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알랭 드 보통(정영목 옮김)
출판사: 청미래
저자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런던에 살면서 런던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글을 쓰고..
우리나라에도 한번 다녀간 적이 있는 한국팬이 많은 저자 중 한 사람..
그의 글은 젊은 철학자답게 무겁거나 고리타분하지 않아서 좋다.
상당히 재기발랄하면서도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다.
어떤 당면한 상황에 대해서 결코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시 철학자다운 면모를 보인다.
일반인이라면 고민만 하거나 문제로 인식도 못한채
그저 원래 그런거야 하고 인습적으로 넘어가기 쉬운 문제들 조차도
알랭은 결코 가볍게 넘어가지 않고
대립되는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면서 재미나게 디베이팅한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일반 독자들은 그의 그런 명쾌한 논리적 해법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적 콤플렉스가 대리충족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도 그런 글쓰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 개인이 누군가를 만나서 이별을 하고 상처를 입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를 24개 장으로 나누어
사랑하는 과정에서 당면하게 되는 소소한 심리적 딜레마들을
철학적 명제로 풀어가는 상당히 지적인 글이다.
우리가 처음 만날때,
우리는 누구나 그와 내가 어떤 운명적 이끌림으로 만나는 것이라며 개별적 신화를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단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충만해 있던 즈음의 나의 시야에 우연히 그가 들어옴으로해서
선택된 하나의 우연적 인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연인들은 상대와의 만남을 절대 우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랑의 서사는
상대를 운명이라 생각하는 착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운명론적으로 만난 상대의 실체는 무엇인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상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을 잡고서도 자랑하고 싶어한다. 왜 그런 것일까..?
정말 그렇게 예쁠까? 정말 그렇게 착할까? 정말 그렇게 매력적일까?
No~!
그가 그렇게 예쁘다고 자랑하고 착하다고 자랑하는 그녀..
???
실제로 보면 성격 까칠해보이고..그녀보단 내가 더 예쁜 거 같은데..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에 빠지고 싶어하는 욕구가 팽배해 있는 사람의 용서할 수 없는 감정적 미성숙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이상화'의 한 유형일뿐, 실체의 본질이 아니다.
그렇다할지라도 이 문제는 참과 거짓이라는 학문적 영역으로 다룰 수 있는 논쟁거리가 아니다.
사랑은 어차피 낭만적 미망과 의미론적 부정확성으로 시작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낭만적 미망에 의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로 내 앞에 서있는 상대
사랑을 확인하게 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의미를 가진 신호와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 하는 저 말은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일까?
지금 저 제안은?
그러나 상대는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자칫 고백했다가 퇴짜을 맞을 수도 있다는 핵심적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전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하지 않는 욕망이 가끔 더 크게 드러나기도 하므로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과정에서 이면의 의미읽기는 지루하기는 하나, 구애과정에서 이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 외에도
사랑하는 과정에서 왜 많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지..
사랑의 행위를 할 때 불쑥불쑥 파고 들어오는 자의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간신히 얻은 사랑을 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혐오적 마르크스적 염세주의와 자기 사랑간의 균형, 지나친 연약성과 지나친 독립성간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 것인지..
알면 알수록
내가 생각했던 완벽한 그녀의 이미지와 실제 그녀의 모습간에 벌어진 차이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것인지..
나의 유년기와 그녀의 유년기간의 근원적인 차이에서 오는 '취향과 의견'의 차이가 점차 우리의 관계를 피곤하게 만들고
점차 익숙했던 환경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찾아오게 되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런 취향의 차이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을 해야 하나
아니면 개인의 자유로 남겨두어야 하나..확실히, 남녀간의 '낭만적 사랑'은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무조건적인 기독교적 사랑과는 다르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한다. 나의 연인이기 때문에, 나의 딸이기 때문에..
그가 또는 그녀가 나에게 특별하기 때문에 간섭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악용되면 '사랑의 압제'가 된다.
사랑의 압제는
파시스트의 논리, 나찌즘의 논리..너희 국민들을 사랑하므로 앞으로 간섭하겠다는 유혈낭자한 정치적 압제와 같은 논리이다.
사랑과 자유주의 간의 간극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나..?
중세 이탈리아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사랑을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라 정의했다던가..?
보편적 정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어쨋거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를 모두 아름답다 한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아름다운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이는 미의 기준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인지, 반대로 주관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연결된다.
즉, 연인의 아름다움은 플라톤적 아름다움이냐 칸트적 아름다움이냐..
등등..
이 외에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는 생각했다 치더라도 콕 찝어내지 못하고 흘러 보내 버렸던
수많은 심리적 주제들을 재미나게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과정에서 수많은 심리적 딜레마와 갈등을 잘 극복해 온 연인이라 할지라도
시작이 낭만적 운명이 아닌 우연에 의해서 시작되었듯이 언젠가는 관계에 끝이 오기도 한다.
거의 종교적인 신념으로 사랑의 실체를 맹신했었던 연인사이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동요가 오기도 하고..
게다가 가장 큰 걸림돌은 '행복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행복이 워낙 귀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가까이 와 있는 행복을 보는 순간
언젠가는 이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내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핵심적인 불안은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또는 이르기도 전에
관계를 일찌감치 끝내고자하는 유혹으로 이어진다. 관계는 사랑에 수반되는 행복이 계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견딜수 없을 때 끝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구애과정과 마찬가지로 이별 역시 분명한 언어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단지, 뭔가 상호작용이 삐거득 거리고..
어느날 부터인가부터는 둘만의 언어가 통하지 않고 마치 서로가 외국어를 쓰고 있는 것 같은 불통의 관계가 온다.
이 과정에서 낭만적 테러리즘은 필수이다. 테러리스트의 심리적 저변에는
'왜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가?'에 대한 분노와 끝나가고 있는 사랑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지만
결국에는 사랑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결국은 떠나버린 연인을 향하든 자신을 향하던 '너는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나쁜 계집이었어~'라고 말해봐야
의미도 없고..
남겨진 쪽은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살이라도 택하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않고..
그래도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미덕이 있으므로
죽음으로까지 이끌 수 있는 자기 혐오를 어떻게라도 자기 사랑으로 바꾸는 연금술적인 계략을 꾸밀 수 있다.
"처음부터 그녀는 내가 죽도록 사랑할만큼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었어~"
그렇게 노력하지만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 속담처럼 현재의 시간은 무자비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영혼은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한동안은 노스텔지어에 젖어 살게 될 것이다. 함께 했었던 외적 세계의 많은 부분들,
언어들, 모습들..그런 것들이 그녀를 잊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도 지나고 나면 점차 그녀와의 시간은 나의 역사의 일부가 되어가면서 내 현실에서는 잊혀져 간다.
. 불가피하게..가끔은 망각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
.
.
사랑을 잃고 그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약을 먹기도 하고 자살을 하기도 하는 등
낭만적 비극은 많은 로맨스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런 비극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을 하는 것이 반드시 고통스러워야 하는가?"라고 묻는 낭만적 실증주의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나에게 상처주지 않을 사람들만 골라서 고통스럽지 않은 성숙한 사랑(?)을 하는 지혜를 얻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모든 사랑은 고통이고 불합리하고 므로 아예 그런 상황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는 아예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마지막 이 질문은 내가 늘 고민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늘 이 두개의 질문사이를 오고가며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알랭 드 보통은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명쾌한 교훈을 제시해 준다.
'사랑의 모순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지혜,
지혜에 대한 요구를 지혜가 무력해지는 상황(안다고 해서 아는대로 되는 것은 아님을 아는 상황)과 조화시킬 수 있는 지혜,
첫눈에 반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그 불가피성과 조화시킬 수 있는 지혜,
사랑을 평가할 때 교조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로 치닫지 않는 지혜,
두려움의 철학이나 실망의 윤리학을 구축하지 말아야 하는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고 제시한다.
마지막 교훈인
"두려움이나 실망을 정당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은
지금 나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와 닿는 교훈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 책은 사랑이 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길을 제시해주는 사랑의 바이블쯤 된다해도 큰 무리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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