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영남 기행

축서암 매향을 찾아서..

노코미스 2011. 3. 7. 22:21

 

지난 겨울방학부터 끌어오던 프로젝트를 지난주말까지 끝내기로 약속한 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일정 막바지인 지난 주말 사흘을 꼬박 한 자리에서 13~4시간을 앉아 있었더니 급기야 몸에 마비가 오고 팔은 떨리고 힘이 없더니..

그래도 오늘은 아침부터 수업이라 3~4시간 자고 일어나 아무일없었던 것처럼 차리고 나가 수업까지는 별 무리 없이 하였으나,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니 온몸이 나른하게 무너져 내리는데 그 느낌이 마치 뜨거운 여름날 아무데나 던져놓은 초코렛이 녹아내리듯이 흘러내리는..

그런 느낌이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집에 가서 편하게 쉴 요량으로 일찍 정리를 하고 연구실을 나선다.  

 

근데,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봄날씨는..꽃샘추위가 올거라던 기상청의 예고와는 달리 너무나 화창하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따끈따끈한  햇살은 전형적인 봄햇살이고..

 

이런 날 집에 일찍 들어가 침대속으로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바로 우울증이 올 것 같단 생각과 함께..

어디선가 매향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면서..

 

이미 나의 뇌를 점령한 매향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나의 몸을 스스로 부추켜서 영취산으로 향하게 한다.  

먼저, 축서암으로 향한다.

 

 

부쩍 축서암의 매화를 궁금해 하게 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지난 이월에 이 곳에 왔을 때, 이미 봉오리를 맺고 있는 걸 봤기에..조만간에 이곳에서 향이 그윽한 매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적이 있었으므로..찬바람이 걷히면서 끊임없이 이 곳의 매화가 그리웠었다.

 

 

 

특히, 지난 주 꽃샘추위가 누그러지면서부터 그 그리움이 부쩍 간절했건만..

원래 몸이 구속되면 마음은 더 자유를 갈망하니.. 주말에 몸이 메여있는 동안 그 그리움이 부쩍 간절했건만

당장 떠날 수가 없으니 책상앞에 앉아서 몸서리만 치고 있었다.  

 

일 빨리 끝내고 일요일에는 매화보러가야지, 그랬는데..역시 일요일에도 새벽까지 꼼짝 못하고..

오늘은 정작 일은 끝냈건만 몸이 따라주질 않아 잠시 잊고 있다가..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만나게 되니 잊고 있었던 그리움이 되살아난 것이다.

몸의 상태는 여전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무작정 양산쪽으로 엑셀을 밟는다.

 

 

 

가는 길에 혼자서, 매화가 그득 피어있을 그리고 그 향이 가득고여있을 암자를 상상하며 그 곳에 도착하였건만..

입구에 도착하니..뭐야~

 

도대체 한달동안 얘들은 뭐하고 있었던 거야..보기에는 한달전 겨울과 전혀 달라져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매화나무에도 아직은 꽃이 아닌 봉오리를 매달고 있고..

단지, 봉오리가 조금 더 하얘졌단거 외엔 한달전의 그날과 별 다를바가 없다.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한쪽으로 보니 조그만 가지에 하얀 매화가 반쯤은 개화되어 있는 나무가 한그루 보인다.

 

 

 

연약한 가지에 하얀 매화를 조롱조롱 메달고 있는 것이..아쉽긴 하지만 그나마 반갑다.

가까이 다가 가니 그 향이 그윽하기 그지없다.

매화는 모습은 벚꽃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그 향은 벚꽃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 기름값 비싼 시절에 하릴 없이 창원서 이곳까지 날 끌어들인 유혹은..

꽃이 아니라 사실은 향이다.

 

 

어린가지에 대롱대롱 메달려 있는 작은 꽃송이에 코를 갖다박고는 킁킁대고 있으니

쑥을 캐던 보살 아주머니께서 '어디서 왔는지?'묻는다.

창원서 일부러 매화보러 왔다고 하니, 일부러~??하고는 반문한다.

속으로 참 하릴없는 여자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더니, 본당쪽으로 가면 매화가 많이 피었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본당쪽으로 가보니 장독간 뒤편 담벼락에 하얀 꽃나무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고목이 아닌 여린가지에 작은 꽃봉오리들이 송이송이 메달려 있는 모습이 마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나뭇가지에 팝콘을 붙여서 만든

인공꽃나무같다

 

 

 

이 한그루로 주변이 환해진다. 그윽한 달무리와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담벼락 주변으로 심겨져 있는 매화나무가 모두 개화를 하게 되면 이곳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겠다.

 

 

 

만개한 매화와 넉넉한 매향을 양껏 만나지 못해 약간 아쉽긴 햇으나 이정도만 해도 '괜찮다'

다 못채운 미련은 통도사에서 보충하지..하는 마음으로 돌아서려 할 때, 스님 두분이 올라오신다.

 

대웅전에 정성스럽게 절을 올린 후, 보살들이 생활하고 있는 요사채로 들어가시는 걸 봐서..

아마도 새봄에 들어오실 새 주인이 아닐까..생각하며 통도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통도사에 들어서서,

사천문을 들어서서 오른쪽 담벼락을 끼고 도니 극락보전 옆으로 홍매화 두그루가 주변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고, 

나무 아래에는 사진을 취미로 하는 진사들 몇몇이 이제 봉오리를 열기시작하는 꽃송이에 렌즈를 맞추고 있다.

 

 

 

남들이 하니 나도 따라해본다.

그이들처럼 좋은 카메라가 아니지만, 내 수준에서 내가 만나는 나의 손님이 아닌가..

 

새삼 홍매화의 색감에 빠져들고..

 

 

 

.

그 옆의 작은 나무에는 핑크색꽃을 보여주고 있고..

프로찍사들 사이에서 조잡한 디카를 들고 어슬프게 들이밀고 있으니, 저 뒤편에 가면 꽃이 많이 핀 홍매화가 있다고 알려준다.

 

 

 

뒤로 돌아가니 '영각'앞에 큰 홍매화 한 그루와 흰꽃을 피우고 있는 작은 나무 한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봄이 기지개를 켜면서 겨울잠에서 일어나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찍고보니 매화의 꺾어진 선이 예술이다.  

 

 

 

사진이 뭔지도 모르는 문외한은 넘어가는 햇살을 안고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햇살에 부신 꽃잎이  홍조를 띤 처자의 붉은 볼처럼 나름 아름답기도 하고..

 

 

 

조잡한 카메라는 촛점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고..

 

 

그러나, 좀 희미하면 어떠랴..

 

 

좀 조잡하면 어떠랴..

 

 

 

가장 어여쁜 모습은 내 마음속에 있는 걸..

 

 

 

아름다움이 돈에 비례해서야 되겠는가..

 

 

비싼 카메라에 찍힌 꽃..

전문찍사의 기교에 의해서 찍히는 꽃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지 않겠는가..

 

 

비록, 촛점도 맞지 않는 조잡한 디카로 찍건,

사진의 ABC도 모르는 문외한이 구도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찍건..

 

 

그들의 아름다움의 본질은 사진에 있지아니하고

그들속에 내재되어 있는 걸..

 

 

 

매화에 취하고 매향에 취해서 오르내리다보니

학교에서 나올때와는 달리 몸과 마음이 날아갈듯이 가벼워졌음을 느낀다.

봄기운을 몸 속 어딘가에 한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