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희 지음/출판사 휴머니스트/p 463
모든 공부는 here and now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 개념에 형성된 과정을 현재로부터 추적하기가 쉬우니까..
그래서 난 고중세편보다 근현대편을 먼저 선택하였다. 개념이 형성된 배경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우니까..
나에게 이 책은 장점이 참 많다.
첫째, 책 한권에 28명의 철학자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철학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선호하는 맛 하나를 선택해서 깊이 있게 그 맛을 음미하는 게 좋겠지만..
나처럼 철학이 본래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살짝살짝 겉맛만 훓어보고
선호맛을 찾아내는 과정이 우선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나처럼 철학이 어려운 사람에게 참 적절하다.
둘째, 철학의 정면적인 개념보다는 그 개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저자, 이동희가 말하길
자신은 철학이라는 결정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철학자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무시간적이고, 열정도 없고, 박제화된 무미건조한 철학이 아닌,
그들의 삶과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가슴으로 만나는 철학'을 전하고 싶었다고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아무런 열정없이 박제된 개념으로 외웠던 그들의 사상이
한 시대의 정신문화를 파괴시키고 새로은 정신문화를 창조하는,
그래서 그것이 변혁이었을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 시대를 부정하는 반란으로 취급받아
모국에서 추방당하거나 또는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 다른 나라로 피신을 하기도 하면서
생명을 부지했다고 하니..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 철학자의 생명을 담보로 전개된 사상들에 의지하여 우리의 이성과 감성
그리고 시대정신을 진화시켜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나니,
새삼 그들의 사상이 더 위대하게 느껴지고
더 뜨겁게 다가온다
셋째, 머리말을 읽는 동안 저자가 글을 참 편안하게 쓰는 사람이란걸 느꼈다.
일반적으로 현학자연하는 철학자들이 쓰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체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내가 이책을 선택하도록 한 주요요인이기도 하다.
이런 편안한 글쓰기는 첫장에서부터 끝페이지까지 일관성있게 계속되므로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넷째, 연대별로 계열성있게 서열화함으로서 사상과 사상간의 개념적 변화와 차이를 쉬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좋다.
베이컨에서 헤겔에 이르는 근대 유럽 철학자들은 불합리한 세계에서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해
새로은 합리적 세계와 자유로운 사회를 그려내고자 했다면,
루소로부터 출발하여
쇼펜하우어와 니체로 대표되는 감성철학은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근대철학에 반기를 들면서
인간의 감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런 관심은 이후 인간의 실존에 관심을 갖는 하이데거, 샤르트르로 이어졌다가
데리다, 푸코, 들뢰즈 등 프랑스 현대철학으로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유하기를 멈추었을 때 우리 주변에서 항상 나타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을
지적하면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조망한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로 마무리를 하기까지
그의 설명은 시종일관 편안한 문체로 그 흐름을 부드럽게 유도한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철학들이 흥미롭고 재미있으나
대부분의 개념들은 이미 한번쯤은 들어왔던 것들이라 노벨티가 돋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중 하나,
'한나 아렌트'는 상당히 새롭다. 물론 '세계사 편지'에서도 이미 접한 적이 있긴 하지만..
최근에 접한 사상가 중 계속 관심을 유도하는 사상가 중 한명이다. 그녀는..
그래서 그녀에 대해서 조금 소개해보자면,
열네살에 이미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과 칼 야스퍼스의 '세계관의 심리학'을 읽을만큼 지적이었고
열다섯살에 무분별한 젊은 교사의 모욕적인 언사에 화가나서
학생들을 주도하여 수업을 거부한 죄로 퇴학을 당하기도 한 고집이 센 아이이기도 했단다
성장해서는
하이데거와 그녀, 그리고 칼 야스퍼스와의 사적인 관계에 얽히어 있는 이야기도 재미있고,
20세기초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여성이 살아남기 위하여
여기저기 떠돌수 밖에 없었던 무국적자로서의 삶의 궤적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나찌치하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학살이 자행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적 특성을 설명하는
사상적 관점이 나의 관심을 끈다. 바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관점이다
1942년에 있었던 유대인 대량학살을 마지막으로 책임진 나찌친위대원 '아이히만'의
재판을 관람한 후 아렌트는,
자신의 상상과는 달리
아이히만이 성격파탄자도 아니고 정신이상자도 아닌
우리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너무나 멀쩡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렇다고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도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칸트를 들먹이며 자기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그를 보면서, 그녀가 내린 결론은..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만이 있었을 뿐, 스스로 사유할 능력이 없는 한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해 내고자한 정상적인 관료였고, 그렇지만
자율적인 판단력이 없이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책상앞의 살인자였을 뿐이었다.
즉, '악의 평범성'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거나 사유할 능력이 없거나
자신의 '복종'과 칸트의 '의무'를 구별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얼마든지 그런 악행이 자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해 사유하기를 멈추었을 때, 그것은 전 세계에서
그리고 우리주변에서 항상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개념이다.
오늘날 우리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들어보면 너무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들이 많다.
자신의 어린딸을 죽여서 암매장하고, 노쇠한 부모를 죽이고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집에 불을 지르고,
이웃집의 아이를 유괴하여 목숨을 빼앗고 등등
차마 입에 올리기가 무서워서 말로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악행들은 정신질환자나 아주 나쁜 사람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알고보면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아침저녁으로 멀쩡한 모습으로 얼굴 맞대며
인사나누던 이웃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현대사회의 이러한 단면을 규정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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