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하바나 블루스

노코미스 2010. 5. 15. 19:05

 

 

 

  

 

 

 

아무도 봐주지 않는 이 블로그에 내가 주기적으로 블로깅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 좋자고 하는 짓에, 주말 오후, 그것도 '스승의 날'이라고 계속해서 날아오는 안부메시지에 안부전화오는 것 까지 모르는 체 해가면서..

이 아까운 시간에 블로깅에 메일 이유도 없건마는..

반드시 이것만은 리뷰를 해 두고 싶다는 갈망이 모든 일들을 앞선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닌 'Habana blues'라는 이유때문에..

 

이 영화를 보기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하바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몇년 전에, '부에노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에서 하바나가 등장했었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영화가 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 형식이라

음악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당연히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었고,

더불어, 영화의 배경인 하바나나 쿠바에 관심이 크게 없었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이 영화를 보고난 다음,

하바나는 나에게 의미있는 하나의 꽃이 되어 있다.

 

이 영화 역시 음악영화이지만, 그러나 음악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하바나에 관한 영화이다. 그리고 쿠바에 관한 영화이다. 음악은 이 영화에서 '스토리'이다.

음악은 하바나인들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나레이터'의 역할을 해 준다.

 

이런 방식은

나(날 포함한 많은 관객들)로하여금 단번에 그리고 쉽게

하바나인들의 삶이 음악적인 삶임을 알아차리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울려퍼지는 신나는 쿠바음악,

1950년대에 제작된 시보레와 더불어 올드 하바나 골목 사이사이로 울려퍼지는 비트~

 

"로큰롤을 즐겨봐~ ~♬비트를 즐겨봐~ ♪♬

순풍에 돗단듯이 모든 것이 순조롭네~♬♩"

 

아무리 음악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함께 어깨를 들썩일 수밖에 없다. 

 

첫장면의 낭만적인 해변가, 그들을 환영하는 뮤지션,

청바지에 노슬리브 원색 라운드 티에 레게 머리,

저 맑고 순진한 눈빛과 억눌림 없는 미소..경쾌하기 짝이 없다

오늘, 그냥 신나는 음악영화 한편 때리는 구나..함께 룰루 랄라~♬

 

 

 

 

그러나, 곧 이어지는 모든 장면들에서 하바나라는 곳이 얼마나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인지,

얼마나 희망이 없는 곳인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슬픈 낙천주의자들인지 알게 된다.

 

"땀냄새, 섹스, 시가 밀수로 가득찬 거리와 술들속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아요~♬♬

이런 도시에서 웃으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아요, 어머니~♪♩

..

산다는 건 참 고달파요, 기적같은 건 없어요~♪♬"

 

무엇이 과연 그들을 이토록 힘들게 할까~?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배경이 될 만한 몇가지 지식이 필요하다.

 

왜 저렇게 낙천적이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저다지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는지..

왜 저렇게 어머니를 울부짖으며,

이 땅에서는 살아가는 것이 고달프다고, 웃으며 살기가 힘들다고 울부짓는지..

왜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 가족이 헤어져서 아프게 살아야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간단하게 찾아본 사전 지식에 의하면,

 

하바나는 쿠바의 수도이고, 쿠바는.. 

  

 

중앙 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위치해 있는 섬나라로서 1492년 콜롬버스가 이 섬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인들이 이주해 와서 살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물론, 그 이전 원주민들의 역사는 따로 있고..)

 

이후 300여년동안 스페인 본국에 의하여 지배받아오다가

1800년대 중반, 스페인 통치에 항거한 쿠바 민족주의자들의 봉기와 미국의 개입으로

 1902년에 '쿠바 공화국'이 발효되면서 스페인 지배로부터는 벗어나나

이후부터는 쿠바의 중추적 기능을 미군이 장악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미국 식민지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실질적인 독립을 위한 끊임없는 쿠데타와 혁명으로 1959년에 피델 카스테로가 정권을 장악하였고,

그는 자신의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임을 선포하고, 이후부터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자유이념을 추구하는 120만명의 쿠바인들이 미국을 향해 쿠바를 떠났다. 

                                             주로 이들은 작은 보트나 허술한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넜고.. 그곳은 주로 마이애미였다.

                                                                   

                                                                                              보트 탈출 행렬은 계속되었고, 

                                                다행히 카스트로는 누구든지 나라를 떠나고 싶다면 마리엘 항을 통해서 그렇게 하라고 허용했고..

                                                              그래서 이 이민 행렬을 "마리엘 보트리프트"( Mariel boatlift)라 하기도 한다.

 

한 때, 혁명 승리후 쿠바는 민족 경제 건설에 힘을 기울인 결과

식민지적 예속성과 기형성을 극복하고 급속히 발전하는 농업과 공업을 가지게 되었으나,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카스트로 정부는 심각한 경제난에 빠지게 된다. 

 

미국은 엄격한 무역 금지 조치를 고수하였고

쿠바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립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자,

최근에는 공식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마르크스-레닌 주의에 대한 모든 언급을 제거하도록

수정하고 있단다. 

 

그럼에도 여전히 카스트로는 공산주의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있고,

하바나 시내에는 집도, 물건도 개인의 것이라곤 없고,

오로지 필요한 것은 암시장을 통하여 유통될 뿐이다

 

오로지, 개인에게 속하는 것은 그들의 몸과 정신뿐이다.

 

 

 

 

이 영화는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쿠바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들 중, 음악을 하는 매력적인 두 뮤지션의 삶에 촛점을 맞추면서 그들 삶의 애환을 전해준다.

 

이 매력적인 두 쿠바 배우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오른쪽이 주인공 루이역을 맡은 눈빛이 아름다운 '알베르토 요엘',

왼편이 친구 티토역을 맡은 명랑한 '로베르토 산마르틴',

둘 다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들 주변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주먹으로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고달픈 삶을 살아가지만

언젠가 이루어질 꿈을 한번도 포기하지 않는 가난한 예술가들로 가득차 있다.  

 

비록 1954년산 시보레를 타고 다니지만,

그것은 구식 자동차가 아닌 그들을 꿈의 나라로 인도해 줄 타임머신이다.

 

이 타임머신을 타고, 성공의 그날을 위하여 열심히 바퀴를 굴린다.

낮에는 먹고살기 위하여 관광객들을 위하여 물건도 팔고, 이것저것 돈벌이가 될만한 일들을 해야 하지만

 

그러나 현실속에 기적 같은 건 없는 줄 알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자신들을 알리기 위한 노력들을 쉼없이 한다.

 

그들이 믿는 건,

모든 것이 전쟁같지만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언젠가는 끝나겠지?

지금당장 박살내지 못할 거라면, 잊어버리고 룸바를 즐기자~는 것..

 

지금 가진 건 없지만, 그리고 아무리 가난하다 하더라도

지금 즐길 수 있으면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아름다웠던 과거에 축배하고,

그리고 다가올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축배~'를 드는 낙천주의자들이 그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가끔 행운이 온다. 스페인에서 들어오는 음반 제작자들..

 

그들 중 실력자를 만나면..

그들은 태어나서 한번도 빠져나가본적이 없는 이 빌어먹을 땅덩어리,

심심하면 정전에다 샤워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 무더운 하바나에서 벗어나

언제나 꿈꾸는 '유로빠'로 갈 수 있고,

또한 그 곳에서 제작비 걱정하지 않고 좋은 음향시스템으로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마침, 스페인에서 실력있는 제작자가 쿠바의 신인들을 발굴하러 온단다.

자~ 기회다.

그들에게 잘 보이면 이제 정전같은 건 찾아볼래도 볼 수 없는 꿈의 도시 마드리드로 갈 수 있다.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기회를 잡기 위하여 열심히 연습을 하면서 기다렸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계약 조건은 말도 안되는 조건이다.

 

미국의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스페인 제작자들은 .. 

3년동안, 제작비를 대어주는 대신에 판권은 자신들이 갖겠다는 조건에

적당하게 쿠바 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은 반정부적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게다가, 편곡도 그들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추어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어건다

 

;;

이건 말도 안되는 쓰레기같은 조건이다. 말하자면 노예계약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물 쓴물 다 빨아먹고, 희소성이 떨어지면 여차없이 버리겠다는 것이다.

 

가진것 없는, 음향시설하나 제대로 갖춘 것 없는 하바나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암담한지 아는 그들이

조건이야 어떠면 어떠랴~  

지금은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지만,

우리가 뜨면 더 나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겠지~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건 아니야..

우리가 유럽으로 갈 수만 있다면 그것을 왜 못 맞춰~

원하는대로 고칠 수 있어..

 

아니야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영혼을 파는 짓이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많은 상황을 배신하면서 살아왔지만 예술만은 배신할 수 없어..

예술을 담보로 적당히 타협하고

나의 조국을 팔아서 성공하고 싶지는 않아~

 

 

 

비록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아내와 자식들을 마이애미로 밀항시킬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아무리 암담하고 가슴아픈 현실앞에 놓여있을지라도..

 

나를 낳아준 조국의 현실을 자신들의 프로모션을 위해 이용하려는 매판자본 앞에 굴복하고 싶지 않는 루이..

 

결국은 친구도 떠나보내고

아내와 자식도 떠나 보내고 

 

하바나에 혼자 남겨진 그의 기분은 늘~

"과거에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 또는 운명의 노예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려움과 고통속에서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그런 그의 모습은 떠나는 자들보다 도덕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 보인다. 

 

루이의 노래속에

"하바나에는 하바나의 관광포스터에 그려진 태양과 술, 시가, 창녀 외에도

보이지 않는 더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다" 라는 투의 가사가 나온다.  

 

그것은 아마도 루이와 같은 아티스트들과 또한

 태어난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쿠바의 많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정말 소중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하바나일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영화를 보고난 직후 나의 소감은 이랬다.

 

"이 영화는 좀 특별하다"

 

편하게 봤는데, 내용이 단순하지 않다

재미있게 봤는데, 가슴이 아프다.

웃으며 봤는데, 눈물이 난다.

영화는 끝났는데, 내 가슴속에서 영화는 도무지 끝날줄을 모른다.

루이의 노래소리가 끝도 없이 흐른다.

그래서 이 영화를 5번쯤 봤다..

 

 

조만간에 쿠바행 티켓을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을 나의 모습이 그려지고.. 

 

마지막으로

'하바나 블루스에 새겨진 눈물방울같은 슬픈 존재들'의 예술혼과 자유를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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