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나라 /10-08 베네토

티치아노(Titian Vecellio)의 고향, 피에브 디 까도르

노코미스 2010. 9. 24. 12:55

 

어쨋거나 올라간만큼 내려와야 하는 것이 인생이려니..

꽃들과 노닥거리면서 천천히 내려온다.

 

오론소 산장쯤에 가까워지니, 예측할 수 없는 산악날씨가 또 변덕을 부리더니 한줄기 소나기를 제법

힘차게 내리붓는다. 오론소 산장 처마아래로 뛰어 들어가 10여분을 기다리니 또 다시 주춤..

 

그 사이를 틈타 재빨리 버스 정류소로 내닫는다. 그 사이 비는 계속 오락가락 한다.

지금 내려가면 14:00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으니 그걸 타면 된다. 그러나 미주리나에서 15:55분에

환승을 해야 한다. 1시간 30분정도 공백이 생기는데, 그 시간동안은 미주리나 주변을 산책하든지..

 

그렇게 시간 계산을 하면, 오론소 빌라 피콜라에 16:37분 도착, 다시 가방 찾아서 다음 차편을 이용해

깔랄조역에 도착하면 18:25분..결국, 오늘은 깔랄조 역 주변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 베네치아로

들어갈 수밖에..이렇게 계산을 하고 있는데 버스가 들어온다.

 

그 사이 또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나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얼른 버스에 먼저 올라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는다. 이 시간에 내려가는 사람이 나뿐인가 했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탄다. 일부는 앉고 일부는 서고..서서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내 옆자리는 한동안 비어있더니

출발직전에야 뒤늦게 차에 오른 한 중년 남성이 빈자리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를 차지하고는 앉는다.

옆자리가 채워지니 마음이 든든하다

 

차가 출발하면서, 내편에서 몇가지 궁금한 것들을 묻게 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 쪽에서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이는 동양인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사업상 사할린을 자주 드나들고,

경유지로서 서울도 몇번 들렀던 적이 있단다. 그래서 그런지 동양여성과 동석을 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연으로 해서 나의 여행일정을 이야기하게 되고..

 

하릴없이 미주리나에서 1시간 30분을 지체해야 한다는 사정을 알게되자, 조심스럽게 제안을 한다

현재 자신의 임시거주지가 오론소 피아자 근처이니 나만 괜찮으면 오론소까지는 자기 차로

라이딩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 나야 괞찮은 정도를 넘어서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지~

해서~, '당신의 제안을 정말 고맙게 받겠다' 하고는...

뿌조로 편안하게 오론소까지 내려오게 되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이 행운으로 인하여 모든 일정이 앞당겨지게 되고..

가벼운 마음으로 '피에브 디 까도르'로 간다. 이 곳을 숙박지로 정하게 된 것도 그 신사분 덕택이다.

버스 안에서 혼자 고민을 했었다. 어차피 오늘은 이 산간지역에서 자고 내일 베네치아 기차를 타야하는데

잠은 과연 어디에서 자야하나..내려가는 도중에 예쁜 산간마을이 있으면 아무곳에나 내려서

그 곳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아침 역으로 가자..혼자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 신사분 말씀이, 내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충고를 해 주신다. 왜냐하면..

너무 작은 마을에는 숙소가 없단다. 그러니, 역 주변에 가서 숙박을 하는 것이 좋단다.

그래서 어떤 곳이 좋으냐 했더니..'깔랄조'나 '피에브'가 좋다고 하길래..

내 느낌에 '깔랄조'보다는 '피에브'가 좋을 것 같아 이곳을 선택하였다.

 

 

 

 

 

 

'오론소 빌라피콜로'에서 15:37분차를 타고 16:06분에 '피에브' 버스 정류소에 내리니

광장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뭐야~? 하고 올려다보니..

그 곳에 다소 익숙한 이름이 얼른 눈에 들어온다.

 

'티치아노~'? 티치아노 동상이 왜 여기에 있지..? 하고 의문을 갖는 순간..

주변 이정표에 '까사 디 티치아노'팻말이 붙어있다.

"뭣이라~? 티치아노 집이라~??" 이거, 횡재치곤 큰 횡재를 했구나~ 쾌지나 칭칭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내려가본다.

 

 

 

 

티치아노 광장에서 마주보이는 조용한 골목을 따라 내려가보니..

한가한 동네에 유독한 집만 사람들이 몇몇 드나드는 집이 보인다. 옳다구나..저 집이로구나..

 

 

 

 

가까이 가보니 '까사 디 티치아노'간판이 보인다.

 

 

집은 평범한 주택이지만 다소 앤티크한 분위기이다.

 

이곳이 티치아노의 고향집으로 알려진 것은 

티치아노가 죽고도(1576, 08, 27 사망)  거의 50여년 후인 1622년에

티치아노의 생애에 대한 책을 썼던 티치아넬로Tizianello에 의해서이다.

 

티치아넬로의 주장이 있기 전까지는 아마도 이 위대한 화가가 San Canziano에 있는 Biri Grande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후 몇십년까지도 그의 고향이 어디인가에 대해서 많은 의문들이 있었던 거 같은데,

티치아넬로로 인하여 그런 의문들이 모두 해소되었다고 한다. 

 

 

 

 

 

이런 형태가 15세기 까도르지방의 전형적인 중상류층 가옥구조란다.

집 구조는 두겹의 석벽에 지붕덮힌 현관에, 외부로 빠져있는 목조 계단, 그리고 목조 타일로 지붕을

덮은 형태이다

 

 

 

 

 

포치에는 티치아노의 젊은 시절 자화상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지상층에는 티치아노가 연습했던 도로잉습작 복제품9원작은 우피치 미술관에..)과 그에 대한

몇가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5개의 작은 방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아마도 화가는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냈거나

또는 베네치아로 떠난 후에도, 고향에 돌아올때면 기거했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곳곳에 화가의 온이 여전히 맴돌고 있는 듯하다'라고 설명서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 건물의 정면모습은 원래 안티크한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였다고 한다.

 

 

 

 

어쨋거나, 위대한 화가의 영혼이 머무는 그의 생가를 구경하는 예상치 못한 횡재를 하고는

다시 광장으로 나온다. 티치아노의 등뒤에서 바라보니 오른쪽에 뮤지움 플랜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보니, 건축박물관이라는데..아마도 산악지방 건축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입장료를 내면서 들어갈 만큼 건축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입장은 포기하고..

 

다만, 복도에 걸려있는 몇 장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으로 박물관 입장을 대신하려 했는데,

이것이 나의 호기심을 상당히 끌어당긴다.

과거 역사속에서,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와 이태리간의 영토분쟁이 치열했던 곳이란 건 이제 상식이 되었다

아마도 이 그림은 그 역사를 증언하는 그림일 것이다. 한 겨울, 돌로미테를 사이에 두고..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갔을까..아픈 역사가 그림한장으로 아련하게 전달된다.

 

 

 

지금 우리가 버스를 타고 올라가거나 걸어서 넘어가는 돌로미테 파소들은

먼 옛날 이 지역 원주민들이 말을 타고 오르내리던 길이었다고 생각하니..

과거와 현재가 길 위에서 이어진다는 느낌.. 이 느낌 또한 묘하다..

 

 

 

 

피에브가 낳은 위대한 화가인데, 역시 티차아노의 복제품 하나정도도 걸어줘야 하고..

 

 

 

박물관 뒤편을 돌아서 나가면 색깔이 고운 교회가 있고..

 

 

티치아노 광장에서 Tai방향의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15세기 건축양식의 자그마한 교회가 하나 나오는데,

이 지역에서는 관광안내서에 기록될 정도이니 나름 의미있는 교회인 모양인데..문이 잠겨있어

몇몇 여행자들이 문앞에서 머뭇거리다 발걸음을 돌리기도 한다.

 

 

광장에서 조금 벗어나니 원주민들의 생활모습이 보인다. 석벽에 목조타일 지붕이 이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 양식인 듯하다. 근대화되면서 돌이박힌 석벽보다는 편리한 시멘트를 사용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재건축되는 건물들은 다시 돌이 박힌 전통적인 양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좋은현상..

 

 

 

문앞의 소박한 화분 몇개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하여 피자리아로 들어간다. 이 동네의 유일한 피자리아이다. 돌다돌다 알아낸 곳..

들어갔더니 7시부터 오픈한다고 30분동안 다른 곳을 갔다가 오란다.

 

오늘 하루종일 걸었는데..이젠 쉬고 싶은데..

 

나, 저기 구석에서 기다리면 안되겠냐니까, 그렇게 하란다.

추천해주는 풍기피자를 주문해놓고는 소설책 한권 들고 앉아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장작불 지피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를 마음껏 풍기드니 내자리로 모습을 드러낸다.

장작불에 구운 정통 이태리 피자..흠~

 

근데, 이것이 5.5유로짜리 피자 맞는감? 이렇게 큰 걸 나 혼자 다 먹으라고..? 어떻게..??

 

혼자 이리저리  난감해하고 있으니..나머지는 테이크 아웃하라고 박스를 갖다준다^^

미리 덜어내 놓고..

근데, 먹을려니 또 밀려오는 걱정 하나..

이렇게 크면 맛이 없는거 아냐..?? 갑자기 걱정이 살~..

 

오~오~, 그러나 그 걱정은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지 않을까하는 걱정보다 더 불필요한 기우 같은 것..

이태리에서 먹었던 피자들이 다 좋았으나, 그 중 가장 좋았다..

화덕에서 스며든 매캐한 연기냄새와 기름이 쪽~빠진 바삭한 느낌..

 

하지만, 저렇게 싸간 피자는 결국 다 먹지 못했다.

혼자서 4조각이나 먹고..언제 어떻게 나머질 먹었겠는가..

 

아침되니 식어서 더 먹을 수없게 되었고..아까웠다..ㅜ.ㅜ

 

 

 

이태리에서 가장 싼 가격에 가장 질이 좋았던 호텔..

이 호텔은 지역의 스쿠올라라고 하는 비영리 교회단체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라,

호텔 분위기도 마치 수녀원같은 정갈하고 경건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스탭들도 모두 중장년 및 노년의 여성들과 장애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방에 들어가니, 마치 동화나 영화속에 나오는 청빈한 '수녀의 방'같다.

침대 머리맡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가 이 방에 하룻밤 신세를 지는 객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

성모마리아의 보살핌 때문인지 정말 편안하고 포근하게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접하게 되는 샤워실에는 먼지 한톨, 머리카락 한올없이 깨끗하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아주 묘하면서 낯선 경험이었다.

 

 

아침에, 호텔방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이태리 알프스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산악마을 풍경..

산골마을의 신성한 기운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온 몸과 마음이 정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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