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레 22에서 사진전을 관람하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주말 오후가 너무 아깝다.
날씨는 흐릿흐릿하나 바람은 푸근하니 영락없는 봄바람이다.
이미 봄바람의 맛을 보았으니 이 맛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목적지를 임랑해수욕장으로 두고는 곧장 올라가본다.
중간중간에 대변항과 좌천역을 거쳤다.
오랜만에 들러본 대변항은 주말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여느때없이 붐빈다. 항구가 상당히 번화해진 느낌이다.
노점에는 요즘의 제철 어종인 가자미와 멸치 그리고 조기들이 주류로 거래되고 있고
옆옆에는 대변항의 특산물 미역과 다시마 그리고 봄철 생멸치 젓갈로 고객을 부르고 있다.
그들의 영업전략은 얼마나 재빠른지 기웃거리는 손님을 놓치는 법이 없다.
나 역시 기웃거리다가 여측없이 잡혔다.
젊은 아낙이 얼마나 센스가 좋은지
내가 뭘 원하는지를 한 눈에 꿰고는 물어보지도 않고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척 제공하더니
어어~ 하는 사이 이미 참가자미 한 손이 봉지안에 들어가 있다.
어쩔 수 없지 뭐~ㅎ
어차피 냉장고도 비어 있는데..
못이기는체 하고 한 봉지 손에 들고 나오자 옆에 앉아있던 미역 꾸다리 아줌마도
얼른 미역귀 한 접시를 봉지에 털어넣더니 내 손에 쥐어준다. 또 거절할 틈도 없이 얼결에 비닐 봉지 두개를 손에 들고 얼른 빠져 나온다.
오랜만에 들런 항구는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사람과 선박과 바다새들로 북적거린다.
생명감을 느낀다.
잠시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바람이 너무 차서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임랑해수욕장 들어가기 직전에 좌천역이 있어서 들러본다.
최근에 시대물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귀한 역사이다.
동해남부선의 아담한 간이역인 좌천역은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에 위치해 있으며
1934년 12월 16일에 영업을 시작한 나름 보존의 가치가 있는 근대유산중 한곳이다.
지붕 뒷편으로 솟아오른 오래된 은행나무와 향나무가 역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오래되었으나 그동안의 리모델링과 관리등으로 외형은 아주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
현재는 무궁화호 열차만 정차하는 작은 간이역지만
주말이면 인근에 있는 산을 등반하는 등산객들로 이용량이 200명정도에 이르는 인기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정면에서 보는 모습도 아담하고 정갈하지만
역사 오른편의 민간가옥 마당에서 뻗어져 나온 몇백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벚꽃나무 가지사이로 바라보는 좌천역의 역사는
더욱 운치있고 로맨틱하다.
벚꽃잎 흩날릴 때쯤 오면
아마도 내가 영화속의 주인공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을까 착각할만한 풍경이다.
이미 둥걸은 너무 노쇄해서 혼자 서지 못하고 땅바닥에 아예 드러누워버렸다. 그것도 살집이 모두 헤져서..
그래도 생명은 살아있어서 잔가지는 무성하여 하늘을 뒤덮고..
그 가지끝에 열린 봉오리들은 이미 불긋불긋 터질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봉오리들이 터져서 아우성칠때쯤 한번 더 올 수 있기를 바란다.
좌천역에서 직진하여 5분여정도 가니 임랑 해수욕장 나타난다.
해수욕장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마을 어귀에 서본다.
'임랑 아름마을'
임랑해수욕장은 기장 팔경 중 한곳으로 꼽힐만큼 아름다운 마을이란다.
'임랑'이라는 이름도 아름다운 송림(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浪)에서 운을 따서 지어질만큼
그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란다.
내 어릴적, 송정, 일광, 월내 해수욕장은 자주 왔다갔다하고 회자되었어도
임랑해수욕장은 들은 적이 없을만큼 조용한 동네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는 마을인듯 하다.
나 역시 이번에야 처음으로 알게 된 마을이다.
마을은 과거에는 작은 어촌이었겠지만 최근에는 한여름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오래된 낡은 콘크리트 벽은 알록달록 파스텔톤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서 벽화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이동네는 돌출된 간판이 없다.
메다는 간판대신 벽에 간판을 그린다.
그것도 괜찮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개성있는 간판들이다.
벽화들을 하나씩 구경하고 감상하며 마을의 보도를 따라걸어가니 눈에 익은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다.
7080가수 정훈희..그이가 기장에 산단 말은 들었어도 이 동네에 사는줄은 몰랐다.
조그만 민박들 사이에 눈에 뜨이는 지중해식 펜션 '꽃밭에서'
까페도 함께..
뜰안을 들여다보니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제법 많다. 일삼아 찾아오는 팬들도 많은듯하다.
이런 삶도 괜찮겠다.
데크길 아래쪽으로는 바로 해변이다.
바다새들이 어디론가 몰려간다.
누군가가 과자봉지를 풀었나보다.
열심히 먹더니..
다 먹고 나니 또 어디론가들 무리지어 날아간다.
또 다시 저들은 어디로 가는걸까..?
그러고는 바다를 벗어났는데..
아니!!
해변에서 날아간 새들이 모두 이 집 지붕위에 와서 앉아있다.
지붕위에, 처마위에, 매화나무 가지위에, 담장위에..
온통 새들로 가득차 있다.
아니 이 녀석들이 왜 모두들 이집으로 다 날아와서 앉아있는 거야~?
하곤 가만히 올려다보니
이건 바닷가에서 보았던 그 새들이 아니라 조개껍질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재주를 가졌길래
조개껍질로 저렇게 멋진 새들을 만들어 내었을까..그리고 그 취미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자신이 만든 작품들로 온 집을 저렇게 장식을 할 정도일까..?
과연 이런집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그리고 내부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주인장의 허락을 받아서 안으로 들어가본다.
주인장은 자연을 참 사랑하는 성향의 소유자인듯 하다.
정원에 심어진 나무들도 일반인들의 개성없는 조경과는 다소 다르다.
매화, 진달래, 수선화 등..
우리나라의 자생적인 수종들로 꾸며져 있는 걸로봐서 자연과 예술영역에 상당히 조예가 있으신 분 같으다.
마침 안주인이 쓰레기를 비우러 나오길래 물어본다.
작품들은 어떤 연유로 만드는 것인지..
그녀는 그닥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그냥 취미로 만드는 것뿐이라고..
아마도 바깥양반의 취미인 모양이다.
..
취미라는 말씀에 딱히 더 물을 말은 없다.
그냥 대단한 취미활동을 하신다는 생각외에는..
바깥으로 나와서 다시한번 멀리서 감상한다.
바다새에 두루미에 닭에..
날개달린 놈들은 다 올라 앉았다.
아무래도 임랑해수욕장 바다새들이 모두 이리로 다 몰려와있는 것 같다.
지중해 풍의 하얀지붕위에 하얀새들이 아름다운 집 마당에
춘란이 마치 날개짓하는 새의 모습으로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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