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일(일) 오전 날씨:맑음
오늘은 절대 권력 루이 14세가 지었다는 화려홤의 지존 베르사유 궁전으로 간다.
그 화려함으로 인해 18~9세기 유럽의 수많은 성들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궁.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러 간다.
우리 호텔이 베르사유시에 위치해 있어서 오늘은 다소 느긋하게 호텔을 나선다.
그래도 인파가 너무 밀리지않을 시간을 고려해서 출발한다.
9시쯤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그닥 많지를 않다. 아마도 휴가철이 끝난 시점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뭏든 출입구에서 줄을 선다.
근데 난 꾀가 생긴다. 이미 궁전내부는 한번 본 적이있고..
아직 정원은 보질 못했다. 게다가 뜨레아농도 가보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정원을 누비며 왕비의 촌락을 보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가이드투어에서는 추가 비용이 드는 곳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개별행동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우리의 파리 가이드는 좀 남다르다. 개인의 요구를 상당히 존중해주는 깨인 여성이다.
그래서 제안을 해본다. '일행들이 내부를 보고 있는 동안 난 얼른 미니기차를 타고 뜨레아농을 갔다오겠다.
그리고 나서, 일정이 끝나는 시간에 이곳에서 만나면 되지 않겠냐'했더니 흔쾌히 그러란다.
역시..쿨한 언니~
그러나 언니의 쿨한 허락에도 불구하고 1시간정도 뒤늦게야 나도 궁전을 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매표소에서 거의 1시간가까이 투자해서 얻어낸 황금같은 정보하나 드리자면
'뜨레아농은 정오나 되어야 오픈을 한단다' 아 놔~4
그러니, 다시 가이드를 불러내어 나좀 데려가줘~ 할수 밖에..
그랬더니, 가이드가 매우 미안해한다. 자신이 그런 거까지 잘 몰랐다구..
사실은 나는 나대로 개인행동해서 복잡하게 만든거 같아 참 미안했었는데, 이렇게 해서 쌤쌤 된 거지..
그래도 난 30분만에 궁전투어를 끝내야 하는 벌칙은 받는다
지금이 10시인데 10시 30분에 정원입구에서 보잔다.
바쁘게 움직여본다.
외관부터 한방 박고..
이전보다 한층 화려해진 듯하다.
핵심만 짚어야지~하고 들어갔는데, 6년전과 비교하여 바뀐 점들이 더러 있다.
이런 영상자료도 보여주고..
뜨레아농과 왕비의 촌락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그런 부분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다 보고 있을 시간은 없고..
몇커트만 대충 살피고는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그랑 뜨레아농과 쁘띠 뜨레아농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지는 대충 알겠다.
1층 대충 훓고 2층으로 올라간다 .
루이 왕조때 이곳에서 사용했던 찻잔들이란다.
예쁘서 한 컷.
맾도 없고 가이드도 없고 오디오도 없고, 정보도 없이 무조건 여기저기 찍고 다닌다.
그저 친숙한 얼굴 보이면 아는 사람인가보다 하고는 사진 한장 찍어두고~ ご,.ご;;
음, 이사람이 '짐이 곧 국가'라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루이 14세~
절대권력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만큼 화려한 궁전을 짓도록 한 사람도 바로 이이이고..
이 시기 베르사이유 궁전은 18세기 이웃나라들의 궁전양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터키의 톱카프궁전, 독일의 린더호프궁전, 슈바벤의 루드빅스부르그 등이
모두 베르사이유를 흉내내어 지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건축양식도 양식이지만, 그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의 절대권력이 부러웠던거였겠지만..
그 중 가장 화려한 공간이 바로 이곳 '거울의 방'이지..
길이 73m, 폭 10.5m, 높이 12.3m의 이홀에는 17개의 커다른 창문으로 정원을 내다볼 수 있게 하고,
창과 마주보는 반대편 벽에는 총 578개의 작은 거울을 짜맞춘 17개의 대형 거울이 있다.
아무리 거울이 많아도 오늘날에는 그 갯수가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겠지만,
18세기에만 하더라도 유리나 거울을 만드는 기술은 상당히 신기술에 속했었고 아무나 설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시에는 유리만드는 기술은 베니스가 최고여서 베니스에서 기술자들을 불러서 설치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천정에는 로마황제, 왕족의 위대한 업적, 전쟁에서 의 승리등을 묘사한 30점의 금박그림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모두들 그 화려함에 입을 쩍 벌린다.
이 화려한 공간은 연회장, 가면무두회, 기타 궁정행사 장소 등으로 이용되었단다. 지금도 국가의 주요 행사 장소로
사용되고 있단다.
한때, 유홍준 교수가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시절에 경복궁에서 국가행사를 한번 치른적이 있었는데
그 때 주변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문화재를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비난을 하였겠으나,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문화재는 그저 죽은 물건일뿐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문화재는 빛이나게 된다는 걸
남의 나라 문화정책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우리가 방문했을 즈음 현대미술 전시회가 있었던 것 같았다.
회랑에 이런 거대한 하이힐이나 천정의 모빌 등이 군데군데 전시되어 있다.
베르사유궁전 복도에 굽높은 아찔한 하이힐의 전시..어떤 의미일까?
하이힐의 유래를 언급할 때
언제나 등장하는 건 프랑스 유행설 특히, 베르사유 시절부터라는 설이 많다.
즉, 역사 기록상 굽높은 하이힐의 등장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등장하고 있으나
그것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은 17세기 프랑스 루이왕조때부터라는 가설이 많다.
실제로 루이 14세의 초상화에서 돋보이는 하이힐,
시대의 유행을 선도한 마리 앙또와네뜨의 초상화에서 돋보이는 하이힐..
이것만으로도 하이힐이 베르사유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될 거 같다.
왕의 침실..현재 보여지는 모습은 루이 14세 재위 말엽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고..
왕의 침실 옆에 왕비의 침실이 있는데
이 방은 마리 앙뚜와네뜨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사용하던 로코코 양식의 방모습으로 재현한 모습이다.
벽지도 매우 화려하지만
6년전에 비해서 상당히 깨끗해지고 정돈되었고 또한 장식적인 요소를 많이 갖추었다.
침대옆에는 여러색깔의 가발이 걸려있는 모습도 재미있다.
입구 쪽 벽면에 마리앙뚜와네뜨의 흉상이 놓여있다.
맞은편 출구쪽 벽면에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3남매의 자녀들과 비어있는 요람..
저 비어있는 요람에 대한 이야기도 슬프다. 화려해보이지만 알고보면 이래저래 비운의 여인이다.
공주와 왕자의 손을 잡고 있는 모성으로서의 마리앙뚜와네뜨의 모습..
혁명군들은 마리앙뚜와네뜨를 기요틴의 교수대에 올리기 위하여 별별 죄목을 다 갖다붙이다 못해
급기야는 루이 17세(손잡고 있는 아이)를 성추행했다는 누명까지 덮어씌우곤 했다는데..
시대의 정서를 읽지 못하는 것도 인간에게는 큰 죄악중 하나임을
역사를 통해 인식하게 된다.
운하방향으로 나가니 이미 일행들이 '라토나 분수가'에서 포즈들을 취하고 있다.
분수너머로 멀리 운하가 바라다 보인다. 더 내려가면 아폴로 분수까지 닿을 수 있겠는데
시간상 여유가 없다. 그냥 주변에서 왔다리 갔다리한다.
라토나 분수 양 옆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화원이 조성되어 있다.
작은 분수에서 뿜어올리는 물안개와 꽃들의 조화가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한가
나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인증샷하나 남기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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