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같았던 어젯밤의 일은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도 내 망각증과 함께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옷을 챙겨입고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나선다.
내가 베네치아를 전혀 모르니, 관광할 만한 유명한 곳들을 조언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니
관광지도와 소형 관광책자 하나를 던져주면서 2.5유로를 달라고 하곤 그것을 참고로 하라고 한다.
뜨아해할 틈도 없이 난 이미 기계적으로 지도를 받아들고는 산마르코 서쪽 광장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한사람 두사람 불어나고 있는 산마르코 광장의 아침모습을 감상한다.
그러고 있으니 동양의 미모를 알아챈 웬 중년남성 한명이 다가오더니
사진을 하나 찍어달란다. 산마르코 종탑을 배경으로 하여 한장 찍어주니 나도 서란다.
그것을 빌미로
어디서 왔는지, 베네치아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오늘은 어디를 갈건지를 묻는다.
딱 보니 제사보다 잿밥인 것 같으나 근거없는 선입견은 나의 경험만 제한하느니..
일단은 판단없이 묻는대로 대답해준다. '한국에서 왔다.'
'오늘은 무라노와 부라노를 갈까 생각중이다' 등을 이야기하니
아~ 그러냐고 자기는 일본은 사업상 자주 왔다갔다 하는데 한국은 가보질 못했다.
한국이 궁금하다. 자신은 파도바에 사는 사람이고 오늘은 주말이라 베네치아에 놀러왔다.
네가 무라노에 갈거면 나도 그곳에 갈 건데 같이 가자~
거절할 명분도 없으니 그리하자 하며 동행삼아 움직인다.
그러면서 무라노에 가기전에 '리알토'에 가봤냐~?
아니 오늘이 베네치아 첫날이라 아직 가보지 않았다
내가 안내할테니 갔다가 가자~ 해서 ..
리알토까지 오게 되었다.
리알토 다리를 보더니 앞에 서란다.
'벨라~'라고 침발린 소리한번 날려주시고는 카푸치노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좋아한다고 하니.. 한잔 하고 가잔다.
오~ 죄송해요. 나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여행자예요~
하고는 이것 저것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
어느틈에 사람이 사라져 버리고 없다.
.
.
.
???
아,
바람만큼이나 짧은 인연이여라~
그리하여 '본의아니게' 베네치아의 첫날 첫 여행은 리알토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본의가 아니라 했지만..
사실은 내가 뭘 몰라서 그랬었던거지 실제 리알토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았던 거다.
왜냐하면 '리알토'는 베네치아의 가장 번화가이기도 하지만
베네치아가 도시로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15세기 이웃나라인 피렌체와 더불어 중세 르네상스 문화를 이끌어간 대표적인 도시국가였다.
물속에 가두어진 이 기묘한 땅에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으며
이 닫혀진 공간에서 어떻게 그렇게 자신들만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고 지킬 수 있었을까?
때는 로마제국 말기,
지금으로부터 약 1,500여년 전
훈족인 아틸라가 이끄는 야만족이 유럽을 침범해 오면서 베네치아의 역사는 시작된다.
원래는 이 지역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몇개의 하천에 의해서 갯벌지역(라구나)으로서
사람이 살지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쳐들어온 훈족은 그 흉포함이 다른 어떤 야만족보다 심하다하니
이탈리아 북동쪽의 베네또 지방사람들은 '어디로 달아나야 살아날 수 있을까?'하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산지로는 달아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따. 왜냐하면 북쪽 산지로는 도망가다가 숨기도 전에 붙잡혀서
죽음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남쪽으로 내려갈까도 생각해 보지만
훈족은 이미 수도 로마를 향하고 있다하니 그들을 피하는 방법은 그들보다 앞서서 계속 달아나야 하는데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본다.
그때 지역의 사제에게 하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탑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바다쪽을 보아라. 거기 보이는 땅이 지금부터 너희들이 살 곳이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마침 썰물때라 물이 빠진 소택지대가 군데군데 노출되어 있는 갯벌이었다. 갈대가 전면에 우거져 있을뿐 나무라고는 그림자조차 없었지만, 신의 계시를 받은 그들은 사제를 선두로 그 땅으로 옮겨갔다. 이것이 452년에 일어난 일이다.
그들의 신천지에는 물고기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이로부터 약 1세기동안 이탈리아말로 '라구나'라고 부르는 이 개펄지대로 이주한 사람들은
이웃도시의 물자들을 배로 이동해주고, 염전을 개발해서 소금을 파아서 살아갔지만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상황도 계속 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랑고바르드족이 쳐들어왔는데
자신들의 주교좌 교회가 있었던 그라도나 에라크레아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소택지대로 옮긴 후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다시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실, 베네치아인들이 아무리 몸의 안전을 위해서 이주를 하긴 했지만
이주초기에는 가능하면 육지에 가까운 소택지대에 살고 싶어서 본토주변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아무리 소택지라도 육지에 가까운 곳이라면
반드시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육지와 되도록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동북쪽 사람들은 토르첼로나 부라노 섬으로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서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펠레스트리나와 마라모코 등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후에도 본토로부터 몇차례 이주가 있었고
난민에 의해서 성립된 이 작은 나라도 조금씩 국가로서의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9세기 초가 되면서 이 작은 난민국가에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가 닥쳐온다.
800년, 프랑크의 왕 샤를마뉴 대제가 신성로마제국의 왕이 되자
비잔틴제국의 속국으로 지내고 있던 베네치아를 치고 들어왔던 것이다.
고트족도, 랑고바르드족도, 비잔틴제국조차 건드리지 않았던 소택지대로 프랑크족이 쳐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무렵 베네치아는 마라모코 근처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었는데..
프랑크 족은 본토의 키오지아를 불태워버리고
마라모코 옆의 섬 펠레스트리나의 바닷가에 대형선박을 정박하여 쉽게 내습을 하였다.
그러나 베네치아인들은 자신들의 지형적 특징을 이용하여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이 전쟁이후로 마라모코가 아드리아해에 직접 면하고 있어서 국토방위를 하기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라고 판단하여
베네치아의 중심거주지를 리알토로 옮기게 된다.
이 무렵 리알토에는 어부만 살고 있었고,
다른 개펄섬에 비해서 훨씬 외진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리알토를 중심도시로 했을 때 국토방위측면에서 크게 두가지 이점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개펄 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육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고
둘째는 소택지에 있으므로 외해와는 직접 접해 있지 않아서 적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한 동시에
리도의 수로를 항구의 입구처럼 정비만 하면 대형선박도 바짝 댈 수 있어서 해양 교역을 하는데는
이만큼 안성맞춤한 전략도 없다.
이렇게하여 9세기 초에 베네치아는 리알토를 중심으로 나라전체를 몽땅 옮기는 대대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베네치아 그야말로 '바다위에 떠 있는 도시' 로 건설되었다.
그 이후부터 베네치아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조상처럼 안전한 곳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해군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자주국가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9세기 이후, 수많은 역사가 밀물처럼 몰려오기도 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을 리알토 거리
지금은 단순한 관광 거리이지만, 12~5세기에는 금융가, 무역상, 하천교역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인종들이 북적였던 거리였다 한다.
지금은 지금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들로 가게가 진열되어있다.
운하 주변의 아름다운 광장 레스토랑
베네치아의 초기 다리들은 모두 목조다리로 되어 있고
다리의 모양은 모두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이는 다리밑으로 배가 지나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대운하쪽으로는 큰 배도 드나들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목조 도개교로 건설되어
물품을 실은 대형선박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단다.
지금은 대형선박들이 베네치아 내항으로까지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으므로 굳이 다리를
올릴 필요가 없어져서 석조로 바꾸었다.
13~5세기에는 다리 저편으로 운하를 끼고 수많은 상사와 은행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다.
리알토 다리 위쪽 모습
다리양편으로 가게들이 형성되어 있다. 역시 한 평의 땅도 그냥 두지 않는 현실주의자들이다.
더불어 재미있는 것은 베네치아 짐꾼들의 구루마끌기.
베네치아에는 땅위로는 다른 어떤 이동수단이 없으므로 저런 바퀴달린 바구니로 물품들을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 볼 때 너무나 안스러웠다. 저 무거운 것들을 끌고 아침저녁으로 저런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무지 힘들텐데..
했으나, 외지인이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 그렇지..
계단에 맞춤한 바퀴를 장착하고는 너무나 거뜬하게 잘만 오르내리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인들을 현실주의자이며 매우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라고 평했다.
절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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