그리고 앞뒤 연결도 되지않고..
영화보는 내내 느꼈던 감정이었고, 그 후로도 간간히 평론가들에 의해 이 영화가 거론이 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난 의아했다. 도대체 그 영화가 왜 좋은 영화라고들 하는지..
이 영화역시 교보문고에서 3900원 재고 떨이가격으로 모셔왔다.
도대체 그 당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영화를 재생하자마자 조명도 없는 어두침침하고 칙칙한뒷골목 밤거리가 나오고
그곳에서 떠들썩하게 오가는 희롱과 악다구니, 어둠속의 폭력으로 영화전반의 어두운 분위기에 대한 암시를 예고하고 있다.
이 영화는 1950년대 초반 미국의 '대공황'끝자락 쯤, 경제가 아직 덜 풀려서 서로가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
뉴욕의 대표적인 슬럼가였던 부룩클린 뒷골목을 배경으로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곳 없이 갈데까지 가버린 하층민들의 희망없는 삶을 '마지막 비상구'라는 타이틀로 표현하고 있다.
거리에는 철강회사 노조파업의 구호가 난무하고 바와 거리에는 한국전 참전을 기다리는 참전군인들이 넘쳐나고,
매춘부, 부랑자,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동성애자들이 그 곳을 터전으로 혼잡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남 녀 주인공 2명을 세워서 시대적 메시지를 이중적으로 병렬하고 있다.
한 줄기는, 여자 주인공 트랄라(Tralala : 제니퍼 제이슨 리 분)를 세워서 사회적 폭려과 퇴폐성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늘 핸드백을 빙글거리며 취한듯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부룩클린 뒷골목을 배회하고 활보하면서
매춘과 강도짓을 일삼는 거리의 여자이다.
그녀는 보이는 그대로 퇴폐적인 기운을 발산하며 부룩클린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희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번도 정상적인 관계속에서 살아온 적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음에도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고, 그 감정을 어떻게 관리하여야 하고,
그 사랑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대와 함께 한 시간 정말 행복했습니다 부디 소원이 있다면 살아 돌아와 그대를 만날 수 있기를....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편지 한장 전하고는 떠나간 남자..
살아 돌아 올수 있을 지 없을지 조차 모르는 그 남자..
부룩클린에서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남자를 어떻게 기다려야 할 지를 모르는 트랄라는
그 남자가 자신에게 붙여준 애칭인 '유럽에서 가장 예쁜 가슴'을 팔아 남자들이 사주는 한 잔의 위스키로
자신의 사랑을 지우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을 모른다.
"다 덤벼~"
욕정에 굶주린 수십명의 남자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여 옷이 갈갈이 찢겨지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거리의 공터에 널부려져 있는 모습역시, 있는 그대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부룩클린의 시대적 어두움을 상징한다.
더불어,
또 다른 줄기는 노동조합 선전부장 해리(Harry Black : 스티븐 랭 분)를 통해 보여주는 정체성 혼란의 문제이다.
해리는 우연히 자신의 성정체성이 호모임을 깨닫게 되면서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겪게되는 한 개인의 비극적인 상황과 더불어 침몰해가는 한 가정의 암울함을 표현함으로서
이 역시 부룩클린이라고 하는 도시의 정체성 혼란과 시대적 암울함을 표현하려 했던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티븐 랭과 제니퍼 제이슨 리의 연기는 거의 완벽하다.
마지막 비상구로 나가기 전 부룩클린의 암울함의 절정은 트랄라에 대한 집단 겁탈과
해리에 대한 집단폭행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마지막 비상구만 벗어나면 그들에게 희망의 빛이 보일까?
제발 그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크 노플러의 희망적인 바이올린 선율과 더불어 꼭꼭 닫혀있던 공장의 문이 열리고,
그 문을 통하여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로 향하고, 점차 밝아오는 화면에서 희망의 빛을 본다
지금 보니, 그 옛날에 이 영화가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다.
우선,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의 지리와 사회와 역사 등에 대해서 너무나 배경지식이 없이 이 영화를 접했던 것이고,
두번째는 당시 상황으로 보건데, 우리는 이 영화를 온전한 상태로 본 것이 아니었다. 심사와 검열에 걸려서 이리 잘리고 저리 잘리고..
결국 내가 본 것은 이리저리 팔다리가 잘려나간 정체불명의 영화를 본 것이었다.
국가의 지나친 계도적 기능이 개인의 문화적 이해력을 말살시킨 사회였었다.
특히, 스티븐 랭이 연기한 동성애 관련 내용은 통채로 삭제된 채 보았으니,
그 뒤, 영화의 줄거리가 연결이 되나? 뭔가 뚝뚝 끊어지고, 왜 저렇게 불이익을 받는지도 모르고..
어쨋거나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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