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추천을 했다. 스위스를 특히, 알프스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은 이 영화를 꼭 보고 가라고.. 그 정도 추천으로 꼴딱 넘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궁금해서 정보를 찾았더니 처음에는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던 중, 마침 늘 들락거리는 영화사이트에 이 영화가 올라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쁜 원고가 있음에도 밀어놓고 재생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결국은 두시간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앉아서 집중하고 나니..마지막 의식을 차렸을 때는 눈가에 눈물이.. 아~ 이 영화를 대형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이렇게나마 작은 화면으로라도 만날 수 있었던게 얼마나 다행인지 하는 마음이 더 우선할만큼 만난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영화였다. 그러면서 내가 아무리 바쁘지만 이 영화만은 꼭 포스팅을 하고 말테야..하고는..틈틈히 1~20분을 쪼개어 이 글을 올린다.
죽음의 절벽 '아이거 북벽'.. '자이언트 오거'라고 하는 이름에서 유래한 3,970m의 얼음바위, 이 거대한 얼음바위에는 오거 또는 아이거라고 하는 거대한 도깨비가 살아서 그 산에 근접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잡아먹었다는 기분나쁜 전설을 가진 산.. 그 전설은 아직도 유효해서 누군가가 접근하면 눈보라와 산사태를 일으켜 모두 잡아먹어버린다. 왠만한 실력으로서는 그를 점령하기가 쉽지 않다.
1936년 베르히데스가덴 출신의 독일 청년 안디와 토니는 틈만나면 바이에른 주변의 모든 산을 스케일링하면서 언젠가는 아이거 북벽을 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아무리 '죽음의 문턱까지 가본 사람만이 삶의 소중함을 안다'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거는 아직 무리다. 그곳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운에 의해서 생명이 좌우되는 곳.. 쉽게 아이거 등정을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안디는 혼자서도 떠나려하고.. 결국 토니는 '그를 지켜주기 위하여' 함께 떠난다.
기차삯이 모자라 독일남부 베르히데스가덴에서 스위스 베르네 오버란트까지 700km를 자전거로 달리고, 먹을것으로 호사를 부릴만한 여유가 없어 보리슾으로 끼니를 해결할 망정, 산에 대한 열정만은 남에게 지지 않는다. 드디어 아름다운 신부앞에 도달했다. 저 거대한 신부는 오늘밤 나를 포근히 안아줄 것인가..
클라이네 샤이데크에는 이미 유럽각국에서 아이거 최초 등정을 목표로 몰려든 전문 산악인들이 먼저 진을 치고 있다. 그 사이에 안디와 토니도 텐트를 치고는 적당한 출발시기를 계산한다.
1936년 7월 18일 새벽 2:30분 아이거가 구름을 걷어내고 어스름 달빛사이로 자신의 모습을 살짝 보여주면서 둘을 유혹한다. 다른 경쟁자들이 잠을 깰까 조심스럽게 준비를 하여 등정을 시작한다. 1톤이 넘는 등산장비를 끌고 손바닥보다 작은 피통 하나와 자일 한가닥에 자신의 목숨을 의지한 채..언제 눈보라가 내리치고 산사태가 자신을 덮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길도 '세계최초'라는 수식어앞에선 두렵지 않다.
첫빙원까지는 순조롭다. 이런 컨디션이라면 내일까지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의 비극적인 드라마를 기대하는 인간들은 그들의 극적인 드라마를 기대하면서 흥미진진하게 관망한다. 때로는, 순조로운 등정에 흥미를 잃기도 하면서.. 역시 메스컴의 본질은 사회의 비극을 먹고 사는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사귀환을 하겠다고 약속한 한 사람, 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단 한사람..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도깨비 오거가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시야을 가리는 눈보라와 점점 더 가팔라가는 빙벽, 수시로 떨어지는 낙석, 아무런 장비도 없는 채로 밤을 새워야하는 비박 등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절대 불가능하다 말라, 할렐루야'가 그들의 신조이다.
이미 짤츠부르그 출신 '빌리'는 낙석에 머리를 다쳐 거의 실신상태에 도달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내일이면 아이거 최초 등정을 축하해주는 미녀들 사이에서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채 삶을 즐기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등반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래세상이란 없다. 모든 것은 정상위에 있다.
과연 저 북벽은 자신을 그의 신부로 삼으려는 저 젊은이의 용기를 용납했을까..
아름다운 대자연과 젊은이들의 땀냄새나는 도전정신 등이 참 아름답게 그려진 영화이다. 시대적 상황은 나치가 지배할 즈음이여서 정치적 색채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들의 행위에는 정치적 색채는 없다.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도 여전히 '각자 자신의 결정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시대가 가로막을 수 없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하고, 저 젊은이들의 무한한 또는 무모한 도전정신에 머리 조아려 경배하게 한다.
영화속의 클라이네샤이데크에서 보는 아이거 북벽은 웅장하면서 아름다운 알프스의 면모를 있는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연기자들이 산을 타는 모습도 상당히 리얼하게 보여진다. 기술적으로 어떻게 저렇게 리얼하게 찍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는 몰라도 연기자들의 연기도 대단하다. 마지막 씬은 상당히 극적이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짠한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게 한다. 두려움을 모르던 토니가..친구를 지켜주기 위하여 등정을 선택했던 토니가..나흘간의 모진 비박에서도 살아남았던 토니가.. 마지막에 '너무 추워'(실제로는 '더 이상은 안되겠어'라고 했대지~)라고 힘없이 내뱉던 마지막 한 마디.. 내내 귓전에 울리면서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쩌다 reading > 영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0) | 2009.11.01 |
---|---|
두 배우의 애잔한 눈빛 연기가 좋았던, 파주 (0) | 2009.11.01 |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0) | 2009.07.16 |
천사와 악마 (0) | 2009.05.18 |
박쥐(Thirst) (0) | 2009.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