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책읽기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노코미스 2009. 7. 14. 19:06

  

 

 

 

 

다시 독일여행을 준비하면서 나의 속에서 단순히 '보고 느끼는'여행에서 '이해하는'여행으로의 진화에 대한 요구가 있음을 느끼고, 짧은 시간에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가 없을까 살피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독일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몇가지 도서를 구입했지만, 대부분의 도서들이 결과론적 정보만을 제공해주는 단세포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 책은 과정론적 정보로 나의 흥미를 끌어내었다. 단순히 한사람의 예술가로서의 바그너가 아닌 극단적 민족주의자 및 인종주의자로서의 바그너의 실체와 그리고 그의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욕구가 어우러져 생성된 그의 작품들이 당대 사람들의 정서에 미친 영향,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냉철해 보이는 독일이라는 국가에서 히틀러같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개인이 집권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 그들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감정 등 역사적 알고리즘 속에서 독일 문화의 실체를 볼 수 있어서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내용구성은 독일의 민족정체성 형성과 관련된 3가지 주요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민족정체성 형성을 위한 18세기 낭만주의자들의 게르만 신화의 집대성, 게르만 신화와 바그너의 민족주의 및 인종주의적 성향과의 결합, 그리고 바그너에 대한 히틀러의 정치적 이용이라는 흐름속에서 나치정권이 어떻게 형성 유지되어 왔으며, 그들의 그런 역사적 흐름이 현재 독일인들의 집단 무의식속에 어떤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중에서 특별히 흥미로왔던 부분은 바그너와 관련된 부분이었고, 저자역시 바그너 부분의 지면을 가장 많이 할애하였다. 그저 단순히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서 바그너를 알고 있었던 나에게 그의 실체는 좀 더 충격적이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흥미로왔다고 해야 할까..

 

실토하거니와 그의 작품 로엔그린,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리벨룽겐의 반지 등이 모두 게르만신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고, 그것이 18세기 독일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그리고 그 국민적 염원 내지는 의미를 바그너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에게 그 영광을 돌리는지를 알게 되었다.

 

바그너에 대해서는, 그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좀 더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이번 독서를 통하여 느낀 그의 실체는 베토벤이나 바흐 등과 같은 순수예술가의 반열에 함께 놓기에는 뭔가 순수하지못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가 알려진만큼의 이름값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히 예술에 대한 헌신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이다.  

 

그가 분명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였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바친것도 인정은 되지만, 그것이 한 마디로 예술에 대한 헌신이라기 보다는 풍요로운 물질적 삶을 위한 헌신이었다는 점이 느끼게 되면서, 지금까지 그의 이름앞에 경건했던 마음이 다소 억울하다는 심정이랄까 뭐.. 그런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책에서 보여지는 바그너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적절히 잘 활용한 일종의 특별한 엔터테이너이면서, 동시에 권력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그는 히틀러와는 영역만 다를뿐 그와 똑 같이 타인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음악은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그의 행적속에서 보여지는 것은, 한 민족의 거대서사가 한 개인의 영욕속에서 어떻게 비틀어질 수 있는지와 더불어,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은 이기적 욕구로 가득채워진 개인이 대의를 파는 행위와 진정한 대의명분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점이다.  

 

그 시대에는 독창적이었던 바그너의 블럭버스터적 무대연출방법은 히틀러의 정치적 집회에 그대로 적용되고 활용되면서, 바그너의 명성은 자의적이건 비자의적이건 히틀러와의 연관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나치정권이 성공한 정권이 되었더라면 그의 명성은 좀 더 명예로왔겠지만, 나치정권이 실패함으로서 그의 천재성은 한낫 영특한 사업수단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바그너의 호화롭고 거대한 무대구성의 특징, 히틀러의 조직화된 거대집회의 특징 등을 읽어면서,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나라들일수록 절대권력자들이 선동적인 대규모 집회를 많이 활용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그런 선동적인 대규모 집회는 개인의 판단력을 마비키겨서 대중을 우민화시키고자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전략으로서 진정한 민주사회에서 경계해야 할 전략 중 하나임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일련의 자기파괴적인 행위들이 민족주의 또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이념들과 결합되어 있음을 보면서 우리의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건전성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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