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주동안 마음이 많이 복잡하였다.
딸은 딸대로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돌아앉아 있고..
엄마는 엄마대로 마음이 상해서 말끝마다 퉁명스럽고..
나는 나대로 주변의 많은 상황들이 짜증스럽고..
이런 저런 것들이 뒤죽박죽 엉키어 마음속에 상대를 이해할만한 여유공간하나없이 속이 밴댕이 속알딱지만한해 졌다.
심장에 바람을 한번 쐬어주어야 숨을 쉴 것 같아 무작정 차를 몰고 나가본다.
나서긴 했건만, 목적지가 뚜렷하질 않다.
속으로 궁시렁거린다.
'도대체 경남 인근에는 갈만한 곳이 없어~'
그러면서 무작정 동해쪽으로 달린다.
가다가 운전이 지겨워질 때 쯤, 때맞춰 내 눈에 들어와주는 출구 표시판 '통도사'~
'그래 저것이다. 통도사에 가서 부처님잡고 올해에는 비뚤어진 마음 바로 잡고 가족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나 하자~'하고는 바로 통도사 출구로 빠져나온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와본 것이 10년은 족히 되었을만큼 오랜만이다.
매표소에서 입장료와 주차표 합하여 5,000원을 지불하고는 주차장까지 달리는데
내가 왜 진즉 이곳을 와 볼 생각을 안했을까..하는 뒤늦은 회한(?)까지는 아니지만 여하튼..
매표소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도열된 잘 가꾸어진 소나무 가로수 터널은 정말 속이 시원할 만큼 청정하다.
게다가 통도사 소나무는 수종도 남다르다.
이태리에서 로마대로를 따라 심어져 있는 소나무를 보고는 '그놈 참 기상이 늠늠하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는데..
오늘 통도사의 소나무와 비교하니 그것은 게임도 안된다.
통도사의 소나무는 기골이 장대하고 기상이 늠늠할 뿐만 아니라 그 윤택함에 있어 귀티가 흐른다.
소나무 터널을 통과하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위에서 영축산 일주문을 바라보는 순간 짧은 감탄사가 와~
비록, 영취산 기슭에서 내려오는 계곡은 몇십년만의 혹한으로 얼어있고, 나이많은 벚나무들은 한 겨울의 물기잃은 모습으로 거뭇하게 서 있다하더라도 세월의 풍파속에서 자신을 다져온 그 연륜이야 어떻게 감출 수 있겠나..
오랜만이라 그런지 감회에 더하여 기대이상의 비쥬얼에 감동까지..
주차장에서 건너오는 다리위에서 바라 마주보는 곳에 진한 쪽색지붕의 '성보박물관'이 아름드리 나무들과 잘 어울리고..
박물관 관람은 아무래도 다음에 따로 시간을 한번 내어야 할 듯..선화 전시회도 있고..
아래쪽으로 눈을 돌리니..스님들이 어디 마실 다녀오시나보다.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젊은 스님들의 발걸음은 활기차고,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주변의 기운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역시, 인간의 기운은 전염되는 것이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향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하지만, 늘 마음뿐이고..
위쪽으로 통도사 첫 출입구인 '일주문'위에 '영축산 통도사'현판이 걸려있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절로서
가야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중 하나이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는 법보사찰, 보조국사 이래로 열여섯명의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승보사찰, 그리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통도사는 불보 사찰이다.
'通道寺'는, 이 절이 위치한 영축산의 모습이 마치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고 많은 중생을 구제하였던 인도 영축산의 산세와 닮았다하여 서로 통할 通자를 써서 통도사(通道寺)라 부르게 되었단다.
기상대에서는 연일 몇 십년만의 혹한이 왔다고 떠들고, 카메라를 쥐고 있는 내 손은 꽁꽁 얼어붙어 있어도
부처님의 자비로운 도량이어서 그런지 그닥 추운 느낌이 없다.
오늘, 오랜만에 들러서 그런지 상당히 감회가 새롭고..
이전에는 근성근성 다녔던 곳이지만 오늘따라 모든 것이 낯설어보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내 시야로 들어온다.
인식의 변화인가..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종교를 초월하여 어떤 영적 기운을 느끼곤 하였는데,
그 기운은 가볍기 보다는 무거운 쪽에 속했다.
같은 수도원의 일종이지만 오늘 통도사에서 느끼는 기운은
맑고 향그러운 신성함 같은 거 또는 날아오르는 비상감같은 거라고나 할까..
더불어, 우리의 절간이 많이 활발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고 나니 '천왕문'에 이른다.
이곳에는 천상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산다는 4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 천왕문을 세우는 까닭은 이들이 사찰을 지킨다는 뜻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출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4대수호신들이 절안의 모든 악귀를 물리쳐서 이 곳은 맑고 깨끗하고 신성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도 있단다.
그리고 통도사 천왕문은 통도사 전체의 대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통도사 경내 3개 영역중 가장 하위영역인 하로전(下爐殿)의 출입문에
속하기도 한다.
천왕문 내에 하로전, 불이문 안에 중로전, 대웅전위쪽으로 상로전..통도사는 이렇게 물리적으로 공간분리가 되어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론 '범종루'가 있고, 오른편으로는 석가, 아미타, 약사 3 여래에 대한 불전이 모셔져 있다.
하로전 지역을 들어섰을 때, 영산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약사전'이, 왼쪽으로 '극락보전'이, 그리고 중간에 '삼층석탑'이 위치해 있다.
'영산전'의 영산은 영축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셨던 불교의 성지로서
석가모니의 불국토를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이 전각은 하로전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전각이다.
그런가하면, '약사전'은 약사불의 동방정토를 상징하고 있고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극락전'은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를 상징하고 있다.
이렇듯이, 하로전 영역은 불국토를 상징하는 정토신앙의 전각들로 구성되어 있는 구역이란다. 이런 지식을 약간 알고보니 또한 새롭게 보인다.
종교적 의미야 어떠하든
사실 이순간 나에게는 건물들의 미학적 구성에 더 관심이 많다. 그냥 아름답다. 마음이 깨끗하다. 차분해진다.
우리나라 기왓집이 직선구조인줄 알았었는데,
지금보니 처마끝이 저렇게 절묘하게 궁글려져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고..
그리고 처마 아래쪽의 뱃살부분(내가 지어낸 용어)이 저렇게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볼륨감있게 처리되어있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된다.
'약사전' 뒷 전경..아마도 스님들의 사적 공간인가.. 워낙 전각들이 많으므로..
사실, 통도사내에는 국보 제 2990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고려말의 건물들인 대광명전, 영산전, 극락보전 등 12개의 법당과
감로당과 비각, 천왕문, 불이문, 일주문, 범종각 등 65동 580여 칸의 부속건물을 포함하고 있단다.
그러니, 어디가 어디인지를 다 알 수가 없고..
그냥 눈 가는 곳 마다 아름다워서 외마디 감탄사만을 연발할 뿐이다.
이런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은 일본의 곧은 일자형 또는 곧은 ㄷ자형 건축양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본 일본의 건축양식은 계획된 설계도 위에서 작업이 진행되어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으며, 하나의 큰 건물안에 모든 기능적 공간들이 물리적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 건축 양식은 한 공간안에 여러개 건물들이 배치되어서 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형태이다. 어째보면 무계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총체적 아름다움이 있다.
하로전에서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하여 중로전으로 들어선다.
'불이문'은 일반적으로 중생의 세계에서 수행의 세계로 들어서는 마지막 문을 일컫는단다.
'불이문'의 '不二'는 생과 사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 선과 불선 등 모든 상대적인 것들이 둘이 아닌 경지를 말한단다.
즉, '진리의 법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이 문을 통과하여 불이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면 부처가 되고 해탈을 이룬다하며 해탈문이라고도 하고..
그럼, 나도 이 문을 통과했으니 오늘 해탈한 건가..
문제는 여전히 좋고 /싫고가 분명하니 해탈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고..
중로전 지역은 5층 석탑 바로 앞에 '관음전', 그 뒤편으로 미륵불을 모시고 있는 '용화전, 그리고 제일뒤편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명전'이 일직선으로 구성되어 형성되어 있다.
중로전이니 하로전보다는 부처님께 좀 더 가까운 영역이겠지;..
3층석탑을 중심으로 배열된 중로전의 모습이 깔끔하다.
중로전에서 용화전 옆으로 뭔가 조그만 사당같은 건물이 있다. '개산조당'이라는 현판을 보니 3개의 문을 가지 솟을 대문형태인데,
지붕 부분의 목각처리가 너무 아름답다. 그 뒤로 '해상보각'이라는 조그만 전각이 있는데, 알아보니 자장율사의 영정과 고려대장경 1234권이 보관되어 있는 사당이란다.
중로전에서 바로 연결되는 대웅전..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있는 이 지점부터 경내의 상로전(上爐殿)에 속하는 구역이라니, 최고 높은 경지의 영역이겠지..
통도사의 대웅전은 다른 사찰의 대웅전과는 다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단다.
다른 점이라 함은, 통도사 대웅전에는 정면이 없다는 것이다. 4면이 모두 정면이다. 그래서, 모든 면에 현판이 붙어있다.
금강 계단을 향해서 봤을 때 모,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을..
'대웅전'은 석가모니 세존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며,' 대방광전'은 진리의 몸인 법신불이 상주하는 화엄의 근본 도량이라는 뜻이며,
'금강계단'은 깨뜨릴 수 없는 금강과 같은 계율의 근본 도량이라는 뜻에서, 그리고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건물과 건물간에 이어지는 선의 흐름에 감탄한다.
절단 된 선과 선에 의해서 분할된 공간적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처마밑 뱃살부분의 불륨깊은 목각의 향연에 감탄한다.
그리고, 건물과 주변 자연, 그리고 석등 등과 같은 소품들의 조화에도..
그 어우러짐이 그저 부럽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서로 해하지 않고, 서로 어우러진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
늘 함께 어우러지는 에너지의 부족함을 느끼는 나는 그저 저런 조화로움이 부러울 따름이다.
대웅전 뒤편 금강계단으로 올라가 본다.
대웅전 뒤편의 탁 트인 언덕아래 조성된 계단 중앙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사리탑이 있다.
사진에서는 석등에 가려져 보이질 않으나..
대웅전에서 불상을 경배하던 사람들이 통도사에서는 금강계단에서 탑돌이를 하면서 부처님께 경배한다.
통도사에는 대웅전내에 부처님이 없다.
대신, 텅빈 불단 뒤로 큰 창이 나 있고, 그 창을 통하여 이 금강계단이 보이도록 되어 있다
다른 사찰의 대웅전과 달리 통도사 대웅전에서는 불상 대신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경배한다.
그래서 통도사 대웅전을 '적멸보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으므로..,
탑돌이하는 사람들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소원 몇개를 얼른 풀어놓는다. 내가 봐도 무성의한 기도를 부처님이 알아들어셨는지 의문스럽긴 하지만..그래도 부처님이시니까 알아들어시겠지 뭐..
돌부처님께 와서 엎드려 기도하고 탑돌이한다해서 밴댕이 속알딱지만한 속아지가 좀 넓어지지는 않겠지만..
국내 최대의 청정도량에서 부처님의 정기를 받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개운해진 것 같기도 하고..
..
사실은 오랜만에 들러게 된 통도사..기도하러 갔다가 문화재만 보고 온 느낌이랄가.
어쨋든 이번에 통도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풍경으로 보자면, 지금은 겨울이라 주변이 좀 황량한 느낌이 들 수는 있겠지만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추위같은 것으로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히려 가람의 전체적인 뼈대를 오롯이 알아채기에는 앙상한 겨울이 더 이로울 수 있겠다는..
유럽에 나가보면 널리고 널린 것이 프레스코화로 치장된 중세 교회들이었고,
개인적으로 그런 문화유산들을 가진 나라들이 참 많이 부러웠었는데..
이제 그들이 부럽지 않다는 느낌이랄까..
그들에게 프레스코화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단청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도 단청 물감 벗겨진 중세의 절이 있다~ 라고 자랑하고싶은..ㅎ
(근데.. 확실히 량으로는 밀린다... 그래도 일당 백이다 뭐~)
ㅎ..
오늘 본 영화마지막 대사에 이런 말이 나왔다.
'세상일은 기대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얼마나 좋은가..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새해에는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일이 일어나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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