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6. 월요일 날씨: 여전히 눈
아침에 눈을 뜨니,
밤새 도둑눈이 내려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다.
이 아름다운 곳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아침 일찍 떠나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오늘은 또 호즈가와 뱃놀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정도 아쉬움은 괜찮아~
이 겨울에 웬 뱃놀이냐구?
괜찮아~
따뜻한 고타츠 아래에 다리를 묻고 얼굴은 호즈가와 강변의 눈바람에 맡기고
마치 배 위에서 즐기는 노천탕의 느낌이랄까
천지는 하얀 눈으로 수목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 그림 속에서 유유자적 일엽편주라~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아~?
그렇게 떠들썩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비보한장 날아든다.
뭐?
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뱃놀이를 못한단다.
.
.
원래 오늘 일정은 카메오카에서 아라시야마쪽으로 흐르는 호즈가와(保津川)에서 배를 타고 설경을 즐기면서
아라시야마까지 내려갈 계획이었다.
카메오카에서 아라시야마까지는 토롯도열차가 운행되는 구간이다.
보통 교토에서 바로 아라시야마로 가는 경우, 사가노토롯도열차를 타고 가메오카역까지 왔다가
다시 카메오카에서는 호즈가와 뱃놀이를 하면서 다시 아라시야마로 돌아가는 루트를 대부분 권장한다.
우리는 한쪽 코스만 이용하기 위하여 미리 카메오카(龜岡)로 들어와서 숙박을 하고는 바로
호즈가와에서 배를 이용하여 아라시야마로 내려가는 전략을 선택하였던 것이었다.
때마침 눈까지 와 주니,
카메오카에서 아라시야마까지 약 1시간 30분정도 선상유람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아~ 아쉽다.
시간이 변경되면서 아침시간의 여유를 가져본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가족사진, 우정사진, 독사진..
사진이란 사진은 다 찍고..
어쩔 수 없이 버스로 아라시야마까지 가기로 한다.
뱃놀이의 기회를 놓친 아쉬움은 우리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늘 우리를 태우고 노를 저어주기로 했던 뱃사공은 호즈가와에서 거의 40년을 노를 저은 분이신데
아침에 가이드를 통해서 전갈을 보내 온 내용인즉,
한국에서 오신 손님을 맞이하게 될 기쁨에 잔뜩 마음이 부풀어 있었는데
33년만의 폭설로 인하여 도저히 손님을 모실 수 없게 되어서 너무나 아쉽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라도 반드시 호즈가와에 한번 더 왕림해주셔서
여러분들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주시면 좋겠다는 희망사항까지 덧붙여서
그 말을 꼭 손님들에게 전달해달라고 연락해왔단다.
우리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기후문제로 운영중단, 끝'
..혹 그러지 않았을까?
나는 매사에 사소한 부분까지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하고 해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본사람들의 이런 행위를 보면
가끔은.. 이거뭐지? 이 사람들 진심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가
그들의 표정을 보면 그 또한 거짓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겸허해진다.
설사 그것이 거짓이면 어때?
철학이 행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곧 철학인 것을.
아뭏든
그렇게까지 양해를 구하면서 아쉬워하는데
'아~뭥미?'하고 원망을 할 수는 없고
'아~예' 하고는 순순히 눈 앞에 놓은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로 가는 대신 버스로 아라시야마로 향한다.
가는 시간은 배나 버스나 비슷하게 걸린단다.
눈은 끝없이 내리고 있다.
눈은 무조건 진리다. 그것이 비록 폭설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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