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단공원 관광을 마친 후, 우리는 '홍교짝퉁시장'으로 갑니다.
기대가 만발합니다. 얼마나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을지..
이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베이징에 왔을 때 들렀던 시장이라 하여 그 이름을 더 죄책감없이 만방에 드 높이고 있네요
근데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현재 4시가 넘었는데, 정문앞에서 5시에 보자네요
급하게 시장안으로 들어갑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층무시, 2층 무시, 3층 진주마켓으로 고고씽합니다.
마켓 이름이 뭡니까? 펄 마켓이잖아요~
즉, 진주가 메인이라는 거죠
저는 악세사리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싸다하니 중국산 진주하나 걸어볼까하고 내심 기대합니다.
근데 저는 진주를 잘 보지 못하므로 함께 가신 지나씨(가명)의 도움을 받기로 합니다.
그이는 평소에 진주를 좋아해서 국내에서도 진주를 많이 산다하니 최소한 품질은 속지않을 거 같습니다.
그이 도움을 받아 내친김에 3종류나 샀습니다. 그이도 함께..
퀄리티 수준이 같다고 봤을 때 그래도 국내보다 조금은 싸다고 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같은 가격이라도 외국서 사면 기념품이 되잖아요~^^
두사람이 진주 흥정하니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정신 차려보니 벌써 5시가 넘었네요
후다닥 숨가쁘게 약속장소로 뛰어갔더니 다른 이들은 볼게 없어 벌써 와 있었다네요~미안미안
5시가 넘으니 거리엔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하나둘 네온싸인이 켜지기 시작하네요~
우릴 버스를 태우더니 어디론가 데리고 갑니다. '전문' 근처인가 봅니다.
그곳서 도로를 건너더니 뒷골목 비슷한곳으로 우릴 끌고 갑니다.
아무 생각없이 쫄레쫄레 따라갑니다.
그저 이국의 밤거리를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니는 그 자체가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매시가'를 따라 내려온듯합니다
그리고 '대책란 상업가' 서쪽 입구에 섰습니다.
서쪽입구에서 동쪽으로 내려가서 '전문대가'로 들어갈 것입니다.
'대책란(大柵欄)'거리는 명.청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아직도 그 본점들이 남아있는 유서깊은 상업거리랍니다.
즉, 중국의 상업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그 발원지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의미는 1-200년된 건물에 그 유서깊은 본점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인데..
아마도 현대에 와서 어느정도 리모델링 된 부분은 있겠지만요, 의미있습니다.
의미도 모르고 밤이기도 하고 해서
성의있는 사진이 없습니다.
단지, 훗날의 기억을 돕기 위하여 찍어둔 사진 몇장을 근거로 그날 밤 그곳에서 보았던 짧은 일정을 상기시켜봅니다.
대책란 상가의 메인도로는 매시가에서 전문대로로 연결되는 동서로 뻗어 있습니다.
마치 서울 명동의 거리처럼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을 가득 매우고 있습니다.
복잡한 도로 양옆으로 고대광실같은 건물에 자신들만의 독특한 상품과 전략과 전통으로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습니다.
이 거리에 있는 가게들은 모두 나름의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집들입니다만
제 스스로가 의미를 모르니 그냥 지나친곳들이지요.
기억나는 몇 곳만 스킾해봅니다.
서태후가 좋아했다는 만두가게 '쿠부리'라는 만두가게가 있구요
그 건너편으로 유명한 '동인당'한약방, '장일원(張一元)'이라는 찻집, 중국최초의 영화관, 100년전의 그 건물에서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는 치파오 전문매장,
등등 북경 최초의 가게들이 건재해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에서 사는 물건들은 모두 조심하라고들 하지만
대책란의 이런 정통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은 무조건 믿고 사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메인도로의 모랭이를 돌아서 들어서는 뒷골목에 있는 이런 가게들의 물건들은 모르겠습니다. 믿어도 되는지..
이 거리 역시 시간이 없어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지만, 오히려 들여다보는 재미는 이런 곳이 더 좋지요.
우리는 부족한 시간으로 그리고 부족한 정보로 인하여 재미있는 곳들을 모두 놓쳤습니다. 다음에 정말 따로이 시간을 한번 내어야 할 듯합니다.
드디어 대책란의 서쪽입구에서 출발하여 동쪽 출구로 나왔습니다.
'따스란 즉, 대책란'은 '큰 바리게이트'라는 뜻이라는데..
명청시대 베이징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후통(즉, 뒷골목을 의미한답니다)에서 메인도로로 연결되는 길 입구들을 모두 바리게이트로 막아두었다는데
특히, 전문대로변을 중심으로 명문대가들이 많이 모여살았던 이 지역에는 후통의 상민들로부터 약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유독 큰 울타리를 쳤다고 해서 이 거리를 '대책란'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아픈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거리입니다.
'대책란'을 벗어나 화려한 '전문대로'를 타고 '정양문'쪽으로 올라갑니다.
전문대로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거리입니다만
얼마전에 새로이 리모델링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문화적 뼈대는 살리면서 신세대를 아울러가는 문화의 중심거리로 부활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곳에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스타박스나 자라, 롤렉스 등과 같은 현대적 브랜드와
도일처, 전취덕 등과 같은 오래된 가게들이 병행하고 있습니다.
트램이 끊어진 넓은 전문대로를 관광객과 그들을 호객하는 야간 불놀이 게임 장사꾼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정양문 전루'에서 이어지는 전문대로의 활기는 1780년에 건륭제의 만세절에 참여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절단을 따라오면서
느낀 여행기를 통해 북경의 인상을 적어놓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년이 넘은 그 당시의 '북경 도성도'에도 전문대로에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베이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모양입니다.
아뭏든,
오고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끌벅적 사람들을 유인하는 장사꾼들의 묘기를 구경하면서 살살 올라가니 '정양문 전루'앞에 도착합니다.
전루를 통과하니 라이터업된 '정양문'이 3층 누각으로 우뚝 솟아있습니다.
고성이 북쪽에 위치해 있다보니, 명청대 황제들이 성밖 행차를 하고자 할 때는 주로 북경의 남쪽문인 이 '정양문'으로 행차하셨다 합니다.
정양문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서 올라다보니
정양문은 마치 큰 요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그 성벽 아래쪽에는 여전히 삶의 빛이 보이지 않는 가난한 악인(樂人)이 혼자서 서글픈 리듬을 켜고 있습니다.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봅니다.
우리는 걸어서 천안문 쪽으로 올라가서 과거 왕족들이 살았다는' 왕부정' 거리로 갈 겁니다. 왕부정 거리는 고궁 바로 옆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업거리만큼 휘황찬란하지만
우리나라 상업건물들을 끼고 있는 지역들보다 넓은 도로를 끼고 있습니다.
왕부정 거리 입구에 있는 '동래순'이라 하는 샤브샤브 식당 입니다.
이곳도 역사가 100년이 넘은 베이징에서 가장 맛있고 유서깊은 샤브샤브 집이라는데, 한번 들어가볼까요
자리가 나지않아 한 30여분 대기실에서 대기했습니다.
기다리니 자리났다고 안내합니다. 안채쪽으로 안내해줍니다.
건물이 오래된 전통가옥형태입니다.
화로에서 육수가 보기에도 푸짐하게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맛있겠죠~^^
기대 만땅입니다. 하지만 육수가 끓는 순간부터 저는 힘들기 시작합니다
이날 저녁 저는 좀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 샤부샤부는 제 취향은 아닌듯합니다. 그 독특한 냄새를 도저히 모른채하고 먹어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색은 못하고 이래저래 핑계를 대고 앉아 있습니다. 속으로 나가서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 머..하고 말예요.
그러나 그 기대조차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ㅠ.ㅠ
이래 저래 오늘 저녁은 눈요기만 다양하게 했습니당~
기록을 하면서 참고삼아 비교하고 있는 연암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살펴보니
230년전 연암이 처음 베이징에 들어와서 느꼈던 인상과 제가 처음 베이징에 들어가서 느꼈던 인상에 큰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볼거리들에 있어서도 그 당시 연암이 보았던 것과 현재 제가 보고 있는 것간에도 큰 차이가 없어보이구요~
즉. 현재의 베이징은 몇 백년전 베이징을 골격으로 하여 그것에다 시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덧입혀가면서
발전해가는 것 같습니다.좋은 전략입니다.
단, 연암이 본 것 중 제가 못 본것 하나. '류리창'
연암이 베이징에 가서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곳이 '류리창'이었습니다.
1780년 음력 8월 1일, 연암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경이라는 대국의 수도에 도착하여
발 닫는 곳곳에서 문화적 충격을 느낍니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유리창'은 온통 책방과 문방사우를 취급하는 문화의 거리였습니다.
원래는 유리기와를 만들던 가마가 있었던 골목이어서 '유리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연암이 방문하기 이전시대의 모습이었나 봅니다.
'수레를 몰아 정양문을 나와 유리창을 지나면서 어떤 이에게 물었다.
"유리창은 모두 몇 칸이나 됩니까?"
"모두 27만 칸입니다"
정양문에서 가로로 뻗어 선무문에 이르기까지의 다섯거리가 모두 유리창이다.
국내외의 진기한 물건들이 모두 모여드는 곳이다."
나는 한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댄 채 탄식하였다.
나도 그곳에 가면 그와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만약 한번 더 기회가 생긴다면..아니 한번 더 기회를 만들어 반드시 유리창을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연암이 그렇게 부러워하고 탄식했던 그 유리창이 내가 가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인줄 알았더니..
내가 다녀온 '따스랄'에서 서쪽으로 불과 한 블럭 건너편에 있었더군요. 많이 아쉽습니다만 담에 한번더 가야할 구실이 생겨 나쁘진 않습니다.
어차피 첫술에 배부르진 않으니까요. 이번 여행은 북경알아보기 워밍업이었다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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