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타인의 삶

노코미스 2010. 2. 25. 19:04

 

 2010. 02. 24. 수요일

 

얼마남지 않은 겨울 방학..모처럼 한가롭게 보내고 있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이 아까워..잠시 가까운 곳이라도 나갔다 올까..하고

검색을 해보니 항공권들도 이미 동이 나 버렸고..

 

그렇다하더라도 어떻게 애를 써보면 내 한몸은 어떻게라도 끼여서 갈 수 있으련만..

마음이 반반이다. 나가고 싶은 마음 반, 그냥 죽치고 싶은 맘 반..

 

앉아서 시간의 여백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은 영화밖에 없다.

내일 아침 당장 출근에 대한 압박감이 없으므로

눈이 허락하는 한 영화를 본다.

이날 저녁, 3편을 보았다.

'우리도 사랑한다', '타인의 삶', '사랑후에 남는 것들'..우연히, 모두 독일영화다

지난 설에 보았던 '위대한 침묵'을 비롯하여 최근에 독일영화를 자주 접하게 된다.

 

독일영화는 헐리우드나 일본 또는 홍콩 중국 영국영화가 주는 느낌과는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상당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차분하다.

그리고 철학적 사색의 동기를 제공해주는 매력이 있다.

좀 더 많이 찾아보려고 한다.

 

 

 

 

 

'타인의 삶'

 

 

타이틀이 어렵다

영화의 주요흐름은 이 타이틀과 잘 매치가 되질 않는다.

 

사회주의 사상이 가장 인간적이라고 믿고 있었던 한 개인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도청하던 한 예술인의 삶을 통하여

무엇이 진정 '인간적'인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서

 '타인의 삶'으로 인해 변화되는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직접적이거나 또는 작위적이거나 또는 미시적이다.

 

그것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기호학적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혹시..이런 해석은 어떨까..?

 

 

그 시대 공산체제 사람들의 삶이 어쩌면 진정한 자신들의 삶이 아닌

모두가 '타인의 삶'을 살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왜?

살아남기 위하여..

 

극작가 드라이만은 드라이만대로 살아남기 위하여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지 않는다.

 

 

여배우 크리스타 역시

예술인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원래모습이 아닌 타인의 모습으로

햄프장관에게 몸을 맡기려한다.

 

 

그들을 감시하는 유능한 비밀경찰 비즐러 역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의 삶이

'타인의 삶'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감독은, 이 영화에서

구 동독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이념과 사상에 저당잡힌 채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 위하여

누구나 '타인의 삶'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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