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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나 책을 선택할 때 일반적인 취향중 하나는 타이틀에 지역명이 들어가는 것에 매혹된다는 점이다. 타이틀이 아니면 내용에라도 지역적 특성이 자세하게 묘사되는 로드무비스타일의 영화 또는 소설을 즐기는 편이다. 이런 취향은 아마도 낯선지역에 대한 여행자적 동경심의 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역시 피츠버그라고 하는 지명이 나를 집중시켰다.
피츠버그는 낯선 공간에 대한 동경이라기보다는 이전경험에 대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지역이다. 정확히 9년 전 2000년 7월 21일 우리는 피츠버그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pittsburgh 대학에서 보름동안 운영되는 교육행정 특별과정을 수강하느라 우리 일행은 carneigi mellen 대학근처의 shenley house라고 하는 아파트를 렌트하여 7명이 동숙을 하였다.
지금 주변의 지역명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그곳에 묵었던 15일동안 매일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주변의 풍경들은 내 기억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아니 원래는 잊어버렸으나, 이 책을 보면서 잊어가던 기억들이 새로이 구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주인공 아트 벡스타인과 클리브랜드, 그리고 아서가 늘 왔다갔다하는 셴리 공원, 카네기 멜른대학, 멜른대학 뒤편의 구름공장이라 일컫는 저지대, 좀더 안락한 주택가로 기억되는 스퀘럴 힐-이곳은 피츠버그 대학의 긴즈버그 교수가 사는 곳이라 초대받아 가면서 주변에 다람쥐가 많아서 특별히 기억이 강한 곳이다- 이 모든 이름들이 그렇게 친숙할 수가 없다.
이 친숙한 공간속에서 젊은 아트는 대학 마지막 학기 여름을, 가을이 오기전에 그리고 취업을 하기전에,지금까지는 피해다녔던 낯선 경험들에 대해서 뜨겁게 부딪혀보기로 한다. 젊은 열기만 있고 아직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정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가오는 주변의 상황들은 주인공에게 혼란과 고통을 안겨준다. 남들이 악행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줄기차게 메달리면서 삶을 소진시키고 있는 젊은 철학자 클리브랜드나 자신의 특별한 성적 취향과 결손된 가정환경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끝없이 자신을 감추는 윌리엄왕자 아서, 모두가 이 여름이 자신의 삶에서 마직막인것처럼 발버둥치고 있다.
주인공의 말처럼 내 젊은 날은 언제나 예측되지않은 경험이나 낯선경험에 대해서는 미리 피해다녔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통이 나에게는 낯설기도 하지만, 아마도 내가 그 해 여름 그 주변을 지나다니면서 만났을법도 한, 겉으로는 쾌활하고 명랑해보였던 그러면서 진지해보였던 대학가의 젊은이들이 내면으로는 저렇게 치열하고 뜨거운 성장통을 앓고 있었겠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우리들의 존재는 축하받아 마땅하다는 특별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어쨋거나 아무 고통없이 살아남은 자에게 피츠버그가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에 그곳에서 아파하던 젊은이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피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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