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영남 기행

동광동 인쇄골목과 40계단테마거리

노코미스 2012. 11. 7. 00:31

2012. 11. 04  오후: 빗방울 뚝뚝

 

근대역사관 옆의 '피렌체'에서 나홀로 식사를 하고는

40계단 테마거리를 찾아나선다.

 

처음 나설때, 나의 방향감각은 용두산공원의 동쪽 입구로 연결되는 계단이 40계단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동광동 인쇄골목안에 있는 계단이었다.

 

 

인쇄골목을 들어서니 작은 영세업 수준의 인쇄출판사들이 여즉도 아래위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동광동에서 중앙동 뒷골목에 이르기까지 소규모 인쇄 출판 광고업계들이 쭉 자리잡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이런 현상은 이미 70년대 경에서 조성되어 있었고..

내가 모르는 그 이전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도 모르겠다.

 

 

 

'

70년대 인쇄업은 뜨는 사업이었던 거 같았는데,

그러니 땅값비싼 중구지역에 자리를 잡았었지..

 

그러나 지금은 인쇄업이 사양산업인지 이전보다 그 행색이 훨씬 궁해보인다.

화려한 해프닝으로 포장도 해 보지만

그 궁색함이 다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후죽순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는 부산에서

이 거리만큼은 70년대 전기줄 얽힌 차가운 콘크리트 슬라브 큐브들이

여전히 주인이다.

 

 

인쇄골목에서 100m가니 이런 전봇대가 있다.

이 전봇대 아랫쪽이 40계단이다.

 

 

보수동, 동광동에서 부두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부산시는 40계단을 중심으로 여기서부터 국민은행 중앙동지점까지 '40계단 테마거리'를 조성했다.

이 거리는 한국전쟁 당시 이부근에 거주하던 피란민, 부두노동자들의 애환이 깃든 거리이다.

 

그들의 피곤했던 삶은 당시의 대중가요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70년대의 이발관이 여즉 남아있고..

 

 

1953 7 27일 휴전이 맺어진 직후

손로원 작사, 라화랑 작곡의 '함경도 사나이' 마지막 대목에서 가수 손인호는 40계단을 이렇게 노래했다.

 

"여수 통영 님을 싣고 떠나만가는 똑딱선

내 가족 내 자식 싣고 내 아내 싣고 내 품에다 내 가슴에다 반겨주게 하려마

하루종일 부두노동 땀방울을 흘리면서 40계단 판잣집에 오늘도 우는구려."

 

 

그보다 더 많이 알려진 노래가 이 노래인듯하다.

 

"40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경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고향 언제 가려나~"

(1954, 박재홍의 '경상도 아가씨)

 

 

어릴 때 이웃 주막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이 노래를 부르며 한을 푸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다.

그런 애환이 서려있는 거리가 이 거리이다.

 

 

 

어른들이야 이북고향에 두고온 형제부모가 그리워

40계단에 앉아 눈물짓지만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슬픔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추억을 만든다.

 

형과 동생은 조그만 쌀알이 뻥~ 소리와 함께 몇 배나 큰 뻥튀기로 튀겨져 나오는 걸 보면서

얼마나 그것이 신기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뻥튀기에서 풍겨나오는 그 구수한 쌀냄새는 어떻고..

 

하루종일 옆에 붙어 서 있어도 지루하질 않았다.

맘씨 좋은 아저씨는 그러고 있는 어린녀석들에게 뻥튀기를 한줌씩 쥐어주기도 하고..

 

 

 

전봇대에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70년대의 영화포스트가 붙어져 있기도..

 

 

 

최근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오프닝신에도 등장하여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었다.

 

 

아빠는 부두에 일하러 가시고..

젊은 엄마는 어린아들들을 업고 걸리고 노점판이라도 해야 먹고 살았던 시절..

 

아니, 어쩌면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혼자서 청상과부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 했던 여인인지도 모른다.

 

불과 5~60여년전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메리켕(아메리카라는 뜻) 부두에서 동광동 골목에서 이름을 부르면서 헤매였건만

 대답은 어디 가고 성당의 종이 오늘도 멀리 님 없는 나의 가슴 속을 울려주며 고요히 들려온다."

(1958, 현인의 '그대는 바람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