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5. 일요일 날씨: 눈폭풍
물가가 상대적으로 싼 나라지역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에 교토로 향한다.
전날 도다이지에서 약간의 진눈깨비가 내리자 우리의 가이드 왈 '킨카쿠지에는 눈이 많이 온대요~'했다.
'눈이 온다고?
관서지역에 눈이 와봤자 얼마나 올거라고'
괜히 질척거리는 수준으로 오고 말거면 구경다니는데 불편하기만 할 텐데..
바람도 차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차를 타고 교토로 넘어가는데
버스 와이퍼가 버거울 정도로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불과 몇분만에 도로주변의 언덕이 하얗게 변한다.
교토로 들어가니 이미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버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니넨자카를 벗어나서 기요미즈데라로 올라가니
눈은 더 많은 량으로 시야를 가릴듯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날씨는 오히려 어제보다 포근했다.
눈으로 인해서 온 세상이 마치 솜이불을 덮은 듯한 느낌이다.
스산하고 바람만 삭막했던 어제와는 날씨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눈구경하기 어려운 경남에서 온 우리 일행들은 상당히 기분이 고조되었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서로의 운을 칭찬하면서 기요미즈데라로 오른다.
여기저기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소원들어준다는 관음수로 관불의식 대충 마치고
들어올리면 부자된다는 25키로짜리 쇠로 만든 석장한번 들어주시고
본당 테라스 부타이에서 인증샷하나 남겨주시고는
바로 오쿠노인 테라스로 향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페키지 여행의 패턴은 똑 같다.
나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제한된 시간안에 모든 용무를 끝내야 한다.
나는 이것저것 다 보고싶고
한가지 궁금증이 생기면(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그것이 해소될때까지 주변에서 뱅뱅거려야 하는데
페키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욕구의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다.
이번 기요미즈데라 방문의 제일 목적은 33년만에 한번 얼굴을 공개하는 천수 관음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모시고 있는 보문각의 전경을 조망하는 것이다.
지난번 왔을 때에는 본당 주변에서만 뱅뱅돌다가 정작 본당전경을 조망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보문각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장소는 본당 테라스 건너편인 오쿠노인의 테라스.
지슈진자에 들러서 좋은 인연을 빌어보라는 말도 귓등으로 흘리고는
얼른 오쿠노인 테라스로 향한다.
이 앞에 서는 순간 드디어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이것이 내가 교토에 온 이유이다.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나는 늘 청수사는 이런 모습이어야한다고 생각했었고,
이런 모습을 기대하면서 나는 교토행을 택했던 것이었다.
오늘, 내가 기대했었던 청수사의 모습을 아니 그 이상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제 교토에서 남은 미련은 크게 없다.
사쿠라꽃 휘날리는 봄날의 기요미즈데라..
홍엽 단풍으로 불타오르는 가을의 기요미즈데라..
그것도 좋지만
이제 오늘 하얀 백설에 뒤덮힌 순백의 기요미즈데라를 보니
지금으로서는 그 어느것도 부럽지 않다.
이제 느긋한 마음으로 청수사의 어원과 관련이 있는 장소로 이동을 한다.
청수사는 처음부터그렇게 큰 절이 아니었단다. 이렇게 확장하게 된 데는 전해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이 곳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었단다.
시가현에 있는 어느 스님이 꿈에서 관음사쪽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고는 이곳으로 올라오니
관음사근처 폭포(오타와폭포)아래서 수행하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큰 나무토막을 주길래
그것을 받아와서는 그것에다 관음보살을 조각하였단다.
그리하여 조각한 목조관음상을 모실 장소를 찾다가
신비의 물이 흐르는 장소를 발견하여 그 곳에 관음상을 모시게 된다.
당시, 사까노우에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는데
관음사 소문을 듣고는 임신중인 와이프의 순산을 빌기 위하여 절을 찾아왔다.
스님을 만나서는 찾아온 용건을 이야기하였더니 스님이 신비의 물을 주면서
아내에게 먹이라고 하였다. 그것을 먹은 아내는 건강한 애기를 순산하게 되었고
그 내용을 천황에게 했더니 관음사의 물이 그렇게 성스럽다하니 크게 확장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라하여
지금의 모습처럼 커졋고, 그런 이유로 해서 절의 이름도 맑은 물이 있는 절이라는 의미의 청수사가 되었단다.
그것이 778년, 아직 교토가 도읍이 되기 전의 일이다(제공: 우리가이드).
우리도 건강과 사랑과 학문을 이루게 해 준다는 그 신비의 물을 먹으러 간다.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는 오타와노타키의 세가닥 물줄기.
이번 여행운을 보면서
나는 나의 운을 믿고자 한다.
건강, 사랑, 학문. 모든 꿈을 그대 품에.
* 다무라마로 사카노우에 장군과 청수사에 얽힌 이야기는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에
좀 더 상세하고 정확하게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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