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나라 /10-08 리구리아

콜롬보의 도시, 제노아Genoa

노코미스 2010. 11. 25. 02:13

2010. 08. 17(화) 날씨:맑음

 

 

황홀한 눈으로 나는 바라보노라
바다의 딸 제노바가 물결 헤치며 솟아나는 모습을..

 


 제노바라고도 불리는 제노아는

 

지중해 가장자리에 바로 솟구쳐 오른듯한 석회석 바위산으로 이어진 리구리아(Liguria)지방의 중심도시이자

제노바주의 주도이다.

내가 그녀를 만나보고자 했던것은 순전히 이희수 교수의 '지중해 문화기행'때문이다.

 

그이는 제노아를 '바다를 무대로 해서 교역이라는 선물을 인간에게 선사한 문명의 산실'이었다고 소개하며,

고대부터 남 유럽의 중요한 무역항으로서 역할을 해 왔었지만..

적어도 13세기를 전후해서는 세계를 주름잡는 지중해의 영광이요 자부심이었디고 표현하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11세기에 자유도시가 되면서 제노아의 해상무역기술은 급격히 발전하였고

12세기에는 동지중해 경제권의 중심지가 되고, 동방의 물자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주요 창구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13세기의 제노아는 제국규모에 버금가는 힘과 영토를 소유할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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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에 대해서는 로마,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정도밖에 모르고 있던 나에게

이희수 선생이 소개하는 제노아는 나에게 알수없는 향수를 전해주고..

 

그래서 내 이태리 여행의 마지막 여정으로 삼았던 제노아..

 

 

 

 

피렌체에서 제노아로 넘어가는 길은 너무나 황홀했다.

 

어느 소설가가 그랬었지.."터널을 빠져나오니 하얀세계가 펼쳐졌다"..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터널을 빠져나오니 은빛 지중해가 하얗게 펼쳐져 있었다"..

 

라스페지아를 벗어나면서 해안과 평행으로 달리는 철길은

종종 석회암 암석터널을 통과해야 하는데..

터널을 빠져나올때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하얀 지중해는 그야말로 환희이다.

 

제노아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좋았다.

 

3시간 동안,

언제 어디서나 시간만 나면 퍼질고 앉아서 지성을 탐색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훔치고..

황홀한 지중해의 풍경에 넋을 빼앗긴 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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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넋을 잃고 있는 사이..기차는  제노아 중앙역에 도착하였고

내 의식은 현실로 돌아온다. 뭔가 과거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랄까..내가 퇴행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뭐지..?

이 곳이 그 경이로운 길의 끝이 맞는가?

 

중앙역이라는 이름에 부족하지 않은 규모는 있지만..

그 편의성이나 손님을 대하는 태도나 분위기는 중앙역이라는 이름값을 못한다는..

이용하는 이용자도 생각만큼 많지도 않고..뭔가 침침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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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불안한 감을 아무일도 아니라고 스스로 다독거리면서..

며칠 짐을 풀 잠자리부터찾고 봐야한다. 역사내에 어딘가에 인포센터가 있을터인데..

둘러보니,

 인포센터가 있을만한 장소가 보여서 가보니, 창구문은 닫힌 채 창문에 안내쪽지 하나가 달랑 붙어있다.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를 옮기니 이쪽으로 찾아오세요~

찾아오는 방법은 34번 버스를 타고 'Palaccio Ducale로.."

...

'팔라쵸 두칼레..??" 도대체 거긴 또 어딘거야..??

 

34번 버스를 타고 오랬으니..

일단, 버스를 타고 가보자..

주변인들에게 버스 정류소가 어딘지 물으니 역사바깥에 나가면 있단다.

 

가방을 베기지 라운지에 맡기고 버스정류소로 나간다.

 

 

 

 

버스 정류소로 나가니 그 앞에 왠 동상이 거대하게 서 있다. 제노바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증표이니 일단 발길을 멈춘다.

이름을 보니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olombus'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콜롬버스가 스페인 사람이냐 아니면 포르투갈 사람이냐를 놓고 논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스페인사람도 포르투갈 사람도 아닌 15세기 제노아 공화국 출신이다.

 

어쨋거나 그를 보는 순간, 역시 내가 콜럼버스의 도시에 오긴 왔구나..싶긴 한데,

 

주변을 둘러보니,

분위기가 스산하기 짝이 없고..

그런 분위기를 느끼면서 과연 이번여정에서 제노아를 포함한 것이 잘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마구 솟아오른다. 

하지만 설령 잘못된 선택이라 할지라도 이미 때는 늦었고...  

어쨋거나,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이곳에도 뭔가는 있겠지..라고 억지 위안 및 기대를 해본다.

 

버스 정류소에서 10여분 기다린 후 도착한 34번 버스를 타고는, 팔로쵸 듀칼레로 향하는데..

가는 길 조차 초행 여행자에게 위안을 주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계속 좁고 어두침침한 골목을 몇 굽이를 돌고 돈다..

 

내심, 여기가 어딘지..

내릴 곳을 놓친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오고가지만, 그냥 자신을 믿어본다.

 

 

 

그래도 다행히, 목적지에 잘 도착하였다.

목적지인 듀칼레 궁전은  '페라리 광장'에 위치해 있고, 버스 정류소명도 '페라리 광장'이다. 

광장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보니, 주변의 분위기가 중앙역에서 보았던 스산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너무나 당당하고 웅장한 주변 건물들의 규모와 위풍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다.  

12-3세기 지중해의 영광이요 자부심이었다하더니..그 말이 화려한 수식적 용어만이 아니었구나..

 

제노바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이 분수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제노바의 중심 대로인 로마 대로와 세템브레 대로가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역사지구와 포르토 안티코로 연결된다.

 

그리고 분수대 주변으로 상아색에 핑크색띠를 두른 '듀칼레 궁',

그 대각선 편으로 '까를로 펠리체 오레라 극장' 등의 유명 건물들이 있다.

 

 

 

내가 찾아가야 하는 '듀칼레궁'이다. 이 궁은 현재, 시청건물로도 사용되고, 박물관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태리에서 '듀칼레 궁'은 공화국시절 그 지역을 통치하던 총독이 기거하던 '총독궁'이라  생각하면 된다.

 

메모지에 의하면 이 건물 일층에 인포센터가 있다고 했으니..

 

인포센터를 찾아갔더니..그곳에 또 다른 메모지가 붙어있다.

"죄송하와요..이번 일주일은 스탶들의 휴가기간이오니..볼일 있으신분은 이번주 지나고 봐요~" 요런..;;

 

내가 어떻게 이렇게 이태리어를 잘 이해했을까..?

 

사실은 현재 내 옆에는 나의 수호천사가 붙어있다.

중앙역에서 페라리 광장까지 오는 과정에, 34번 버스에서 만난 나의 수호천사 Xia~

 

버스안에서 그녀를 만나기까지의 우여곡절도 많았지만..패스하고,

어쨋거나 그녀가 현재 나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녀를 만나는 순간부터 모든 일정이 순조로와 보였는데..저 메모지가 나를 다시한번 무너뜨린다. 오늘밤 내 잠자리는..;;

무너져 내리는 날 보자 xia가 위로한다 '돈 워리~' 자기가 오늘 좋은 숙소를 소개해 줄테니 걱정하지말아라..

그리고 다음날 나만 괜찮다면 나의 친퀘떼레여행에 동행을 해 주겠단다..ㅎㅎ

오~ 예~

 

이태리 여행 내내..이태리가 불편하다고 계속 투덜거리고 다녔었는데..

여행 끝무렵에 오니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는구나..아~

 

어쨋거나 여기까지 나를 인도해준 Xia는 자기 볼일을 보러가기전에

주변의 건물과 도로에 대한 안내를 세세하게 해주고는 내가 움직여할 개략적인 동선까지 잡아준 후 날 떠난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시선을 따라가니,

듀칼레 궁 입구에서 비스듬히 왼쪽으로, 앞에는 가리발디 장군 동상을 세워두고 있는 건물이 '카를로 펠리체 오페라 극장'이 있고..

 

 

 

 

카를로 펠리체(Carlo Felice)오페라 극장이 이곳에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1828년이었지만

현재의 모습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목격을 맞아 벽체와 기둥만 남겨진 상태에서 포스트모던 건축의 기수이던 건축가

알도 로시(A. Rossi)가 재건축하여 1991년에 개관한 아주 유명한 극장이라고 하는데..

 

이 극장의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 유명한 바이얼린 연주자 파가니니나, 유명한 지휘자 벨리니 등 알지도 못하는 음악가들을

나열해야 하는데..난, 음악에는 문외한이므로 그냥 패스~

 

 

 

 

오페라 극장 오른편으로 난 도로를 따라 돌면' 단테거리'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고..

물론, 이름은 모르겠으나 중세풍의 웅장한 건물을 양쪽으로 끼고 있고.

(저런 건물들은 여측없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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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에서 페라리광장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과정에서 보았던 제노아는

 한 때의 영광이 언뜻언뜻 남아있는 것처럼은 보였으나 그야말로 그것은 흔적정도일뿐이었다.

현재에 사는 사람이 향유하지 못하는 흔적은 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어떤 서글픔같은 것을 느끼게 하기도 하여서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뭔가..안타깝고 허전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 페라리 광장에서 보는 제노바는 '중세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중세의 영광이 '그대로' 남아있다.

오래전의 영광을 현재에 경험할 수 있다는 건..흥분되는 일이다.

 

 

 

다시 여행자의 들뜬 기분으로 되돌아가서 콜롬보의 집을 보기 위하여 단테가를 따라 올라가니,

 단테 광장 약간 못 미쳐서, 언덕 위쪽으로 희끔희끔한 시멘트로 덧입혀진 조그만 벽돌집 하나가

작은 망루처럼 서 있다. 그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입구로 드나들기도 하는..

 

 

 

입구에 보니 '까사 디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라고 안내하고 있다

 

 콜롬보의 도시에 왔으니 그의 집은 보고가야지...

 

그의 집에서 제공해주는 리플렛에서는

그의 어린시절의 성장과정에 대해서 적고 있고, 그의 신대륙발견을 위대한 업적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입장에 따라, 신대륙이 발견된 것인지..아니면 침략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하더라도..

 

어쨋던 유럽의 입장에서는 신대륙은 발견된 것이고 발견된 '신대륙'를 기반으로

 그들은 세계를 재패할 수 있는 자본을 형성할 수 있었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서구화를 위한 전초기지를 획득하게 되었으니

그의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집은 참 조그만하다.

 

이태리 돌아다니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니..이태리에서는 슬럼가조차도 모두 중세궁전 즉 팔라쵸에서 산다는 거였다.

 

그런데, 하고 많은 큰 집들도 많은데, 콜롬보의 집만큼은 왜 이렇게 작은 것인가..?

 

들어가는 입구는 덩치 큰 사람은 혼자도 들어가기 어려울만큼 좁다.

이런 조그만 집에서 6남매가 북적되며 살았지만..

그의 꿈은 그의 집처럼 작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꿈은 제노아의 앞마당, 지중해라는 바다가 키워주었나보다..

아주 어릴때부터 선원생활을 했다고 했으니..바다가 그에게 꿈을 주었나보다.

말하자면, 그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던 것도

제노아라는 해상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하여 그의 꿈이 원주민들 입장에서 볼 때, 수탈과 침략행위라는 윤리적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할지라도,

개인으로서 그의 도전정신과 모험심은 오늘날 젊은 친구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미덕이 아닌가 싶기도하고..

 

묘한 양면가적 감정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채..

발길을 포르트 안티코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