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가락국 기행

밀양팔경의 어산불영 만어사

노코미스 2012. 3. 24. 19:15

 

2012. 3. 21. 수요일  날씨: 완전 봄

 

근래 일이 과했는지 몸과 마음이 많이 우울하고 무거워서 하루 휴가를 얻어 쉬기로 하였다.

막상 집에서 쉬고 있으려니 집안 청소를 할만큼 몸이 움직여지는 것도 아니고, 우울함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아니되겠다 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자동차키를 집어들고 얼른 떠오르는 곳이 군위 인각사..

네비에 찍으니 약 200Km거리에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스트레이트로 달려도 이 시간에 이거리라면

길에도 잠시 허우적거리고..엉뚱한 곳에 가서 시간 잠시 허비하고 하면 족히 편도 2시간 반, 왕복 5시간..

 

안되겠지 그지~

 

다시 다소 가까운 곳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즉부터 가보고 싶었던 밀양 만어사를 최종 목적지로 정한다.

 

만어사는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 가락국을 소개하기 위하여 잠시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만어산은 옛 자성산이다. 또 아야사산(아야사산)이라고도 한다.그 곁에는 가락국이 있다.

 

아마 당시에는 만어사가 유명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해서, 늘 염원하고 있던 곳이었다.

..

 

 

업데이트되지 않은 어줍잖은 네비의 안내로

좋은 도로 놔두고 산길산길로 굽이굽이 돌고돌아 한시간이면 도착할 곳을 두어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입구 표지판에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에 속하는 전통사찰 만어사'라고 표기되어 있다.

소재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4번지이다.

 

이 길이 끝나보이는 저 곳에서 왼쪽 모랭이를 돌면 바로 사찰 주차장이 나타난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이곳이 그 유명한 밀양 8경에 속한다는 어산불영(漁山佛影)이라~

 

 

『삼국유사』 「탑상(塔像)」편의 ‘어산불영(魚山佛影)’ 조에서는 『고기(古記)』의 기록을 빌어 만어사의 창건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만어산(萬魚山)은 옛날의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이니, 그 곁에 가라국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로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이가 바로 수로왕(首露王)이다.

이때 국경 안에 옥지(玉池)가 있었고 못 속에는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萬魚山)에는 나찰녀(羅刹女) 다섯이 있어서 독룡과 왕래하면서 사귀었다.

그런 때문에 때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 동안 오곡(五穀)이 익지 못했다.

왕은 주문을 외어 이것을 금하려 했으나 금하지 못하여, 머리를 숙이고 부처를 청해 설법한 뒤에

나찰녀(羅刹女)는 오계(五戒)를 받아 그 후로는 재앙이 없어졌다.

때문에 동해의 물고기와 용(龍)이 마침내 화하여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이 되어 각각 쇠북과 경쇠의 소리가 났다."

 

수로왕은 이를 기리기 위해 절을 창건하였는데,

불법의 감화를 받아 돌이 된 고기떼의 의미를 살려 이름을 만어사(萬魚寺)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에 감화를 받아 수많은 물고기가 돌로 변해

여전히 부처님의 법음을 듣기 위하여 모두 머리부분을 절로 향하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어산불영..

 

지금도 이를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하며 현재 경상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하나라도 훼손하면 엄히 처벌하겠다는 문구들이 만어산 입구 곳곳에 경고되고 있다.

 

안내문에서 안내하길,

 두드려보면 쇳소리, 종소리, 옥소리등의 소리가 들리는 돌멩이가 있다고 하길래

아무거나 골라서 아무리 두들겨 봤자 내 귀에는 탁탁 튕기는 돌소리밖에는 들리질 않는다.

 

 

이러한 전설을 간직한 만어사는 신라시대에 여러 왕들이 불공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또한 “1180년(고려 명종 10) 동량(棟梁) 보림(寶林)이 비로소 만어사(萬魚寺)를 세웠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전후 사정에 비추어 보아 실제로 만어사는 수로왕 설화와 연결된 46년에 작은 기도처로 창건된 듯하며,

1180년에 와서야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대웅전앞에 조성된 삼층석탑이 이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고려시대 창건에 신빙성을 갖게 한다.

 

 

 

대웅전 건너편으로 오래된 나목 아래에 작은 석불과 석물하나가 놓여있다.

여러조각으로 금이간 경석을 아교로 붙여놓은 것 같은 모습의 석물인데 용도가 무엇인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물러났는데..

다른이의 글을 읽어보니 소원들어주는 돌이란다.

 

들어 올려서 들리면 소원이 안 이루어진 것이고, 들리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라나~

일본의 모 신사의 돌은 그 반대였던 거 같은데..

 

 

 

조춘의 햇살을 받고 있는 작은 사찰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구 가야국에 남아있는 가람들의 특징이 모두 아담하고 소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소박함이 좋건마는..

 

그러나, 사찰을 운영하는 스님들 마음은 그렇지 않으신지 가는 곳마다 불사증축중이다.

사찰조차도 대형화, 리노베이션의 물결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사찰에 들러면 건물보다는 전각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더 재미있기도 하다.

만어사의 대웅전 벽화는 다른 사찰의 것과는 내용이 좀 다를뿐 아니라,

그림의 표현이 상당히 리얼하고 유혹적이라서 재밌다.

 

 

 

석가의 득도를 방해하기 위하여 마귀들이 어여쁜 여자로 변신하여 유혹하는 모습을 표현한 장면인듯 하다.

표현이 아주 노골적이다~

 

 

 

본당내의 부처님도 다른 가락고찰들과 유사하게 몸체가 작고 소박하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보물 제 466호 만어사 삼층석탑'이다.

 

고려시대(1181년) 만어사 창건시 함께 세워졌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위치는 처음 세워질 당시 그대로라고 한다.

탑의 기단이 단층기단인 것이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것으로 보아 기록의 사실성을 증명해준다.

 

나름 안정감이 돋보이고 균형미가 좋아보인다.

 

 

 

대웅전 난간끝에 서니 골짜기의 너덜겅과 희미한 실루엣으로 연결된 건너편산맥의 흐름이 아름답다.

비오는 날이나 새벽녁에 오면 이 골짝의 운해가 장관이라는데..

 

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이 짐작이 될 뿐만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비록 외진 산등성이긴 하지만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정오를 넘기면서부터는 사람들의 발길이 제법 부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