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나라 /09-08 스위스

장크트 갈렌St.gallen에서 뮌헨으로~

노코미스 2009. 9. 26. 20:52

 18.08.2009(화)

스위스의 마지막 날이다. 쮜리히와 샤프하우젠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그곳을 가느냐 아니면 장크트 갈렌으로 가느냐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아무래도 뮌헨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크트갈렌을 거쳐야 할 것 같고, 시간상 쮜리히와 장크트갈렌 둘 다는 안될 것 같고..한 곳만 선택해야 한다면 가기 어려운 곳을 먼저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장크트갈렌을 선택했다. 

장크트  갈렌은 스위스의 동북부에 위치한 장크트갈렌주의 주도이며, 612년에 아일랜드의 수도사인 갈루스 즉, St.gallus가 도시의 초석을 다졌으며, 8세기에 창설된 수도원은 중세 유럽 최대의 도서관이 있어 중세유럽학문의 중심이 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 수도원은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 이에도 중세부터 섬유산업으로 번영했으며, 현재도 직물분야에서 이름을 떨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베른에서 10:32 출발하니 St.gallen에  12:53분에 도착하였다. 한 두어시간 여유가 있을 것 같아 구내 라커룸에 가방을 넣으려하니 사용료가 8CHF란다. 스위스에서 가장 비싼 사용료이다. 2시간만에 거의 2만원돈을 까먹는다생각하니 속이 쓰리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게다가 지갑을 보니 잔돈이 없다. 옆에 소세지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다. 소세지 하나가 6CHF이다. 이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하여 엄청 비싸다. 장크트갈렌의 물가는 물가가 비싸기로 소뮨난 스위스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졸지에 14chf를 선자리에서 후딱 까먹고..시내로 나간다.

 

반호프 광장에서 포스트스트라세를 따라가니 어딘지 모르겠지만 광장이 나오고 그 앞에 분수가 멋지다~

 

 

어린 디오니소스인가~?  그렇다면 저것은 술독?

난 물독일거라 생각했는데..포도를 부속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선..?

 

 

 

구시가의 보행자 전용도로인 슈피저가세와 슈미더가세,  공사중~ 조심!!!

 

 

 

 구시가지의 다양한 출창들(벽보다 돌출되도록 만든 창)

시간이 바쁜 관계로 아무렇게나 찍다보니 각 창들의 특징이나 개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장크트갈렌 구시가지의 모습 .. 

  

 

구시가지 안쪽으로 수도원의 대성당이 보임

 

 

<수도원의 안내판>

 

이 수도원은 베네딕트파 수도원으로 8세기에 창건되었지만 나중에 다시 지어져서 지금의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웅장한 대성당과 수천권의 고서와 사본을 소장하고 있는 부속 도서관이 있으며,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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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년경에 아일랜드의 수도자 갈루스는 성콜룸바누스를 따라 이탈리아로 향하던 도중에 병에 걸려 쓰러져 보덴 호반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이윽고 아르봉의 숲 슈타이나흐 계곡에 수도할 곳을 정하고 소예배당을 지어, 그 곳에 모여든 젊은 제자들 12명과 함께 신에게 기도하며 지냈다. 650년에 사망한 갈루스는 소예배당에 안치되었다. 그 후 이 땅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다. 719년경에 콘스탄츠의 주교가 사제 오트마어를 파견해 본격적으로 장크트갈렌을 수도원으로 건설할 계획을 정비했다. 처음에는 수도원의 회칙을 둘러싸고 갖가지 혼란이 일었지만, 747년에는 베네딕투스회가 정식으로 채용되었다. 9세기 초 이웃의 라이헤나우 수도원 원장 하이토는 새로운 수도원 건축을 위한 평면도를 당시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원장인 고츠벨트에게 보냈다. 전체적인 통일성을 기본으로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려던 하이토의 설계에 따라 새로운 수도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장크트갈렌의 실정에 맞는 석조 성당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하이토의 계획이 완벽하게 실현되지는 않았다. 현재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하이토의 평면도는 당시 베네딕투스회 수도원의 기능과 일상 생활의 모습을 알아내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9세기의 건축물은 성당 동쪽의 지하 제실뿐이다. (글- 블로그 >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유럽)

 

성당은 들어갈 수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유는 모름.

 

 

 

 그래서 잔디밭을 지나 안쪽뜰로 들어간다.  

 

 

 안쪽 뜰로 들어가니 정원이 있고..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입구에 수도사와 기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성갈루스 수도사 오트마의 무덤이 있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서 안쪽벽면으로 물통인지 물통인지..

통위에 십자가를 바치고 있는 수도사(오트마 라 적혀있다)가 있고..

 

장크트갈렌에 있는 조각상에는 왜 유독 술통이 많이 등장하는가? 포스트 스트라세로 올라오는 길에서는

아예 빨간 드럼통에서 물이 쏟아지는 분수대도 있었다. 그것역시 술통을 상징하는 것이고..

장크트갈렌의 유래가 궁금한데 알 수가 없다.

 

 

수도원을 나와서 왼쪽으로 난 갈루스스트라세에 있는 레스토랑과 옆 골목풍경.. 

 

 

 

 애기 분수대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동상 

 

지나고 보니 엄청난 문화유적지를 방문했음에도 그 발품에 본전도 뽑지 못하고 헛짓만 하고 온 곳 중 한곳이다.

 

나중에 '장미의 이름'을 읽으며

주인공 아드소가 사건이 일어난 수도원의 대단한 장서관을 설명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그 크기와 규모와 장엄함 등을 여기 장크트 갈렌 장서관과 비교하곤 하였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도서관은 구경도 못하고 왔으니슬퍼2

이건 어디가서 부끄러워서 말도 못한 사연이다.

 

사전지식이 없었던 만큼 시간도 넉넉하게 할애하지 못하고

알프스의 오래된 산간도시 분위기라도 살펴보자는 가장 단순한 의도로

가장 비싼 댓가를 치렀던.. 

장크트갈렌이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