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책읽기

출발부터 귀향까지 여행자의 심리에 대한 해설서, '여행의 기술'

노코미스 2012. 11. 28. 23:17

 

 

저자 알랭 드 보통(정영목 옮김)

출판사 청미래

 

 

여러분은 왜 여행을 하십니까?

당신을 떠나게 만드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장소선택은 어떻게 하십니까?

무엇을 보고 오십니까?

혼자여행을 즐기시는지 아니면 친구와 함께하는 걸 즐기시는지?

 

누구는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라고 한다.

과연 여행이 뭐길래..

 

근래 우리나라에 매니아층을 확보할만큼 통찰력있는 글맛을 보여주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여행에 관한한 모든 것을 말해준다.

 

350페이지 정도의 A5사이즈 판본에

여행의 출발점에서 느끼는 설레이는 감정에서부터  귀향단계에 이르기까지

여행과 관련된 모든 감정과 감상과 심리적 현상들을

18세기의 문학가와 여행전문가들의 문헌들을 인용해가면서 또는 자신의 여행경험을 사례를 들어가며

명쾌하게 분석하고있다.

 

 

여행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적 번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거창한 문장으로 첫장을 연다.

여행에 관한 한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긴 했던 거 같다.

 

19세기 초 독일의 탐험가 알렉산드 훔볼트는

"여행은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경이로운 세계로 옮겨가고자하는 갈망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했고

 

알베르 까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는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여행의 시작은 어느날 아침 난롯가에 앉아서 누군가의 소설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치솟아오른 욕구로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또는 어느날 오후에 펼쳐본 신문사이에 끼워진 여행사 광고지의 작은 팜플렛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광고지의 그림들은 분명 실제의 모습과는 다른 이미지일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이런 사진에 현혹된다.

 

나 역시 2년전 여름에 어느 여행사에서 올려놓은 이미지 사진에 현혹되어 내몽고 여행을 선택했다가

실제 여행지의 비루함과 조잡함, 코스의 권태로움, 비위생적 숙소 등으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함께 간 일행이라도 있다치면

서로 잘 맞지 않은 소통체제로 인하여 서로의 눈치를 보다못해 남은 여정은 엉망이 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여행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한다. 특히, 외로운 사람들은 여행을 한다.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고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우리가 차를 몰고 가야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

또는 낯선 도시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외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내 외로움이 치유받기도 한다.

 

내가 해외여행을 떠나면 내 주변의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많다"고..

그렇지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나라의 풍경은 나의 새로움에 대한 욕구나 갈망을 채워주질 못한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고향에서 충족하지 못한 새로운 것 즉, 이국적인 것을 갈망한다.

그래서 서양인은 동양을 갈망하고

동양인은 서양을 갈망한다. 이것은 애국심과는 전혀 다른 심리적 현상이다.

 

여행에는 구경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 있는가하면

사실을 찾아나서는 여행이 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이는 자연과 풍경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어떤 여행이든간에

여행은 나의 '삶을 고양하는 것'이어야 한다.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든, 알았던 사실을 재확인하든

아니면 태고의 웅장하고 거대한 풍경과 삭막한 사막풍경으로부터 인간의 왜소함을 경험하든

아니면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으로부터 도시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받고

스스로 자연성으로 돌아가도록 자극받든..

그렇게 여행은 나의 삶을 고양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장 좋지 못한 여행은 여행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때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행지에서 경험하게 되는 새로운 정보들은 꿰어지지 않은 구슬이 되어서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여행에서도 적용이 된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 많은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고, 기억하고 싶은 곳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순간의 경험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한다.

 

요즘의 대부분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가 없었던 옛날 사람들 중에는 자기 이름을 주변에다 새겨놓기도 하였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몽트뢰성 지하 기둥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도 하였다.

중국에 가면 온 돌산에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그 기념물의 일부가 되어 불멸의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그 외 좀 더 온건한 방법은 기념품을 사는 방법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19세기 영국의 사상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존 러스킨이 제안하는 것처럼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글을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존 러스킨은 그의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는데

그것은 그림기법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보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스킨은 사람들이 여행의 세부사항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고민했단다.

특히,

근대의 여행자들이 기차를 타고 일주일만에 유럽을 다 둘러보는 단체여행자들의 맹목과 성급함을 개탄해마지 않았다는데..

이미 150년전에 그런 단체 여행이 있어다는 점도 재미있지만

150년 인간들의 여행행태였던 맹목과 성급함이 지금까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아뭏든, 풍경의 진정한 소유는 그 요소들을 살펴보고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에 달려있다고 볼 때,

카메라는 보는 것과 살피는 것 사이의 구별, 보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구별을 흐려버리는 한계가 있지만,

스케치는 그 대상에 대해서 끝없는 질문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상을 의도적으로 파악하게 한다.

"줄기가 뿌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안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 나무는 왜 이 나무보다 색깔이 짙을까?" 등등..

 

이 책에서는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대상을 의도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스케치를 하도록 권할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것은 '말로 그리는 "말 그림"이다.

 

러스킨의 말대로 하자면

현대인들이 하고 있는 여행블로깅은 우리의 경험을 "말로 그리는" 좋은 장치가 되겠다

단,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는

좀 더 충분한 질문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알랭 드 보통이 여행에 대해 했던 말들은

마지막으로 "따분한 일상"과 "경이로운 세계"사이의 관계속에서 정리된다.  

알렉산드 훔 볼트는 "따분한 일상생활에서 경이로운 세계로 옮겨가고자하는 불확실한 갈망에 자극받은 행위"를

여행이라 하여, 두 세계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으려 하였는가하면

주로 자신의 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니체는

"어떤 사람은 하잖고 일상적인 자신의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1년에 3번 열매맺게 한다"하여

일상속에서 경이로움이 있고, 경이로움 속에 일상이 있다고 본다.

 

일상과 경이의 세계를 이분화해서 보든 아니면 일체로 보든

여행에서 중요한 심리적 요소는 수용성과 감수성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현재를 떠나지 않으면 나는 모든 인문학적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의무적으로 길을 떠나려하던 사람들에게

먼곳으로의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주변의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들을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것'도 여행임을

다시한번  강조하며 먼곳으로 떠나기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보라고 슬그머니 권할수도 있겠다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