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책읽기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노코미스 2009. 5. 31. 09:05

 

  

 

 

더 리더는

열다섯살 가을에 시작하여 다음해 여름까지 일어난 한 소년의 믿을 수 없는

그리고 평생 지울수 없는 강력한 만남을 모티브로 하여 시대적, 역사적 그리고 철학적 화두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책이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더라면

영화가 더 쉽게 읽혔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책속에 들어있는 많은 화두와 주제들이 단순화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더 리더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후에 봤다.

 

영화는 놀라우리만큼 원작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인공이 기억하고 있는 한나의 모습들은

영화의 장면들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표정과 몸짓하나하나까지..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나 원저자의 세상을 보는 관점까지도 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감상기까지 쓴 상태에서,

같은 제목으로 굳이 책 독후감을 쓰겠다는 것은,

영화에서 읽히지 않았던 중요한 것들이 책속에서 좀 더 또렷하게 드러나므로

그것들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화두이므로..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이해하는 저자의 관점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관점을 철학자인 미하엘 아버지의 입을 통하여 단 몇 줄로 짧은 시간에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몇줄의 표현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큰 줄기이다

~~~~~~~ 

그는 내게 개인과 자유 그리고 품위에 대하여,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을 객체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 등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즉, 한나가 전범 재판소에서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재판을 받던 중, 다른 피의자들이 공모하여 한나가 모든 결정을 내리고 보고서를 쓰고 최종 싸인을 한 책임자라고 몰아붙일 때, 주인공은 글자를 쓰지 못하는 한나가 모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할 지 말아야할지 판단할 수 없을 때,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

"네가 어렸을 때 엄마가 너에게 무엇이 좋은지 너보다 잘 알고 있으면 네가 마구 화냈던 것 생간 안 나니?

.......이건 철학적인 문제야."  

".. 어른들은, 자신이 아이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해서는 절대 안돼"

 

"나중에 가서 그들이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경우에도 말인가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어. 넌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그 차이를 잘 알았잖니.

엄마의 말이 늘 옳은 것이 너에겐 별로 마음편한 일이 아니지 않았니"

~~~~~~~~

 

교육을 하는 교육자로서..

교육을 하면서 늘 고민하지만 곧 잊어버리는 문제가 철학적 문제이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늘 가르친다. "이것은 해야하고, 저것은 해서는 안돼"

"선생님이 하라는대로만 하면 넌 백점짜리 학생이 될거야"

"봐~ 선생님 말이 맞지. 앞으로도 선생님 시키는대로만 해"

 

그런 가르침에는 주체로서의 학습자는 없고, 오로지 기성세대의 가르침을 전수받는 객체만 존재한다.

오늘날 아이들의 그림에 '손없는 자화상'이 등장함으로서

품위와 주체를 망각한 우리교육의 현실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아직 그 누구도 그런 현실을 읽지 못하고 있다.

 

평소에 늘 교육의 철학적 부재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던 차에...

저자의 저 짧은 소견표현은 우리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분명하게 짚어줌으로서

내 문제의식을 좀 더 명료화시켜준다

 

그래서 나의 경우,

책으로 읽는 '더 리더'는

영화로 읽는 '더 리더'보다 저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와 더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 한다.

   

우리 교육의 내용이 무엇을 상실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나를 일깨워주는 이 책 '더 리더'의 주제는 결국.. 

인간의 삶에 있어 품위의 중요성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은 어떤 불합리한 선택을 하던 그렇게 할 자유가 있고,

다른 사람은 주체로서 개인이 선택한 결정을 존중해줘야 할 의무가 있음을 말하고자 조용하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교육의 주제일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이해하는 기준으로서도 중요한 메시지이다.

 

더불어 부연되는 또 다른 주제는 '행복'에 대한 관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사람들은 삶의 과정에서 지켜야 할 가치중에 '행복'이라는 요소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른하르트 슐링크는 행복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인간개인의 주체로서 품위와 선택권이라고 본다.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는 아뭏든 나의 주체성과 선택의 자유가 보장될 때 느끼는 감정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같다.

 

나는 그의 말에 절대 동의하며

이런 논리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 대입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그의 죽음을 두고 '억울한 죽음이다', '정치적 타살'이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한다' 라는 말로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애도하지만..

 

한나의 경우처럼,

노대통령 역시 자신이 평생동안 애써 지켜온 이미지 또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 그것이라면,

미하엘이 한나의 판결이 공정하지 않은줄 알면서도 모른채 했듯이,

우리역시 그의 주체적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옳지 않은가~

 

이것에 대하여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자 하는 것은

우리스스로 그에게 가했던 크고 작은 횡포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상대화하면서

나는 작게 상처주었고, 너는 크게 상처주었으니

너는 큰 죄인, 나는 작은 죄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래서 나는 큰 죄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죄없음, 무죄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인가..

죽은 사람, 살아 있는 사람,

우리 모두는 역사앞에 유죄이다. 더 이상 따지지 말자

 

그는 전 대통령이기 전에 자기 삶의 주체였고...

그를 조용히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한 방법 아닐까...

좋은 철학자와의 조우를 감사하면서,

노 무현님의 편안한 영면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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