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책읽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노코미스 2008. 10. 12. 11:40

  

올 여름 지나면서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과 죽음, 결정적으로 최진실의 자살로 사람들은 우리사회 '베르테르'효과를 많이들 걱정했다.

10대 후반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 베르테르..

가을과 함께 어린시절 느꼈던 그 아픔과 슬픔을 다시 한번 느끼고파서 동네 책방을 찾았다.

 

  

 

 

 

30년이 지난후에 읽는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린시절 읽었던 느낌과는 매우 다른 관점에서 들어온다.

어린시절 이 책에 대한 나의 이해는 오로지 한 젊은이의 사랑의 고뇌와 열병에 맞추어져 있었다고 본다면,

40대에 읽는 이 책은 괴테라고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동관, 종교관, 자살관 등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괴테가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쉴러의 삶과 문학'이라는 책에서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아이들이랑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지, 쉴러가 창작활동을 할 때는 방해가 될 정도라고 기술하고 있을 정도이다.

베르테르는 곧잘 샤를로테의 어린동생들과 잘 놀아주는 것으로 나온다. 아마도 괴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동관에 대해 잠시 피력하고 있다.

 

사랑하는 빌헬름, 나는 이 세상에서 아이들이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중에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 온갖 미덕과 힘의 싹이 그 어린아이들에게서 보인다네.

고집스러운 태도에서는 미래의 확고한 성격이, 씩씩함에서는 세상의 위험을 헤치고 나갈 훌륭한 유머와 쾌할함이 보인다네.

그 모든 것이 손상되지 않은 채 고스란이 아이들 속에 들어있지.

나는 인류의 스승이 하신 황금같은 말을 되뇌곤 한다네. "너희가 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데 빌헬름, 우리는 우리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아이들, 우리와 동등한 아이들을 하인처럼 다루고 있네.....

중략...'하늘에 계신 하느님, 어른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아이들을 만들어가려 하지오' 

 

-본문 중에서-

 

아이처럼 마음이 여려서 그런가?

베르테르는 자살을 할 수 밖에 없는 심성을 타고 난 것 같다.

사회의 불의나 권위의 압제를 참아내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자신의 사랑을 희생하기에는 열정이 너무나 뜨거웠다.

 

최근 연예인 안재환, 최진실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왜 죽었을까?

악플이 죽였다. 몇년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해왔다.

그렇게 평소에 힘들어 해 왔으면, 그것을 지켜봐왔던 목회자는 무엇을 했는가?

과연 개인성도에게 종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등등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그러자, 어느 목회자는 성도가 주님이 주신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비난한다.

 

아래의 토론 부분은 이런 질문거리에 대한 괴테의 생각을 한번에 볼 수 있어 재미있다.

 

베르테르:우리 인간들은 좋은 날은 별로 없고 나쁜 날은 너무 많다고 불평들을 자주 하지요. 저는 그런 불평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부인: 하지만 기분은 마음대로 가지는 것이 아니지요

              몸에 많이 좌우되지요. 몸이 좋지 않으면 모든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요

베르테르: 그러면 그것을 병으로 간주하고 치료할 방법은 없을까요

샤를로테: 맞는 말이예요. 저는 최소한 많은 것들이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언가 화가나거나 기분이 나빠지려 하면 벌떡 일어나 마당에 나가 노래를 하거나 이리저리 춤을 추기도 해요. 그

              그러면 금새 그런 기분이 사라져버리죠

베르테르: 제가 하려던 말이 바로 그거예요

              나쁜 기분은 나태함과 같아요. 그것은 일종의 게으름이니까요. 우리의 본성은 그런 성향이 다분하죠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불쾌한 감정입니다. 그런 감정은 누구나 떨쳐버리고 싶지요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고, 건강을 되찾기 위하여 쓰디쓴 약도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악덕을 물리치라고 비난하는 설교는 많이 들었지만, 나쁜 기분을 물리치라고 하는 설교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목사  :     그런 설교는 도시의 목사들이나 해야지요.

              농부들은 유머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없다오. 이때금 햇살도 해롭지는 않겠군요. 

슈미터:    당신은 유머감각이 없는 것을 악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좀 심한 것 같군요

베르테르: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자기 주변과 주변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그건 악덕이라 불러 마땅하지요.

              우리가 서로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서 지킬 수 있는 기쁨까지 빼앗아야겠습니까?

              그리고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오히려 품위없는 자신에 대한 마음속의 불쾌감이 아닐까요?

              어리석은 허영심때문에 생겨난 질투심과 직결되는 자신에 대한 불만은 아닐까요?

              우리는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그들이 행복하면 참지 못하지요

              이 세상의 어떤 선물이나 호의도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순간을 대신할 순 없어요

              폭군처럼 질투에 찬 우리의 불쾌감이 그런순간을 망치고 말지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베르테르가 사랑의 열병으로 지쳐갈 무렵 ...

 

빌헬름, 내가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종교는 지친 사람들에게 지팡이가 되어주고 탈진한 사람들에게는 기력을 북돋워주는 활력제가 되기도 하지

그런데 한가지, 종교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그래야 할까?

.. 그리고 지금 나에게 종교가 지팡이나 활력제가 될 수 있을까?                   

 

빌헬름, 내 말을 곡해하지는 말아주게.

인간으로 태어난 하느님의 아들의 입술에도 이 잔(운명)이 너무 쓰다는데

왜 내가 대단한 척하며, 내입에 달다고 허세를 부리겠는가...

그리고 내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떨고 있는 이 순간에...

 

현대인의 병리학적 특성인 우울증, 그리고 그것의 발생원인 또는 예방법,

그리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개인에 대한 종교의 역할 등

이런 것들이 새삼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닌

인류의 원형적인 질문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하고 

200여년 전에 이미 이런 문제를 꾀뚫었던 괴테의 시대를 관통하는 혜안을 보면서

새삼스러이 '대문호'란 타이틀에 공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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