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living/동네 산책

차 없어 좋은 날~

노코미스 2009. 6. 8. 14:55

2009. 06. 05. 금요일

 

차가 퍼진지 사흘째인가, 나흘째인가

오늘은 내한몸 끼일만한 차편이 없다.

그래서 학교에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기로 한다.

학교앞에서 한 20분 기다렸건만, 막상 버스가 왔을 때는 어떤 시답지도 않은 이유로 버스를 놓쳐 버렸다.

제가 타야할 버스조차 챙기질 못한다.

다시 기약없이 차를 기다리기가 지겨워 롯데리아 앞으로 내려갔다.

웬 낯익은 분이 아는체를 한다. 민희 할머니다.

손녀 둘을 내가 키워줬다고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하면서 반가워 하신다.

여전히 고우시다.

먼저, 태워보내고 20분 넘게 기다리니 장유행 버스가 들어온다.

이번엔 놓치지 않으리라~~.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얼른 올라탔다.

한동안 장유가는 노선이 맞나~~ 의심스럽다.

지기상가로 해서, 공설운동장으로 해서 창원시내를 돌아서 돌아서..

 

그냥 마음을 비우는것이 낫겠다.

무심한 마음으로 창밖을 본다.

 

 

  

그래, 저렇게 여유있게 시간을 즐기면 되지..

일찍 집에 간다해서 기다리는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밥을 할 것도 아니고..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이렇게 조갑증을 낼까..

언젠가부터 일분의 여유에 불안해하는 날 발견한다.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가로수도 구경 하고..

마음을 비우고 나니, 금방 목적지에 도착한다.

 

 

 

 

대청계곡 밑에서 내려준다.

집을 갈려면 저~길을 따라 모랭이를 지나서

최소한 3-4정류장은 지나야 할 텐데.

택시를 탈까 했더니..

도로위에 차가 하나도 없다.

 

 

 

무작정 걷는다.

가는데까지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다른 방법 생각하면 되지.. 

 

 

 

가다보니 예쁜 꽃으로 장식해놓은 다리도 있고.,

 

 

 

가로변 언덕에 심어진 멋진 노송처럼 패션너블하게 생긴 무화과 나무도 보고..

 

은행앞을 지나가다가 작년 졸업생도 만나고..

웃고 인사하고, 안부묻고..

그렇게 쉬엄쉬엄 놀며불며..

 

 

 

 가다보니, 눈 앞에 이런 계단이 가로막는다.

아니, 가로막는다기 보다는 계단이 한켠으로 조성되어 있다.

보니 낮으막하게 산책하기 좋은 언덕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니,

흙바닥에 나무막대기로 미끄럼 방지시설을 해둔 산책로가 나온다.

저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치 동화의 숲으로 들어갈 것 처럼 보인다.

 

 

 

조금 더 경사진 곳은 좀 더 촘촘한 계단을 놓고..

길 옆 숲에서 까마귀 울음소리와 날개짓 소리가 나름 고즈녁하다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니 이같은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오르막길, 왼쪽은 내리막길..

난, 내리막길을 선택한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길이 조금 더 좁아진다.

 

 

 길가 군데 군데 놓여진 테라스가

지역주민을 위하여 지역관청에서

의도적으로 신경을 써서 가꾼 공원임을 증명해준다.

 

 

 

잠시 내려가니, 정성스럽게 꾸며진 작은 정원이 나온다.

뭐야~ 요정도 아직 못 만났는데 벌써 바깥 세상이야~~

 

 

 

 덕정공원이구나..

아~ 산 아래에 이런 아담한 연못이 있었다니..

늘 이 앞으로 지나다녀도

차를 타고 휑~~하니 지나쳐서만 다니니 알 수가 있었나..

 

이쪽 정자에는 할아버지 두분이 정담을 나누시고..

왼쪽의 다른 정자에는 할머니 두분이

지나가는 바람결에 온 몸을 맡기고 누워계신다.

 

 

연못의 정취를 살려주는 보라색 창포꽃이 제대로 구색을 맞추고 있고..

 

 

 오랜만에 보는 창포꽃이다. 

 

 

 여기도..

 

 

 수련은 아직 필 때가 아닌가..? 꽃이 아닐지라도..물풀만으로도 좋다.

 

주변에는 지압길, 체육시설, 벤취등이 있어서

젋은 엄마 몇 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아이들이 체력단련을 하는동안

자신들은 그늘아래 벤취에 앉아 한담을 나눈다.

 

이렇게 느긋이  구경할 것 다하면서 걸으니

발도 아프고..

어느새 배도 출출하다.

 

가만히 생각하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간은 많이 걸리긴 했지만  

한 일도 많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구경하고

책읽고

민희 할머니 만나고

차창가에서 창원의 가로수 구경하고

장유에서 내려서는

길에서 꽃구경하고

제자만나고

산길에서 까치도 보고

산책도 하고

연못도 보고

창포꽃도 보고

발지압도 하고

국수집에서 국수도 먹고...

 

그동안 차만 타고 다니면서 보지 못하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가 없어서 볼 수도,  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현대인들이 편의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삶의 패턴을 따를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잃어가고 있는지를 오늘 새삼 깨닫는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연인들의 우연한 만남도 결국 길에서 이루어지는 것일진데..

나는 길에 발을 내리지 않으니 어찌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